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도 클래식 음반 가이드북이다. <두근두근 클래식>에 이은 후속작이다. 모든 면에서 전작과 유사하다. 숨겨진 작곡가와 작품 소개, 기존에 알려진 음반 관련 일화 소개 및 오해 정정은 동일하고, 몇몇 악기에 관한 이야기, 유명한 곡이지만 위작으로 판명 난 작품 등 나름대로 차별성도 지닌다. 분량도 1.5배 정도 늘어나 얄팍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났다.
근년 들어 클래식 음악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책들이 많이 나왔다. 대개 유명 작곡가와 대표 작품의 감상 포인트를 재밌는 일화와 함께 다룬다. 대중성을 고려하기 때문에 유명하지 않은 작곡가는 소개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 책의 특장점은 비주류 작곡가도 소개하며, 익히 알려진 악곡의 경우도 작품보다는 연주자와 연주 자체에 비중을 두고 있다. 결국 음악 감상자로서는 누구의 무슨 곡이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연주자의 연주인지도 못지않게 비중이 크다. 유명한 곡은 수백 개의 연주가 존재하기에 여기서도 옥석을 고를 수 있어야 한다.
총 38개 장의 내용을 낱낱이 언급할 수 없기에 개인적으로 흥미롭고 인상에 남은 대목만 소회를 남긴다.
베토벤의 3중 협주곡을 리흐테르, 오이스트라흐, 로스트로포비치가 카라얀과 협연한 음반은 최고의 명반이자 최악의 음반으로도 평가가 엇갈린다. 주로 독주자 3인방과 카라얀의 주도권 다툼에 관련된 일화가 그것인데, 개인적으로 과도한 확대해석으로 생각하는 저자도 마찬가지 의견이다. 프로예술가들은 설사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연주에서는 최고를 지향하는 법. 하물며 그들이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명확한 증빙도 없다. 협주곡은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 조화와 경쟁. 연주자 간 사이가 아주 좋았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연주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카라얀은 똥폼을 잔뜩 잡은 채 찍은 사진이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불만 어린 표정으로 비친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카라얀은 자신의 사진을 스스로 관리하여 좋고 멋있는 것만을 공개했다고 한다. 연예인처럼 이미지 관리 차원이라고나 할까. (P.25, 베토벤 3중 협주곡)
클래식 음악계에서 여성 연주자는 많지만, 여성 작곡가는 드물다. 샤미나드와 그녀의 피아노 3중주 작품 소개는 그런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심오하고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살롱풍의 아름다움을 담은 샤미나드와 훔멜의 작품은 무시될 만한 성격이 아니다. 모두가 바흐와 베토벤, 브람스가 될 필요도 없고 되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3중주를 언급하는 김에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골덴바이저, 아렌스키, 쇼스타코비치로 이어지는 슬픔의 3중주 전통도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잘 알려진 위작을 여럿 소개하는데, 의외의 반전이 주는 묘미와 더불어 익명의 작곡가와 숨겨진 사연을 파헤쳐 보는 쏠쏠한 재미와 더불어 씁쓸한 여운도 남는다. 한때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로 유명세를 떨쳤던 곡이 사실은 카치니와 전혀 무관한 현대 작곡가 바빌로프의 작품이라고 한다. 페르골레지의 <조화의 협주곡>도 바세나르란 무명 작곡가의 작품인 게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밝혀졌단다.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세레나데>도 사실은 호프슈테터가 원 작곡가라고 하니 놀랍다. 작곡가가 애초에 정체를 숨긴 경우도 있지만, 출판업자의 농간인 사례도 있다. 무명인 원 작곡가가 드러났다고 음악의 가치가 절하되지는 않음은 당연하리라. 한편 하이든의 유명세는 그의 두개골마저 가짜가 존재하게끔 하였다니 유명하다고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잉글리시 호른은 영국과도, 호른과도 다른 악기라는 이야기,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 치인 신세인 비올라의 처지, 바이올린의 명기란 무엇인가를 다룬 장은 무심코 넘기기 쉬운 악기라는 대상에 초점을 맞춘 적절한 대목이다. 개인적으로 근년 들어 비올라가 참으로 매력 있는 악기임을 새삼 발견하였다.
타이스의 <명상곡>으로 시작하여 마스네, 차이코프스키, 글라주노프 등 명상적인 소품 연대기는 간과하였던 악곡의 성격을 되새기게 한다. 반대되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와 로망스는 흔히 떠올리기 쉬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와는 전연 다르다. 그의 왈츠와 로망스가 편곡과 편집 오류로 인해 <재즈 모음곡>에 포함된 사연은 기가 막힌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게 생전 처음 접하는 브루흐의 두 대의 피아노 협주곡이다. 브루흐의 제자가 악보 출판 배달 사고를 일으켜 늙은 스승을 등쳐먹었다니 갑자기 브루흐가 딱해 보일 지경이다.
전작에서도 저자는 간혹 문화예술계의 작태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가치관과 이념으로 좀 더 나아간 점은 다소 유감스럽다. 클래식 음악은 고급, 재즈는 저급이라고 칭하는 인식은 클래식 우월주의 관점에 사로잡힌 견해다. 개인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높이 평가하지만, 가요나 국악, 팝송과 월드뮤직 등도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다. 윤이상에 대한 평가도 주관적 맹목에 가깝다고 본다.
최근 사람들이 즐기는 햄버거나 째즈는 고급문화가 아니다. 햄버거는 정크푸드이고 째즈의 주제는 마약, 매춘, 도박이다. 고급만이 가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쓰임이 다르다는 것이고 저급한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P.129, 쇼스타코비치 왈츠와 로망스)
일본에서 <광주여 영원하라> 음반을 한 평론가가 <명반대전>에 소개하였는데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국 정부를 타도하는 음악을 북한의 지휘자와 악단이 연주하는 것이 두렵다.” (P.100,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전작에서 제법 심각했던 교정 오류는 이 책에서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곳곳에 실수가 나타난다. 예를 든다면, 브람스 <주제와 변주>를 다룬 장(P.283)의 부제는 ‘유롭고 행복했던 독신’이다. ‘자유롭고 행복했던 독신’의 잘못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하물며 본문도 아닌 표제 윗줄의 부제에서 이러하니 교정의 허술함을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런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클래식 음악과 음반의 길잡이로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말할 나위 없다. 특정 분야에 편중된 척박한 클래식 음악 출판 부문에서 힘겹게 고투하는 저자를 응원한다. 참고로 알라딘 서점에는 실물 도서가 없고 전자책만 판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