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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책만 보는 바보
  •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
  • 야마다 시게오
  • 22,500원 (10%1,250)
  • 2026-04-10
  • : 2,420

세계사에서 ‘제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국가가 아시리아 제국이다. 이전 시대의 히타이트와 고바빌로니아는 아직 왕국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메소포타미아 전역과 이집트, 페르시아 일부까지 아우른 아시리아야말로 제국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구약성서에도 등장하는 아시리아는 북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킨 장본인으로 사악한 민족으로 기술되어 있다. 다른 역사 기록이 없었기에 전모가 밝혀지지 않았던 아시리아 제국은 수많은 점토판, 기념비의 발견과 해독으로 단순히 무력만 막강한 국가가 아니었음을 알게 해준다.

 

아시리아는 이러한 메소포타미아의 전통을 계승했지만, 군사 조직과 기술, 중앙집권적 관리와 초광역 제국 운영, 기록 문화의 보존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다른 메소포타미아 제국들과 뚜렷하게 차별화되었다. (P.10, 감수의 글)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하류의 수메르 문명을 이어 중류의 고바빌로니아 시기를 거쳐 중상류의 아시리아로 주도권이 점차 이동하였다. 히타이트는 아나톨리아에 근거를 두고 메소포타미아 일부를 점령하였지만 결코 주도적 지배자가 되지는 못하였다. 강력한 맞수 엘람 왕국도 결국은 페르시아 남부 지역이 본거지였다.

 

아시리아 제국의 역사에서 뛰어난 점은 방대한 문헌 기록의 존재다. 이를 통해 그들의 역사 대부분과 사회생활마저 파악할 수 있다고 하니, 연대를 감안하면 매우 놀랍다. <아시리아 왕명표> 등으로 왕들의 계보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아시리아의 명칭은 도시 아수르에서 유래하였고, 이는 아슈르 신과 연관이 깊다. 아시리아인들에게 아슈르 신은 최고 신으로서 훗날 그들은 수메르의 엔릴 신, 바빌로니아의 마르두크 신과 동일시한다. 참고로 오늘날 시리아의 이름이 아시리아를 의미한다고 한다.

 

기원전 2000년대부터 멸망한 기원전 8세기까지 1,200년간 오랜 기간 존속하였던 국가로서 그네들 역시 도시 국가에서 왕국, 제국의 시기로 발전과 확장, 쇠퇴와 수축의 단계를 거치면서 나아갔음을 이 책에서는 상세한 기록을 통해 보여준다. 중아시리아의 아슈르 우발리트 1세부터 실질적으로 왕국의 시대로 넘어갔다고 볼 수 있으며, 투쿨티 니누르타 1세 시절에는 히타이트 왕국과 바빌로니아 왕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였다고 한다. 아슈르나시르팔 2세와 샬마네세르 3세를 이어 티글라트 필레세르 3세부터는 명실상부한 제국으로 인정받는다. 최전성기는 사르곤 2세, 센나케리브, 에사르하돈, 아슈르바니팔 시대이다.

 

후대의 쐐기문자 아카드어, 그리스어, 히브리어로 된 저작물에서도 아시리아는 ‘제국’의 원형, 또는 ‘가장 오래된 제국’으로 간주되었다. (P.174)

 

아시리아의 역사를 조망할 때 눈에 띄는 점은 치밀한 통치 체제이다. 제국을 여러 행정주로 분할하여 관료들이 통치하도록 하였고, 피정복지 주민을 제국 내 다른 곳으로 강제 이주시켜 반란의 가능성을 줄이고, 개척하도록 하였다. 이스라엘 민족도 이때 많이 끌려갔다고 한다. 한편 훗날 페르시아의 역참제도 아시리아가 선도하였다고 한다. 그들이 단순히 군사 대국, 정복 국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아슈르바니팔의 도서관도 주목할 만하다. 아시리아 제국 최후의 번영기를 일구었던 아슈르바니팔은 수도 니네베에 거대한 문헌 수집 작업을 개시하였으니, 문화적으로 세계의 중심 국가를 지향했던 그들의 야망을 짐작할 수 있다.

 

아슈르바니팔이 니네베에서 시행한 문서 집대성은 기존의 모든 도서관 규모를 뛰어넘는 세계 최초의 국립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다. (P.338)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유목국가도 아닌 아시리아가 제국의 수도를 계속 옮겼다는 사실이다. 오랜 기간 민족적 근거지인 아수르에 자리 잡았으나 제국으로 발전하면서 칼후, 두르샤루킨, 니네베로 이전하였다. 추진 이유야 나름 있겠지만, 짧은 기간의 잦은 수도 변경은 제국의 안정성을 저해할 만한 요인이다.

 

바빌로니아 통치는 그 후의 아시리아 제국에 닥친 가장 복잡하고 심각한 정치적.종교문화적 과제가 되었다. (P.160)

 

아시리아의 영락은 바빌로니아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의 전성기에 바빌로니아를 지배하였지만, 완전한 점령보다는 자치권을 부여하였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바빌론이 갖는 문화적, 종교적 중심지를 존중하였는데, 아시리아의 세력이 위축될 때면 바빌론은 반아시리아 세력의 구심점으로 작용하였다. 에사르하돈과 센나케리브의 죽음은 물론 아시리아 멸망의 직접적 원인은 결국 바빌론의 반란이었다. 이는 아슈르 신과 바빌론의 최고신을 동일시하여 문화와 종교 혼합을 도모한 점과 무관할 수 없다. 훗날 신바빌로니아를 멸망하고 메소포타미아를 장악한 페르시아 제국은 바빌론의 특권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그들의 종교와는 전혀 무관한 탓이다.

 

아시리아 제국의 멸망을 가져온 전쟁은 바빌로니아, 메디아, 이집트와 같은 대국뿐만 아니라 우라르투, 만나이, 엘람 등 여러 세력이 가세한 대규모 충돌이었다. (P.363)

 

최전성기 이후 아시리아의 급격한 몰락은 이 시기 사료 부족으로 명확한 설명이 어렵다고 한다. 아슈르바니팔 사후 20년 만에 제국이 멸망한 사실은 단순히 왕가와 지배층의 분열과 혼란으로 설득하기 어렵다. 내우외환이 겹쳤다고 해야 하는데, 기회를 틈탄 바빌로니아의 반란과 이에 합세한 엘람, 메디아, 이집트 등 강성한 아시리아 제국의 위세에 눌렸던 주변 국가들이 일제히 동맹을 체결하고 사방에서 아시리아를 공격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메소포타미아의 패권은 신바빌로니아에게 넘어가고 다시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가 갖게 됨을 역사는 보여준다.

 

유럽과 아시아의 중간에 자리 잡은 지정학적 특성으로 소위 중동 지역의 역사에 우리는 대체로 무지하다. 우리에게 친숙한 동양사도 아니며, 근현대를 지배한 서양사의 영역도 아니기 때문이다. 중동과 서아시아 역사를 제대로 모르기에 우리는 그들을 은연중 무지하고 후진적인 민족과 국가로 오해하는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다. 이 책은 현재 구할 수 있는 아시리아 제국에 관한 유일한 역사서로 우리의 역사 이해를 넓혀줄 수 있는 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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