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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책만 보는 바보
  • 제복의 소녀
  • 크리스타 빈슬로
  • 9,720원 (10%540)
  • 2020-08-21
  • : 332

원제는 <소녀 마누엘라>이다. <제복의 소녀>라는 표제는 <제복의 처녀>라는 영화명에서 가져왔다. 시나리오 작가가 크리스타 빈슬로다. 이 작품은 사실 연극에서 출발하여 영화화되었고, 작가가 이를 토대로 소설화한 것이다. 순서로만 보자면 소설이 가장 마지막이다. 대중적인 인기는 영화에서 얻었는데, 1931년과 1958년 두 차례에 걸쳐 영화화되었고, 최초의 레즈비언 영화로 불린다.

 

소설로만 보자면 이 작품을 단지 레즈비언 성향으로 치부하기는 곤란하다. 전체 6개 장 가운데 전반부 4개 장은 마누엘라의 탄생부터 아버지의 전출과 퇴직, 큰오빠와 어머니의 죽음을 겪기까지 가족사가 이어진다. 후반부 2개 장에서 마누엘라는 수녀원이 운영하는 기숙 학교에 입학하여 폰 베른부르크 선생을 만나게 된다. 크게 보자면 이 작품은 마누엘라의 비극적인 결말로 나아가는 성장 소설의 성향이 강하다. 작가가 연극 및 영화와 다른 방향으로 소설을 쓴 것은 기존 유명세를 끌었던 연극과 영화가 자신이 추구하는 방향성에서 벗어났기에 조금 더 폭넓은 세계를 그리고자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작품의 레즈비언 성격을 조금 더 언급하자면, 세상에 의지할 데 없는 마누엘라는 폰 베른부르크 선생에 집착한다. 기숙 학교에 오기 전에 프리츠의 어머니 잉에 부인에게 느꼈던 감정과 흡사하다. 그것은 상실한 어머니에 대한 일종의 대안 또는 대체재로 생각할 수 있다. 마누엘라의 순수하고 강렬한 감정을 의식하는 폰 베른부르크 선생 또한 마누엘라를 특별하게 생각하지만 훌륭한 교육자답게 감정을 자제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려고 노력한다. 선생과 소녀의 가벼운 키스 장면 하나만을 확대해석하여 성애적 분석을 가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본다. 영화와 소설은 지향점이 다르다.

 

렐라는 두 손을 꽉 잡고 결심을 털어놓으려고 뜨거운 얼굴을 그 손에 묻었다. 선생님의 손은 거부하지 않았다. 그대로 있었다. 폰 베른부르크 선생은 두 손으로 눈물에 젖은 렐라의 얼굴을 들어 올려 몸을 숙여서는 떨리는 그 입에 키스를 했다. (P.210)

 

이 소설은 살펴볼 대목이 여럿 있다. 먼저 기숙 학교의 국가주의적 운영 원리다. 이 학교는 아가씨를 프로이센 장교 부인이 될 여성으로 교육하는 데 주된 목적이 있다. 교장 선생 이하 폰 케스텐 선생에 이르기까지 학교 운영진은 철저하게 국가 방침을 맹종한다. 오로지 엄격한 규율과 수동적 순종만 요구될 뿐 개성 발현은 억누르기에 급급하다. 그렇기에 음주 소동을 일으킨 마누엘라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중대한 규율 위반자로 처벌의 대상으로 간주할 뿐이다. 실은 이러한 국가주의적, 전체주의적 성향은 프로이센 국가의 지도적 속성임을 작가는 교장 선생과 폰 케스텐 선생의 대화를 통해 독자에게 알려준다.

 

“생각을 하지 마세요, 선생님. 그냥 따르기만 하세요. 우리 프로이센을 강하게 만든 것은 복종이지, 폭식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교장 선생님, 맞는 말씀이십니다.” (P.227)

 

큰오빠와 엄마의 죽음 이후 마누엘라의 방황을 추스를 수 있는 사람은 아빠 마인하르디스 중령뿐이지만, 그는 오히려 가정을 벗어나 개인적 향락을 추구하기에만 바쁘다. 외로운 마누엘라는 프리츠와 사귀는데 이를 못마땅하게 보는 주위의 시선 때문에 아버지는 그녀를 기숙 학교에 보낸다. 기숙 학교에 보내는 행위가 어떤지 그는 잘 알고 있고 탐탁지 않지만 그에게는 마누엘라를 적극적으로 보살피려는 의사가 없다. 마누엘라가 곤경에 처해 있는 때에 뜬금없이 보여주는 마인하르디스 중령의 눈부신 남국 해변의 사랑 유희는 강한 대비를 드러낸다.

 

이렇게 보면 마누엘라는 사랑하는 대상을 모두 빼앗기고 소외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큰오빠, 엄마, 프리츠와 잉에 부인. 따라서 마누엘라가 폰 베른부르크 선생에 몰입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은 선택이기도 하다. 우리도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면, 좋아하는 교사가 가르치는 과목에 더 매진하고 수업 시간에 집중한 기억이 있지 않은가.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모든 것이 의미를 갖게 되었다. 모든 행동은 폰 베른부르크 선생님, 그분을 향한 충실한 봉사였다. 모든 것, 그 어떤 것도 모두 선생님과 연결되었다. 그리고 하루가 종소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그분의 목소리에 따라 움직였다. (P.179)

 

마누엘라의 성적 정체성을 헤아려볼 수 있는 표현을 작가는 자주 남긴다. 분명한 건 마누엘라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에 불만을 지니고 있었다. 많은 제약을 받는 여성의 지위에 답답해하고 마음껏 자유를 발산할 수 있는 남성 지향적 감정을 표출한다. 연극에서 남성 역할을 맡았을 때 크게 기뻐하고 열연을 펼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것을 성적 관점에서 파악할 것인지 아니면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남녀평등 지향으로 볼 것인지는 시각의 차이가 존재한다.

 

마누엘라는 구원을 청하듯 선생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는 여자가 싫어요. 남자가 되어서 폰 베른부르크 선생님을 위해서 살고 싶어요. 교장 선생님께는 말하시면 안 돼요.” (P.189)

 

음주 사건으로 집단 따돌림의 처벌을 받는 마누엘라가 기대할 바는 오직 폰 베른부르크 선생이다. 그녀야말로 허약한 마누엘라가 삶의 의미를 지탱할 수 있는 유일한 지푸라기였으므로. 폰 베른부르크 선생은 교육자이자 성인이므로 마누엘라처럼 선택할 수 없다. 그녀는 교장 선생의 명령과 지시에 결국 굴복하고 만다. 마누엘라의 최후의 간절한 바람을 끝내 외면하면서.

 

“한마디만 해 주세요. 작은 소리로요. ‘너를 버리지 않을 거야.’라고. 그러면 진정할 게요. 무엇이든 다 하고, 무엇이든 참아 내고, 복종하고, 착해질게요.” (P.278)

 

우리는 마누엘라를 희생자로, 기숙 학교를 가해자로 섣부르게 재단하기 쉽다. 서두에 재산을 탕진하고 아메리카로 떠나는 카이저마르크 중위를 시작으로 작품 속 모든 인물이 모두 피해자다. 일체의 개성과 자유를 억누르고 국가를 최우선시하는 프로이센 체제의. 이 작품의 대단원은 극적이며 상징적이다. 우리는 학교와 학생, 폰 베른부르크 선생의 앞날이 매우 궁금하다.

 

이 작품은 일찍이 청목사의 그린북스 38권, <제복의 처녀>(왕수영 역)로 출간되었다. 작가명을 크리스티나 윈스뢰로 표기한 점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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