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옮긴이에 의해 2004년 간행한 칸초니에레 1~50편의 후속작이다. 이번에는 표제처럼 칸초니에레 중 51~100편의 시를 담고 있다. 다만 이번에는 단독 번역이다. 수록작은 주로 소네트 외 발라드 3편, 마드리갈 2편, 칸초네 5편, 세스티나 2편이다.
축복 있으리니, 그날과 그달, 그 해, / 그리고 그 계절과 그때, 그 시각과 그 순간, / 그 은총의 마을, 그리고 나를 사로잡은 / 아름다운 그녀의 두 눈에 넋을 빼앗긴 바로 그곳. (P.54, 61편)
역시 핵심을 차지하는 내용은 라우라에 대한 사랑이다. 라우라를 향한 사랑, 그리움, 갈망과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슬픔, 절망, 회한이 교묘히 엇갈린다. 사랑은 기쁨과 행복이지만, 보답받지 못한 사랑은 고통과 분노, 슬픔 나아가 증오로도 변모되기 마련이다.
<칸초니에레> 전 366편 중 거의 전부가 라우라와 사랑에 관련된 시이므로, 한꺼번에 읽다 보면 성마른 독자라면 물리고 지칠 정도이다. 이 정도면 단순한 사랑과 애정을 넘어서 거의 광기 어린 집착의 수준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다른 측면으로 보면 시인의 그녀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깊고 한결같음의 증좌라고 할 수 있으리라. 게다가 일순간의 감정에 휘말려 단기간에 폭풍같이 써 내려간 시가 아니고 10년, 20년에 이르는 기나긴 기간에 걸쳐 쓰고 다듬고 복기하며 재음미한 시들이 아니겠는가.
이제 돌아보니, 나의 주여, 10년 하고도 또 한 해를 / 거부할 수 없었던 잔인한 멍에에 / 짓눌려 가혹한 삶을 살았나이다. (P.58, 62편)
잔혹한 길, 불현듯 사랑에 사로잡혔네. / 매년 같은 계절이 돌아와 / 나의 해묵은 상처를 새롭게 하는구나. (P.240, 100편)
무엇보다 시인은 라우라의 눈빛에 매혹당하고 지배받는다. 최초의 그 순간 그녀의 눈빛으로 공격받고 이후 영원히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함을 무수한 시구에서 표현한다. 특히 이 책의 수록작 중에서 세 편의 칸초네(71~73편)는 각 시의 분량도 압도적이거니와 라우라의 눈을 제재로 삼고 있는 점에서 특별하다. 라우라의 눈은 시인에게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주는 양면적 존재다. 시인은 그 감정을 여과 없이 찬가와 애가로 형상화한다. 한편 84편 소네트는 구성 면에서 심장과 눈의 대화 형식으로 사랑의 불가피성을 나타내고 있어서 이색적이다.
사랑이 둥지를 튼 그대 어여쁜 눈에, / 내 어설픈 문체를 바치오니 / 본성은 게으르지만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네. (P.96, 71편)
내 언제나 달려가네 / 그 빛을 향해, 마치 내 구원의 뿌리인 양, / 죽음을 갈망하며 달음질칠 때, / 그 빛에 머무는 시선만으로도 나 살아가리라. (P.128, 73편)
앞서 읽은 페트라르카 서간문을 보면, 시의 주인공 라우라는 실제 세속의 인물인 동시에 시인 마음속에서 하나의 이상화된 불멸의 여인상으로 승격화된다. 신에게 끝없는 기도와 찬미를 드리듯 시인은 라우라의 노래를 지칠 줄 모르고 읊는다.
시인의 진정한 슬픔은 그녀를 향한 무한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라우라의 냉대에 있다. 작중에서 라우라는 시종일관 시인의 마음을 일부러 외면하면서 경멸과 멸시의 눈초리로 냉대한다. 물론 그녀가 유부녀 신분이기에 당연하겠지만 극적인 대비를 위해 한층 과장하여 표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따금 라우라도 실제로는 마음 한편에 시인을 향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시구를 보면 사실일지 아니면 시인의 착각 내지 자기 위안인가 궁금하다.
사실인즉 만에 하나로 사랑을 이룬 나라오. / 나의 적은 정말 강했지만, / 나는 그녀의 가슴을 관통하는 슬픔을 보았다네. (P.198, 88편)
라우라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 몇 편의 시는 오히려 많지 않기에 한층 주목하게 된다. 53편 칸초네는 콜라라는 인물에 대한 것이다. 서간문에서 콜라의 이념에 페트라르카가 열렬히 동조하였고, 그의 타락에 시인이 커다란 실망을 표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콜라와 그가 바꿔놓을 정치체제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잘 표현한다. 친구 콜론나에게 보내는 소네트(58편)와 동생에게 바치는 소네트(91편), 그리고 시인 치노의 죽음에 바치는 소네트(92편) 모두 흥미롭다.
최근에 번역 출간된 <칸초니에레> 완역본을 얼마 전에 구입하였다. 천천히 시간 날 때마다 찬찬히 읽으면서 음미해 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