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내 삶을 어루만져준 12인의 예술가’와 같이 갤러리스트인 저자가 애호하는 12인의 여성 미술가를 소개하는 책이다. 여기서 소개하는 12인의 미술가는 조지아 오키프, 마리 로랑생, 천경자, 수잔 발라동, 키키 드 몽파르나스, 카미유 클로델, 판위량, 마리기유민 브누아, 프리다 칼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케테 콜비츠, 루이스 부르주아. 원래 마리 로랑생을 다룬 책을 찾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읽어보니 글의 내용이 알차고 깊이 있어 전체를 다 읽게 되었다. 천경자, 카미유 클로델과 프리다 칼로 정도가 그나마 들어본 이름이고 후자 두 명의 간단한 정보만 기존에 접했을 뿐 나머지 미술가는 생면부지다.
이 책이 동종의 다른 미술 입문서와 구별되는 특색은 저자의 약력이다. 보통 미술 관련 서적은 화가 또는 큐레이터 등 미술 전공자가 집필하게 마련이다.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감상, 기법 등 전문적 영역은 문외한으로서는 접근에 한계가 있어서다. 저자 송정희는 문학 전공자로서 미술 전시 및 기획에 관심을 가져 갤러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의 글에서 짙은 문학적, 인문학적 이해와 해석이 두드러진 건 이러한 배경 때문이고 그것이 이 책을 더 돋보이게 하고 있다.
저자는 12인의 예술가를 네 가지 키워드로 구분하여 배치한다. ‘아름다움, 그 너머’, ‘뮤즈에서 예술가로’, ‘몸을 통해, 몸을 위해’, ‘회복과 치유의 약속’이 그것이다. 예술가로 아름다움을 천착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아름다움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이들로 특히 조지아 오키프, 마리 로랑생, 천경자를 다룬다. 추상표현주의의 개척자 오키프는 꽃, 짐승 뼈 등 그동안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사물을 확대함으로써 그로테스크한 신비로움을 일깨운다. 그녀의 말처럼 본 것을 그렸을 뿐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보고자 한 사람은 이전에 아무도 없었다. 마리 로랑생에 대해서는 건너뛴다. 천경자의 예술과 굴곡진 삶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한국적인 것과 이국적인 것의 조화를 꿈꾼 그녀의 미술에 대한 평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위작 논란으로 한국을 떠나게 된 그녀의 말년이 안타깝다.
오키프는 사막에 나뒹구는 하찮은 것들, 평범한 것들, 작은 것들, 버려진 것들을 크게 그렸다. 사람들은 그것을 추상이라고 했고, 그녀는 “그저 본 것을 그렸을 뿐”이라고 했다. (P.35)
수잔 발라동, 키키 드 몽파르나스, 카미유 클로델을 다룬 장은 남성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모델 역할을 넘어서 스스로 예술가의 고지로 올라선 인물을 다룬다. 이 점에는 앞에 나온 조지아 오키프도 마찬가지다. 수잔 발라동은 르누아르, 모딜리아니, 드가, 툴루즈 로트레크 등 화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모델이다. 키키는 사진작가 만 레이, 화가 후지타의 모델이자, 댄서와 가수로 ‘몽파르나스의 여왕’으로 불렸다. 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인 동시에 자신 또한 뛰어난 조각가였다. 피사체로 그치지 않고 자신 또한 예술가로 우뚝 서기를 고대하였지만, 정신병원에서 불행한 삶을 마감한 클로델은 그나마 현대에 재평가되고 있다. 발라동과 키키, 특히 여체를 이상화하지 않고 실제적인 모습으로 그려낸 발라동은 아쉽다.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달리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부풀리거나 포장하지 않았다. 그녀의 자화상은 강인하고 굴곡진 그녀의 내면을 현실적인 표정으로 살려냈다. (P.112)
수잔 발라동이 여성 초상화와 누드화를 많이 그렸지만, ‘몸을 통해, 몸을 위해’ 장에서 소개하는 화가는 판위량, 브누아, 프리다 칼로다. 판위량은 삶 자체가 예술과 맞물려 있다. 창기 출신의 여성, 중국인이지만 중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럽에서 방랑하며 정착하지 못한 미술가. 영원한 사랑과 존경의 대상인 판찬화와 재회하지 못한 채 끝끝내 떨어져 죽음에 이르는 불행한 삶. 벌거벗은 자신의 몸을 통해 인간과 여성을 끊임없이 사유한 예술세계.
