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르카는 <신곡>을 쓴 단테의 후배이자, <데카메론> 작가인 보카치오의 동년배 시인이다. 중세 말 르네상스 초기 인물의 시가 현대에까지 절창으로서 지속적인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다. 이 책은 페트라르카 탄생 700주년을 기념하여 시집 <칸초니에레> 중 100편의 소네트를 발췌하여 번역하였다.
<칸초니에레>는 366편의 시로 이루어졌는데, 몇 가지 유형의 시도 있지만 대다수를 차지한 시는 소네트다. 소네트 하면 셰익스피어가 떠오르지만, 기실 소네트 형식을 완성한 인물은 바로 페트라르카라고 한다. 4행, 4행, 3행, 3행의 총 14행 형식의 정형시인 소네트의 참모습은 번역시로는 알기 어렵다. 역시나 원문을 봐야 할 테지만 이러한 한계를 유념하고라도 페트라르카에 도전한다.
366편은 내용상 서시와 365편의 본편으로 나눌 수 있어 구성상 1년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 책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1부와 2부의 구성이 시인이 연모하던 라우라의 삶과 죽음을 경계로 구분한 점도 있어 시인이 시집 구성에 만전을 기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페트라르카는 죽음을 목전에 둔 평생을 이 시집을 다듬는 데 틈틈이 할애했다고 하니 <칸초니에레>야말로 페트라르카의 삶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그대의 아름다운 두 눈이 나를 사로잡았으니, / 여인이여, 나는 사랑의 포로가 되어, 정신을 잃고 말았다오. (P.36, 3편)
시인의 눈과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은 여성은 라우라(Laura)다. 이 시집은 그녀를 향한 시인의 구구절절한 사랑의 심정을 오롯이 바치고 있다. 시인에게 라우라는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닮은꼴이자, 영원의 여성상이라는 점에서 파우스트와 그레트헨, 베르테르와 샤를로테와도 멀지 않다. 다만 라우라에 대한 시인의 사랑은 쌍방보다는 일방에 가깝다고 해야 하리라. 작중에서 라우라가 시인의 존재를 진지하게 알고 교감을 가졌다는 어떠한 추측도 어렵다.
지상에서 대자연과 하늘을 보고자 하는 자는 / 가능한 한 와서 그녀를 찬미하시라, / 내 두 눈에만이 아니라, 미덕을 괘념치 않는 / 눈 먼 세상을 위해 홀로 태양인 그녀를, (P.190, 248편)
라우라는 자연의 경이로서 시인에 의해 모든 여성 중 최고의 지위에 오르며, 사후 세계에서마저 그곳의 감탄과 찬사를 불러일으키는 극상의 존재다. 그녀의 외모, 말, 행동 등 일체의 모든 것이 시인에게는 아름답고 사랑스럽기에 그지없다. 라우라는 작중에서 여러 시적 표현으로 변용되는데, 월계수(lauro), 바람(l’aura), 라우레타 등이 그러하다. 특히 월계수는 용법을 확장하여 아폴로 신까지 연계하여 활용한다.
나는 고통을 먹고, 울면서 웃는다, / 하니 죽음과 생명이 내게는 똑같이 기쁘지 않네, / 여인이여, 당신 때문에, 나는 이 처지에 있다오. (P.145, 134편)
사랑은 아름답고 기쁘고 행복한 감정인 동시에 슬픔과 고통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연인이 자신의 마음을 몰라 주거나 무심하게 군다면 이로 인한 상처는 한층 깊은 법이다. 이 책에서 시인은 라우라를 때로 적이라 부르며 투정을 부리는 듯한 어감이지만, 사랑과 증오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기에 극단의 사랑이 증오로 변질되는 경우는 역사에서 간혹 볼 수 있다.
시집 전반부의 어느 시편을 들추어도 라우라를 그리는 시인의 애절한 심정을 절절히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비록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의 어쩔 수 없는 한탄의 반복일지라도. 그럼에도 독자가 지루함과 포만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표현의 다채로움, 감정의 유동적 변화 등이 적절한 시구의 배치와 잘 어우러져 있기에 시로 쓴 내밀한 일기랄까 편지글을 읽는 경험을 독자가 갖게끔 해서이다.
이 시집이 라우라와 사랑만을 담고 있지는 않다. 비록 수효는 적더라도 다른 제재의 시작품도 이따금 볼 수 있다. 시인 치노의 죽음을 애달파하거나(92편) 특히 당대 교황청의 타락을 비판하는 시편(136편, 138편)이 눈에 띈다.
시인의 삶과 창작의 원동력인 라우라가 세상을 떠나자 이후의 소네트는 그녀를 향한 애탄과 찬미, 그리고 회상이 주 제재로 바뀐다. 이승을 떠나 저승에 가버린 라우라, 생전에 그녀는 시인의 사랑을 몰라준 ‘잔인하고 인색한 주인’(320편)이지만 그로 인해 행과 불행의 모든 감정을 경험하게 된 시인은 눈물 속에서 그녀의 천상에서의 사후를 기원하고 축복한다. 이 모든 것은 오로지 라우라를 향한 시인의 순수하고 헌신적이며 필생의 사랑이기에 가능하다.
이제 여기가 내 사랑 노래의 끝이로다, / 늘 쓰던 재주의 영감이 말라 버렸고, / 나의 체트라는 통곡하네. (P.215, 292편)
슬픔도 언젠가는 끝이 있는 법, 늙고 지친 시인은 더 이상 펜을 들 수 없다. 시상의 영감이 말라버렸기에. 인생을 달관하고 체념한 시인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니 부끄럽고 창피하다. 한 여성을 향한 사랑에 빠져 신이 부여한 소중한 의무를 소홀히 하였음에. 그는 고해하고 회개한다, 신의 자비를 청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시를 덧붙인다.
여러분, 이제 그대들은 산만한 시들 속에서 / 내가 지금과는 다소 다른 사람이었던 시절 / 빗나가던 내 젊디젊은 그 시절에 / 내 가슴을 가득 채우던 그 탄성들을 들으리오. (P.32, 1편)
시인의 평생에 걸친 사랑의 대상이었던 라우라는 어떠한 여인이었을까. 그가 찬미를 아끼지 않을 만큼 모든 면에서 그렇게 대단한 여인이었는가. 천사와도 같이 완전한 존재인가. 아니면 사랑의 콩깍지에 씌인 것인가. 실제의 라우라와 시인의 라우라가 동일한 인물인가. <칸초니에레>의 라우라는 시인 자신이 빚은 상상 속의 이상형이 아닐까. 그가 부러워하였던 피그말리온의 갈라테이아처럼.
기대보다 훨씬 더 깊고 강렬하며 애절하다. 페트라르카를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 당분간 페트라르카를 천착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