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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책만 보는 바보
  • 고야 : 혼란의 역사를 기록하다
  • 줄리아노 세라피니
  • 13,500원 (10%750)
  • 2009-06-10
  • : 228

마로니에북스의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 시리즈 중 하나다. 일반 도서보다 좀 더 큰 판형에, 고급지 사용과 정밀한 컬러 인쇄가 역시 미술 전문 출판사답다. 이 책의 장점은 풍부한 그림 수록에 있는데, 앞서 읽은 두 권의 책보다 실린 작품의 수도 많을뿐더러 주요 작품은 전면 또는 양면에 걸쳐 게재함으로써 명화를 보는 재미를 배가시켜 주고 있다.

 

목차는 아라곤의 남자, 마드리드로, 상승, 안달루시아의 여명, 전쟁의 참화의 5개 장으로 구성하여 전반적으로 연대기 순을 따르고 있다. 이 책은 인간 고야의 삶의 이력을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화가 고야에 더 주력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대중을 위한 보다 부담 없는 입문서는 아마도 하겐 부부의 책이 해당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접하거나 인상 깊었던 내용분석 중 몇 개 대목을 예시적으로 기술한다. 먼저 고야의 청각장애를 기존에는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밝힌 데 비해, 이 책에서는 납중독의 결과라고 단언하고 있다.

 

흰색 안료인 백연을 거의 매일 사용했던 데서 생긴 납중독이었다. 그로 인해 일생 동안 그를 괴롭혔던 청력상실에 이르고, 손짓을 통하지 않으면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게 된다. (P.38)

 

고야 말년의 작품을 ‘검은 그림’이라 통칭하는데, 이 역시 단순히 소재와 주제, 채색의 어두움 때문이 아니라, 고야 화풍의 특징인 빛의 사용이 사라져 버렸다고 서술하여 독자는 문득 검은 그림 연작을 다시금 들춰보게끔 된다. 고야가 또 다른 빛과 어둠의 화가인 피라네시의 영향을 받았다는 대목 역시 날카로운 분석이다.

 

<옷을 벗은 마하>로 유명한 마호와 마하가 스페인의 특징적인 하층 젊은 남성과 여성을 가리킨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스페인 귀족들이 그들 복식의 영향을 받은 이유를 단순히 흥미와 자유로움 추구를 넘어서 당대 정치 상화과 결부시킨 점도 설득력 있다.

 

스페인의 변덕스러운 귀족들이 따랐던 ‘마히즘’은 프랑스를 통치했던 부르봉 왕조가 자신들의 왕위를 ‘찬탈’한 데 대해, 보수파가 히스패닉적 정체성을 내세운 결과물이었다. (P.30)

 

그밖에 <옷을 벗은 마하> 작품이 갖는 도발적 의미, <카프리초스> 판화 연작과 오수나 가문이 주문한 ‘엘 카프리초’ 회화 연작이 갖는 관계와 함의, 나아가 기존에는 전혀 다루지 않았던 판화집 <디스파라테스>와 <카프리초스>의 유사점과 차이점 등은 고야 읽기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카프리초스>에는 부패와 어리석음, 불관용에 대한 격렬한 비판이 이미지를 통해 분명히 드러났던 반면, <디스파라테스>에는 부조리와 난센스의 영역이 포함되어 있다. 이전의 ‘이성의 잠’은 이제 정신의 전복, 즉 환각으로 변모했다. (P.105)

 

이처럼 이 책은 기존의 두 권보다 새롭고 세밀한 사실과 깊이 있는 분석을 접할 수 있다. 때로는 대상 독자를 초보자보다는 회화사의 기초 지식을 지닌 이를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동시대 또는 전후 시대의 화가와 비교 분석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더 두껍고 전문적인 책이라면 당연하겠지만, 이 책은 120면 남짓할 정도로 얄팍한 책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화가 고야는 위대하지만, 인간 고야는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보통 사람이다. 당대 최고의 화가로 입신하기 위해 그는 노력하였고, 마침내 수석 궁정화가로 목표를 성취하였다. 왕족과 귀족의 비위를 맞추고 적당한 처세만 해도 그의 지위와 영예는 유지될 수 있었음에도 그는 안주하지 않았다. 양탄자 밑그림과 초상화를 벗어나 청력 장애 이후에 그가 인간의 내면, 비이성과 환상에 주목하였다고 하지만, 초기작에도 그가 당대 사회의 위선과 부조리에 눈감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대중적으로는 그의 화려하면서도 강렬하고 충격적인 회화 작품인 양탄자 밑그림과 초상화, 검은 그림 연작들이 우선적으로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다만 그의 진정한 예술세계를 살펴보려면 모노톤의 판화 연작을 세심히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카프리초스>, <전쟁의 참화>, <디스파레테스> 등을 보면, 회화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며 때로는 미술보다는 사상이 주목적인 듯 여겨지는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솔직하자면 결코 아름답다고 말하기 어렵다. 회화의 이상이 조화와 균형, 아름다움의 추구에 있다고 하면 고야는 정반대 방향으로 향한다. 고야의 이러한 예술적 지향점이 당대에 그치지 않고 후세대의 화가들에게 지속적 영향을 미쳤다.

 

역사적으로 볼 때, 프란시스코 고야의 천재성은 강렬한 갈등과 이중적 함의가 담긴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양식을 통해 창작기간 내내 지속되었던 특출한 선구자로서의 면모-인상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가 그의 영향을 받았다-에서 잘 드러난다. (P.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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