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나는 2022년 수상 작가인 아니 에르노를 읽는다. 항상 그렇듯이 생소한 작가다. 이럴 땐 1974년 데뷔작인 <빈 옷장>을 펼친다. 그다지 많지 않은 분량이 우선 마음에 든다. 만만히 여겼다가 의외로 진도가 나가지 않음에 놀란다.
지긋지긋하다. 그들에게, 모두에게, 문화, 내가 배웠던 모든 것에 구역질이 난다. 나는 사방에서 농락당했다.... (P.15)
드니즈 르쉬르. 화자이자 주인공이다. 화자의 어릴 적부터 스무 살이 되기까지의 자전적 삶을 회상한다. 불유쾌한 개시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갓 대학생이 된 그녀는 방금 낙태 전문 산파의 집에 갔다가 나오는 길이다. 그녀의 삶이 어떠하였던가.
화자는 사회적, 문화적 부조화를 겪는다. 도시 외곽에 있는 가난한 마을의 카페 겸 식료품점 주인의 딸인 어린 드니즈. 그가 보고 듣고 말하는 이웃은 부모의 허름한 가게와 술집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가난한 서민들이다. 반면 시내의 사립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드니즈가 만나는 사람들은 전혀 다르다. 부모보다 고상하고 우아한 선생님, 자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세련된 반 친구들. 그는 거기서 어리숙한 촌닭이 되고 만다.
우리 집과 다르다는 것을, 선생님이 내 부모와 다르게 말한다는 것을 이내 알아버렸지만,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있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뒤섞였다. (P.68-69)
드니즈의 모순되고 이중적인 삶. 시내와 시골, 가난과 유복, 교양과 무지, 세련과 투박. 그 속에서 화자는 현실을 자각하고 부모와 이웃의 상대적 저열함에서 탈출하고자 한다. 방법은 오직 자신이 지적으로 누구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뿐. 바칼로레아에 합격하여 대학에 진학하고 지긋지긋한 그들에게서 벗어난다.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
지겹다. 이 모든 것을 증오한다. 나는 갇혀 버렸다. 드니즈 르쉬르, 카페 겸 식료품점 집 딸, 한쪽에 나열해 놓은 음식들과 반대쪽에 술을 기다리며 주저앉아 있는 남자들로 가득 찬 테이블 사이에 껴 있다. (P.122-123)
화자가 일찍부터 성에 관심을 두게 되는 건 타고난 성향일 수도 있지만, 억눌린 욕망이 다른 배출구를 찾지 못하는 까닭일 수도 있다. 첫 고해성사의 참담한 실패 이후 드니즈는 은밀하게 숨긴다. 고등학생 시절 자신의 말처럼 사냥에 성공한 남자애와 짜릿한 쾌락을 즐기는 화자. 대학생이 되어서 만난 남자와의 고정적 관계는 드니즈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였는지 알 수 있다. 드니즈의 임신은 방탕과 무지의 결과라기 보다는 남자 친구 집안의 다른 세계로 진입하고자 하는 욕구의 발현이기도 하다.
그는 시험에 합격했고 나는 여전히 기다린다. 나는 그가 알아서 할 것이라고, 그의 가족들이 모두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P.225)
작가는 이 소설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드니즈가 겪는 내적 갈등과 모순된 생활의 단면. 고향에서 탈출하여 도시인으로 진입하고자 하는 시도의 실패. 여기에 드니즈의 남성 경험이 결부되어 어수선한 전개를 보이지만 서사는 비교적 간단하다. 다만 이 작품이 21세기가 아닌 20세기 후반에 쓰였다는 것이 당대 독자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겠다. 오히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표현 기법이다. 어린 여학생의 자전적 글쓰기답게 직접 쓰는 듯한 다소 거칠고 혼란스러운 문장은 오히려 생동감을 자아낸다. 천진할 정도로 솔직하게 토로하는 듯하다가도 결정적 순간에는 감정과 행동, 사건을 직접 묘사하기보다는 간접적으로 슬쩍 암시하며 넘어간다.
드니즈의 선택은 올바른 것이었는가. 자기 부모를 증오한다고 밝힐 정도로 화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지긋지긋해한다. 시내의 사립학교 다녔기에 중산층 사회와 접할 기회가 컸고 그것은 자신과 가족과 이웃에 대한 상대적 열등감과 박탈감으로 이어졌으리라. 다만 그래도 클로파르 동네 아이들보다는 처지가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발전의 긍정적 동력으로 삼았다면 모르겠지만 자기 부정의 단초로 삼는 데 불과하였다. 결국 그것이 대학생으로서 지식인으로서 주체적 삶을 끌어나가는 밑바탕이 못 되고, 열등감을 품은 채 남자에게 의지하는 귀결로 이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모든 것이 뒤틀렸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P.228)
아직은 아니 에르노란 작가를 잘 모르겠다. 이 작품이 에르노 문학의 본령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옮긴이의 말’에서 소개되었던 작가만의 독자적 주제 의식, 독특한 글쓰기 방식이 여기서는 두드러지지 않는다. 몇 편 더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