판위량은 자국에서 쫓겨난 디아스포라 예술가였고, 그렇다고 유럽인이나 미국 모더니즘의 틀 안에 자신을 맞출 수도 없었던 경계인이었다. 그녀는 중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영원한 타자였다. (P.187)
프리다 칼로와 남편 디에고, 둘의 만남은 천행인가 불행인가 쉽사리 판단하기 어렵다. 프리다를 괴롭힌 디에고의 행동만을 따져보면 만나서는 안 될 인연이겠지만, 그것이 결국 프리다의 예술로 빚어졌음을 고려한다며. 예술과 인생은 온전히 양립하기 어렵다. 마리기유민 브누아는 신고전주의 화가로서 역사화, 초상화, 자화상 등 여러 작품이 있지만 이 책은 <마들렌의 초상>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19세기 초에 그린 흑인 여성의 상반 나신을 통해 단순히 예술적 아름다움을 넘어서 내밀하게 잠재한 욕망, 편견과 환상을 벗겨내는 저자의 문장은 인문학적 해석의 장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당시 남성 예술가들과 문학가들에게 깊이 스며들어 있던 성적 욕망은 오리엔탈리즘과 아프리카에 대한 환상으로 나타났다. 이런 욕망과 환상이 초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세 개의 시선 사이에 촘촘히 개입하고 있다. (P.202)
마지막으로 ‘회복과 치유의 약속’이라는 주제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케테 콜비츠, 루이스 부르주아는 앞선 미술가들에 비하면 20세기로 넘어서는 현대 예술가다. 각각 행위예술, 판화, 설치작품이라는 비주류 장르에 천착하여 일가를 이루고 미술계의 주요 일원이 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예술가가 여기 있다>, <리듬 0>, <연인들, 만리장성 걷기> 등의 퍼포먼스는 인상 깊고 때로는 감명 깊지만, 여전히 행위예술 자체는 인물, 시간, 공간의 기억에 의존하기에 당대성을 넘어서기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예술가가 여기 있다>를 제외하면 오히려 고행에 가까운데, 고통을 넘어선 너머를 지향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콜비츠는 빈곤, 전쟁, 고통을 직시하고 고발함으로써 예술을 향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상류층과 부르주아를 위한 예쁜 객체만을 과연 예술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우리네 삶은 행복보다는 고통과 불행이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말이다. 그녀의 <판화> 연작, <피에타> 등은 예술의 다른 소명과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그것이 민중미술에 영향을 미쳤음은 당연하리라. 루이스 부르주아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거대한 설치작품 <마망>은 책에 실린 조그만 사진이 아니라 실물을 봐야 비로소 체감할 수 있을 것이며, 바느질 작업의 산물도 마찬가지로 사진과 글로는 공감에 한계가 있다. 다만 저자가 던진 질문은 하나의 숙제임에 공감한다.
예술과 비예술의 아슬아슬한 경계, 모호한 섹슈얼리티, 다중 정체성을 내포한 그녀의 말년 바느질 작업은 여전히 우리가 지금도 물어야 할 질문이자 과제로 남아 있다. (P.303-304)
저자가 여성 미술가만 소개한 것은 동성 예술가의 삶과 예술세계가 저자에게 더 와닿아서라고 밝힌다. 따라서 직접적 의도는 아니더라도 여성주의적 시각이 내용과 글에 일부 반영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책을 읽어 나갈 필요가 있다. 판위량을 창기의 신분에서 구제하고 결혼한 후 예술가로서 대성하도록 물심양면의 지원을 한 판찬화를 제외한 대다수 남성 인물은 그리 긍정적으로 기술하지 않고 있음도. 오키프와 스티글리츠, 로랑생과 아폴리네르, 클로델과 로댕, 프리다와 디에고, 마리나와 울라이 등을 보면 여성 예술가에게 남성과 사랑은 불타오르는 예술의 동력인 동시에 자신을 갉아먹는 촛불과도 같다.
알지 못하였던 좋은 미술가를 여럿 알게 된 것이 이 책에서 얻은 큰 소득이다. 꼼꼼하고 차분하게 써 내려간 저자의 문장은 인문학적 글쓰기의 미덕과 결부하여 예술가와 예술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반복해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결국 미술가와 작품에 대한 일반적 소개를 넘어 해당 인물의 삶과 예술의 진지한 관찰과 해석이 주는 문장의 맛을 깊이 음미하기 위해서다. 개별 미술가에게 할당된 적은 분량의 글에서도 핵심적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으며 나아가 소개된 예술가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켜 추가로 지적 욕구마저 생기게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