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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책만 보는 바보
  • 내 마음의 성채
  • 생 텍쥐페리
  • 9,000원 (10%500)
  • 2005-04-18
  • : 86

생텍쥐페리의 주요 작품을 읽고 마지막으로 유작 <성채>를 읽으려고 시도하였다. 현대문화센터 판본인데 몇 쪽을 읽은 후 책장을 고이 덮었다. 워낙 난해하다는 말이 있었지만 당최 작가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하고 싶은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택한 게 이 책인데, 이것도 만만치는 않다. 두 번을 거듭 읽어도 어렴풋한 이미지만을 볼 수 있을 따름이었으므로. 게다가 그것이 올바른지 아닌지도 확신할 수 없다.

 

이 작품을 소설이라고 부르는 게 적절한 지도 명확하지 않다. 작중 화자는 자칭 베르베르의 왕이다. 그는 부왕의 뒤를 이어 사막의 왕국을 이끌게 되었는데, 국민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북쪽의 오아시스 도시를 정복하고 단단한 성채를 세우고자 한다. 여기서 성채는 이중의 의미로 나타나는데, 현실의 성채와 마음의 성채가 그것이다. 화자는 양자를 혼용하여 사용하는데, 결국 인간의 행복과 번영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요소의 완성으로 가능하다는 점에서 잘못된 접근이라고 할 수 없다.

 

성채여, 나는 인간의 마음속에 그대를 건설하리라. (P.25)

 

이제 제국은 새로운 성채를 건설하고 사막을 옥토로 만들 것입니다. 시간 속에 씨앗은 삼나무 뿌리로 굳건해질 것입니다. 이제 저의 성채를 세울 것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이 상태에서, 사랑을 가지고 일구어가렵니다. (P.295)

 

내용 자체가 구체적 줄거리와 일정한 서사를 갖춘 게 아니므로 반드시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다. 각각의 장과 이야기가 자체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생텍쥐페리가 앞선 소설에서 드러내고자 했던 삶의 의미와 본질, 죽음과 영웅성에 대한 태도를 포함해서 그의 사상 전반을 살펴볼 수 있다.

 

그대들은 물질에 집착한 인간이 잃어버린 상호간의 유대감을 회복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인간에게 주고받음의 미덕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그대들이 오히려 잘 알 것이다. 그게 없다면 인간 사회의 모든 것은 삭막하기 이를 데 없다. (P.94)

 

인간은 고립된 개체로서의 삶은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인간은 타인과의 유대와 협력 속에서 의무와 책무를 수행함으로써 참된 삶을 찾을 수 있다. 고귀한 가치를 추구하고자 비록 죽음을 무릅쓰더라도 회피하지 않고 묵묵히 행동하는 모습이 진정한 영웅의 삵이다. 평범한 인간도 현실 안주와 타협을 거부하고 노력, 의지, 행동을 통해 현재와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하나의 인간이 진실로 휴식할 수 있는 방법은 주사위 놀이가 아니라 자신이 건축한 성전의 마지막 기왓장을 올리는 순간의 환희, 바로 그런 것이다. (P.143)

 

사회와 연대를 강조한다고 해서 전체주의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개인 자체의 고유성과 자유를 존중하면서 그것이 고립과 방종으로 흐르지 않도록 협력과 규율을 지니는 상태를 높이 평가한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각성을 통해 대의와 미래를 향해 나아가며 때로는 희생마저도 감수하면서 인간과 사회의 완성으로 굳건한 성채를 쌓아나가는 것, 그것이 화자이자 작가의 지향점으로 이해한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성전의 신성함과 바꾸며, 성전은 그들에게 생의 의미를 부여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P.67)

 

화자가 이토록 인간의 완성에 역점을 두는 까닭은 인간 존재가 갖는 생명의 본원성에 대한 인식이다. 유한한 생명체로서 탄생과 죽음에 이르는 여정에서 단지 생명 존속에만 연연하다가 삶을 마칠 때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무엇에 있을까. 인간의 다양한 삶의 양태에서 우리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 게 바람직한가. 정신적, 신체적으로 타락하지 않고 고양된 삶의 가치를 지니기 위해 무슨 노력을 할 것인가 이런 등등에 대한. 작품 말미의 화자에게서 ‘어린 왕자’가 자연스레 연결됨은 결코 착각만은 아닐 것이다.

 

아아! 이제 홀로 있다는 피로감이 저를 엄습합니다. 순수란 이토록 멀리 있는 걸까요? 그러나 저는 초월함으로써 이루었습니다. 완성 안에서 백성들의 영혼을 아름답게 가꾸었습니다. 이곳이 바로 나의 별이 되었습니다. (P.298)

 

이 책은 <성채>의 편역본이다. 엮은이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방대하고 어려운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발췌하고 구성도 달리하였다. 편역자는 원작의 긴 장을 짧은 이야기로 잘게 나누고 소제목을 추가하였다. 덕분에 각 장은 우화와 아포리즘(잠언)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깊은 함의를 지닌 주옥같은 금언이 곳곳에 넘쳐난다. 이것이 작가의 원래 의도에 부합하는지, 원작과의 상이 여부와 정도는 현 단계에서는 알지 못한다.

 

이 자체로서 유익하고 흥미롭지만 결국 원래 형태로의 <성채>를 다시 읽어야만 할 것 같다. <성채>의 내용을 이제라도 이해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설사 이해를 못 한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성채>의 본모습을 확인하고, 이 책과의 유사와 상이를 알 수 있다면 자체로 소득이 없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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