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뮤어는 미국에서 ‘국립공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그의 노력 덕분에 요세미티, 옐로스톤 등이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의 자연 에세이 10편을 수록하고 있다. 20세기 전후에 쓴 글이지만 여전히 신선함과 생동감이 넘친다. 그는 주로 미국 서부 지역에서 활동하였기에 이 책의 지역적 배경도 캘리포니아, 알래스카, 오리건, 워싱턴이 중심이 되며 동쪽으로는 옐로스톤과 유타주 정도까지다.
그의 글을 읽을 때 미리 유념할 점이 있는데, 일단 이 당시는 관광과 개발 등 인간에 의한 파괴 행위가 제법 있지만 현대처럼 대대적으로 본격화하기 이전이다. 뮤어는 문명이 거의 개입되지 않은 야생 상태의 자연과 동식물을 경험하였다. 알래스카와 요세미티 등과 관련해서 지구온난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뮤어가 경이롭게 발견하고 찬미하고 감동적으로 기술한 만년설과 빙하의 상당수는 사라지거나 멀찌감치 내륙으로 후퇴하였다. <글레이셔만 발견 이야기>와 <알래스카 여행>의 여정을 구글 지도로 비교해 보면 그 역력함에 아련함을 느끼게 된다.
만을 둘러싸고 서 있는 산기슭과 다섯 개 거대 빙하의 웅장한 전면도 볼 수 있었다. 그중 가장 가까이 있는 빙하는 바로 내 발아래에 있었다. 내가 글레이셔만 전체를 조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얼음과 눈과 새로 만들어진 바위로 채워진 고독한 풍경. 그 어둠과 적막과 신비. (P.17, <글레이셔만 발견 이야기>)
다섯 개의 거대 빙하가 한 곳에 몰려드는 글레이셔만을 실제로 조망한다면 압도감에 사로잡히게 될 것 같다. 저자의 이름을 딴 뮤어 빙하가 가장 거대하다는데, 강이 아니라 호수의 느낌을 주는 빙하라니. 그조차도 옛날에는 만 전체가 하나의 거대 빙하였다니 사뭇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웅장함. 빙하라면 그린란드나 아이슬란드 이상의 그야말로 극지방에 가야 목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시애틀 지역을 여행할 기회가 생기면 해안선을 따라 글레이셔만 국립공원까지 올라가는 코스를 꼭 체험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압도적인 자연풍광에 우선 매혹된다. 하지만 경치는 계속 보면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이때 동식물 등의 다채로운 식생이 뒤따른다면 금상첨화다. 요세미티의 곰, 시에라사슴, 더글러스청설모, 줄무늬다람쥐, 마멋. 오리건의 더글러스전나무, 고귀한 소나무 피너스 램버티아나 소개를 보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이들 지역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주요 동물은 곰과 방울뱀인데, 인간에게 생명의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위험 동물이다. 하지만 뮤어는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며, 그들에 대한 두려움이 과장되었으며 서로 간 존중하면 그다지 위험 요소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뮤어의 글을 읽다 보면 때로는 여행 에세이 또는 가이드북의 인상을 받는데, 실제로도 그런 식의 뉘앙스를 풍기는 문장도 간혹 있다. 국립공원은 보호와 관광이라는 이중적 목적을 지닐 수밖에 없다. 자연보호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지역경제라든가 산업적 측면도 외면하기에 곤란하기에 적절한 관리 아래 이루어지는 여행 산업 발전을 위해 그가 에세이로 소개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알래스카 여행>,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전형적이며, <요세미티의 동물들>과 <오리건의 숲과 동식물>도 다분히 목적성을 띠고 있다. 뮤어는 인간을 배제한 자연보호를 주창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중심의 자연관도 배척한다. <야생 양모>에 피력하였듯이 인간의 효용 관점에서 자연과 야생을 가치 판단하면 왜곡과 편향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현재의 문명이 가르치는 신조를 보면 세상을 특별히 사람이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생각보다 문화와 야생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극복하기 힘든 장애도 없는 것 같다. (P.272-273, <야생 양모>)
자연 에세이에 인간적 요소가 추가되면 더욱 빛나게 된다. 저자가 <스무고개 골짜기>에서 “자연의 세례를 받은 경험”(P.103)이라든가 리터산 등반 시 암벽에서 운명이 다할 것처럼 꼼짝 못 한 위험담(<가까이에서 바라본 시에라네바다 산맥>), 곰 및 방울뱀과 대치한 이야기 등은 재미와 흥미를 배가한다. ‘풀의 남자’ 데이비드 더글라스 에피소드(<오리건의 숲과 동식물>)도 놓칠 수 없다. 파괴와 약탈의 시기에 그는 존 뮤어와 함께 아메리카 자체를 사랑한 사람이다.
현대의 문명인에게 자연과 야생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여가와 휴식, 모험과 체험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문명이 심화할수록 갖게 되는 파편화와 소외감을 치유하는데 자연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이 간섭하고 지배하지 않는 자연은 우주의 본원적 질서를 품고 있어서다. 뮤어는 이 점을 강조하고 역설한다. 국립공원 지정은 이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흙과 나무, 바위와 물, 공기와 햇살이라는 형상 안에는 본질적인 영적 세계가 감추어져 있다. 그러니 ‘본질적’이라 불리는 것들을 진정 본질적인 영적 세계로 이렇듯 일시적으로 표현한 것을 자세히 살펴보고, 이곳이 바로 천국이며 천사들이 머무는 곳임을 깨달으라고 말이다. (P.251, <옐로스톤 국립공원>)
이 책의 최초 정가 책정 근거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좋은 책을 독자에게 멀찌감치 떨어뜨리는 최고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반면 재책정된 가격은 가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다. 지나친 양극단에서 적정성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