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 부부가 마꼰도를 개척하고 가문을 일구어내고 자손에 이르는 일종의 연대기다. 전 20장 중 1권은 1장에서 10장을 다룬다. 인물로 보면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에서 증손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까지 차례차례 나타난다. 삼백 면에 못 미치는 분량에 4대를 다루고 있으므로 진행 속도가 제법 빠르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호세 아르까디오’는 부엔디아 본인, 첫째 아들, 증손자까지 계속 사용하며, 중간에 단명한 손자 이름도 ‘아르까디오’를 쓴다. ‘아우렐리아노’도 마찬가지다. 둘째 아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와 그의 많은 아들들, 증손에도 아우렐리아노가 있다. 여자 인물의 이름에는 우르술라, 레메디오스, 아마란따를 붙인다. 이 소설을 읽으면 가끔씩 가계도를 들여다봐야 헷갈리지 않는다. 작가는 아르까디오와 아우렐리아노 이름 간에 뚜렷한 성격 차이를 부여한다. 전자는 감각적이며 충동적이고, 후자는 내성적이며 강한 의지력을 소유한다. 둘 다 고독한 면모를 보인다는 점은 공통이다.
우르술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다. 가문의 긴 역사를 통해 똑같은 이름들을 집요하게 되풀이해 씀으로써 확실해 보이는 결론들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P.269)
그들이 보존했던 유일한 공통점은 그 집안 식구들이 지닌 고독한 기질이었다. (P.271)
작가는 마술적 사실주의로 유명하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부엔디아 가문의 연대기이므로 사실주의에 기반하여 전개하고 있다. 이따금씩 판타지적 요소가 아무렇지 않은 듯 개입하는데, 이것이 마술적 측면을 가리키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에야 워낙 환상 문학 계열이 득세하고 있으므로 별거 아니게 보이지만, 이 소설이 발표된 1960년대라면 수용성의 관점에서 전혀 다를 수 있겠다 싶다. 니까노르 레이나 신부의 공중 부양,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죽음에 맞춰 호우처럼 내리는 꽃비, 아우렐리아노 세군도 소유 가축의 초자연적인 생산성 등등.
너무나 많은 꽃들이 하늘에서 쏟아졌기 때문에 아침이 되자 거리가 폭신폭신한 요를 깔아 놓은 것처럼 되어버려서 장례 행렬이 지나갈 수 있도록 삽과 갈퀴로 치워야 했다. (P.212)
한국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윤리적 기준에서 불편하게 다가오는 건 사실이다. 서양에서는 근친 간 결혼이 비교적 자유롭지만 우리네는 그러하지 않으므로. 가문의 창시자 부엔디아 부부는 사촌간이다. 근친결혼은 돼지꼬리 자손을 낳는다는 미신을 무릅쓰고 그들은 결혼한다. 호세 아르까디오가 여동생과도 같은 레베까와 결합하는 건 그렇다 치자. 아우렐리아노 호세와 고모 아마란따는 아슬아슬한 선을 넘을 뻔한다. 호세 아르까디오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형제는 삘라르 떼르네라를 정부(情婦)로 공유하여 각자 아들을 둔다. 1부에서는 부정적 영향이 드러나지 않지만, 가계도를 보면 2부에는 분명히 중대한 문제로 불거지는 게 보인다.
남성 인물이 온갖 사고와 방탕, 모험을 무릅쓰면서 끊임없이 부엔디아 가문을 몰락시킬 위험에 노출시키는 가운데 가문을 지탱하는 역할을 우르술라와 딸 아마란따가 도맡고 있다. 어찌 보면 소설 속 실질적 주인공은 그네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다. 우르술라는 고손주까지 태어날 때까지도 장수하며 가문을 발전시키고 저택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기독교적 신념은 미약하지만 인륜을 존중하고 상식에 근거하여 삶과 가문을 꾸려나가는 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아마란따는 어머니와 전혀 다르다. 레베까와 삐에뜨로 끄레스삐의 결혼을 깨기 위해 집요하게 애썼는데, 정작 끄레스삐가 본인에게 빠져들자 그와의 결혼을 단호하게 거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다. 훗날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과 사랑하면서도 마찬가지로 결혼을 거부한다. 실수지만 레메디오스를 죽게끔 하고, 조카와 부적절한 행각을 벌이는 등 윤리적으로 비판받을 여지가 크지만 어쨌든 독신으로 살면서 가문을 지킨다.
정치와 혁명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중남미의 정치적 혼란은 이 작품에도 깊숙이 반영되어 있는데, 자유파와 보수파 간 이념 다툼과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지칠 줄 모르는 군사 봉기가 그러하다. 번영하던 마꼰도 마을은 전세의 상황에 따라 자유파와 보수파가 교차로 지배한다. 잔혹한 통치자의 면모를 보이다가 총살당한 아르까디오와, 부엔디아 가문과 우호적이며 관용적 통치를 하지만 결국 친구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에게 총살형을 당하는 몬까다 장군이 이념의 헛됨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작중에서 비중이 크고 가문의 실제적 리더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혁명군 군권을 장악하기 위한 비윤리적 처사와 권력욕에 빠질뻔한 위험, 수십 번의 봉기와 갑작스러운 타협 등은 개인의 성격뿐만 아니라 전쟁의 무의미함과 중남미 정치적 해법이 녹록지 않음을 나타내는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은 결국 전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게 되었다. 과거에는 실제적인 행동이었고, 젊음의 거부할 수 없는 열정이었던 전쟁이 이제는 막연한 개념, 다시 말하면, 공허한 그 무엇으로 변모되어 버렸던 것이다. (P.242)
마지막으로 집시 멜키아데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벗의 관계인 그는 주기적으로 마을을 찾아와 문명의 새로운 문물을 소개하는 동시에 마법사, 연금술사와도 같은 면모를 보인다. 그와 부엔디아 저택에 자리잡은 그의 작업실은 이 작품에서 가장 마술적 요소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인 동시에, 부엔디아 가문의 미래에 관한 예언은 작품 전체와 결말에 이르는 여정을 상징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멜키아데스]는 마꼰도의 미래에 관한 예언 하나를 발견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마꼰도가 부엔디아 가문의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유리로 지은 거대한 집들로 이루어진 번쩍거리는 도시가 될 거라는 것이었다. (P.87)
작가 마르께스는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 부부에서 비롯하여 후대 자손에까지 소설의 전개는 물 흐르듯 막힌 곳이 없다. 부엔디아 가문의 세대 간 흐름이 빠르게 전개되는 가운데 각 세대와 인물의 상세한 특성과 두드러진 사건을 빼놓지 않고 기술함으로써 종횡으로 풍성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안으로는 인물의 심리와 내면에서 밖으로는 군사혁명과 정세에 이르기까지 다루는 스케일도 크다. 무엇보다 난해하고 개인적인 심리 묘사를 지양하고 이야기의 흐름 자체를 중시하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2권에서 소설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지만, 1권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움을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