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생텍쥐페리의 이 책을 읽다가 중도에 덮고 <내 마음의 성채>라는 편역본을 읽었다. 그래도 원본에 미련이 남아 다시금 도전한다. 원전은 총 21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권은 1장에서 108장까지 수록하고 있다. 대체로 순서를 따르지만 중간에 몇몇 빠진 장이 보인다. 이 부분은 확인이 필요하다.
이 작품을 여전히 소설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크게 봐서 우화와 잠언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별한 서사 구조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작중 화자는 베르베르의 왕으로 아버지에게서 나라를 이어받아 백성을 다스리고 있다. 내용은 화자의 생각, 기도, 왕국 내 인물들과의 대화 등으로 전개된다. 외적으로는 국왕으로서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한 통치 철학을 표방한다. 내적으로는 왕국 백성들이 절대자에게 이를 수 있도록 올바른 내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종교철학에 가깝다.
편역서를 읽은 덕택인지 이전보다는 독서가 비교적 수월하다. 이번에도 독서에 실패하면 완전히 덮을 생각마저 품고 있었는데. 거칠게 말하면 작가 또는 화자가 주장하는 바는 단순하다. 사람은 고립된 개인으로 살아갈 수 없다.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조직과 사회의 고차원적 목적을 위해 열정을 품고 헌신할 수 있을 때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그것이 삶의 진정한 목적이고 신에게 다가가는 유일한 길이며, 영혼을 고양하는 방안이다. 이것이 인간 존재의 근원이다.
우리는 삶이란 게 서서히 자신을 헌신하여 무언가를 얻어내는 ‘교감’ 속에서만 그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P.39, 5장)
만일 돌 하나하나가 제자리를 지키지 못한다면 사원 또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각각의 돌이 제자리에서 사원을 위해 맡은 바 소임을 다할 때 비로소 돌들이 만들어낸 침묵이 의미를 갖게 되며, 그곳에서 기도가 이뤄지는 법이다. (P.111, 15장)
받음으로써 살아가지 말고 내어줌으로써 살아가라. 그것만이 그대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이다. 주는 것을 가볍게 여기란 소리가 아니다. 네 스스로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P.221, 60장)
한 편의 논설 또는 논문이라면, 서론과 본론, 결론의 형태로 화자의 주장을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겠지만, 화자는 그렇지 않다.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고 수레바퀴가 돌 듯이 반복한다. 언뜻 무척 지겹고 재미없을 것 같지만, 표현과 대상, 형식에 조금씩 변화를 주면서 되풀이하기에 오히려 화자의 메시지를 한층 강화하는 효과를 얻는다. 화자는 자신의 주장을 공고히 하는 예시로 사원과 배를 자주 언급한다. 화자가 전체를 중시한다고 해서 전체주의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통일을 이룬다는 건 개별적 다양성을 엮어주는 것이지 부질없는 질서 하나를 세워보겠다고 각각의 다양성을 말소시키는 것이 아니다. (P.295, 88장)
내가 영혼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걸 엮어주는 신의 매듭이 되는 전체와 소통하고 내 앞에 들이닥친 벽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다. (P.338, 108장)
<성채>는 생텍쥐페리의 완결작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저자의 원고를 출판사가 취합하고 편집하여 내놓은 작품이다. 현재의 <성채> 구성과 내용이 저자의 애초 의도와 부합한다고 확언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방대한 분량도 저자 자신이 직접 정리하였다면 빼거나 줄이고 합치는 과정을 통해서 줄어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면서 각 장의 내용을 무리하게 연계시키려고 하기보다 자체로서 완결성을 지닌 짧은 에세이로 읽어 나가면 오히려 이해에 낫다는 생각이다. 짧고 간단한 장도 있지만 제법 깊숙한 사상을 다루면서 나름 서사를 갖춘 긴 장도 있다. 모든 장의 내용을 이해하려고 무리할 필요도 없다. 몇 개의 장을 삭제한 까닭도 분명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대지에 굳건하게 서 있는 튼튼한 성채처럼, 인간의 현실적 삶이 확고한 안전과 번영을 누리는 동시에 내면도 온갖 유혹과 위협에 흔들리지 말고 이상에 이르는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 제2차 세계대전에 종군하면서 생텍쥐페리가 보고 듣고 겪었던 일체는 인간성에 반하는 것이었다. 무너진 개인과 사회를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 어느 이념과 가치를 따라야 순수한 본성으로 회귀하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뇌와 사유가 깃들어 있다.
큰 맥락에서 내용 이해에 어려움이 적지만, 군데군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단락 또는 문장도 나타난다. 이것이 번역의 문제인지 원전 자체의 난삽함인지 섣불리 판단하기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