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실린 세 편의 작품은 각자 특색이 분명하다. <레이디 수전>은 중편소설로 작가의 초기작이며 미발표작이다. <왓슨 가족>과 <샌디턴>은 미완성작이다. 특히 후자는 작가의 유고작이기도 하다. 두 편 모두 완성되었으면 독자의 라이브러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줄 수 있는 작품들이기에 한층 안타깝다.
<레이디 수전>은 서간체 소설이며 주인공이 악인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작가의 다른 작품과 차별되는 지점이며 작가가 향후 이러한 유형의 글을 더 이상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자신의 문학적 스타일과 어울리지 않았다는 판단이 든 모양이다.
레이디 수전은 젊지 않다. 결혼을 시키려고 하는 딸이 있으며, 얼마 전에 미망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봐서도 당시 사회 기준으로는 중년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녀는 타고난 외모와 교태, 말솜씨 등으로 주위 남성들을 유혹하여 좌지우지할 수 있는 요부에 가깝다. 물론 그런 그녀의 행실은 결코 주변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지만, 그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목적만 이룰 수 있다면 평판은 언제든지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랄까.
연로한 드 쿠르시 경이 돌아가실 때까지는 당장 결혼해도 크게 득 볼 게 없으니까. 사실 난 그 결혼이 전적으로 내 손에 달려 있다고 자신하고 있어. 그가 내 능력을 알게 만들었지. (P.30)
유부남인 맨워링 경의 집안을 뒤흔들어 놓고, 자기 딸과 결혼시킬 속셈으로 제임스 경을 유혹하여 맨워링 경의 딸로부터 떼어놓으며, 자신에게 적대적인 동서의 남동생 레지널드마저 유혹하여 결혼하려고 할 정도다. 이쯤 되면 굉장한 능력자라고 할 만하다. 결혼 추진을 받아들이지 않는 딸을 불편하게 만들기 위해 기숙학교에 강제로 입교시키는 면에서는 비정하기조차 하다. 확실히 동서인 버넌 부인의 말처럼 레이디 수전은 딸에게 무관심하고 오히려 걸리적거리는 존재처럼 행동한다.
아무리 작가라도 대놓고 주인공의 해피엔딩을 기술하기는 부담스러웠나 보다. 결국 그녀의 정체는 탄로 나고 레지널드와의 약혼은 취소된다. 그런데 그녀는 문득 제임스 경과 결혼을 발표한다. 그녀 입장에서는 딸과 결혼시키려고 했던 남성을 남편으로 맞아들인다는 것은 당대 도덕률에도 올바른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레이디 수전과 친구 존슨 부인은 죽이 잘 맞는 사이다. 만약 남편의 강력한 제재만 아니라면 친구도 레이디 수전과 신나게 어울렸을 게 분명하다. 제임스 경과 결혼하라고 강력히 권고한 게 존슨 부인이니까.
3주 후, 레이디 수전은 제임스 마틴 경과의 결혼 소식을 전했다.
그제서야 버넌 부인은 이전부터 의심하던 바를 비로소 확인하게 되었다. 딸을 치워버리려는 레이디 수전의 수고를 스스로 자처하여 떠맡은 것이었다. 분명 레이디 수전은 처음부터 이렇게 할 작정이었다. (P.106)
레이디 존슨의 선택은 성공일까 실패일까? 확실한 건 레지널드보다는 제임스 경이 재산은 물론 오히려 다루기 쉬운 존재다. 둘 다 나이는 본인보다 훨씬 어리고. 게다가 버넌 부인의 뒤늦은 깨달음을 통해 알 수 있듯 재혼에 있어 걸리적거리는 존재인 딸 프레더리카를 손쉽게 치워버리지 않았는가. 이 소설은 한마디로 레이디 수전의 종횡무진 활약 속에 놀아나는 주변인들의 뒤늦은 어벙벙함을 발견하는 즐거움으로 차 있는 기이한 유형의 작품이다.
<왓슨 가족>은 전형적인 제인 오스틴의 작품이다. 주인공 이름도 에마다. 아름답고 똑똑하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이라는 그녀 작품 주인공의 일반적 특징도 공유한다. 에마는 일찍부터 부유한 이모 집에서 자랐는데, 이모가 뒤늦게 재혼하면서 상속녀의 지위를 상실하고 본가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녀 오빠의 말처럼 군식구로 전락한 셈이다.
매사 아늑하고 우아했던 가정의 생명이자 천사이며, 모두가 순조롭게 독립하리라 기대하던 상속녀였다. 이런 존재에서 벗어나 이제 누구에게나 하찮고, 애정을 기대할 수 없는 부담스런 존재, 가정의 편안함이나 앞으로의 지원을 기대할 가망도 없이 열등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이미 너무 많은 대가족의 군식구가 되었다. (P.182-183)
그녀 처지에서 최상의 결과는 무엇일까? 좋은, 즉 부유한 남편을 만나서 자신도 당당히 독립하고 본가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편이 되는 것. 그래서 언니 엘리자베스를 포함한 자매들이 그렇게 괜찮은 남성을 찾아 헤매는 것 아니겠는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는 유독 이러한 설정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는 당대 영국 여성들의 사회상을 적확하게 반영하기 위함이다.
무도회에 참석하여 좋은 인상과 관심을 끈 에마에게도 주위에 세 명의 남성이 나타난다. 언니들은 쫓아다니지만 그녀 자신은 약간 경멸하는 톰 머스그레이브, 하워드 목사, 그리고 오만한 오스본 경. 아직 인물들 간 본격적인 사건과 행동은 벌어지지 않는다, 장편소설의 서두에 불과하므로.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오스본 경의 태도 변화다. 마을의 지주이자 귀족인 오스본 경은 평소를 여자를 우습게 보고 있었다. 하긴 주변에 어떻게든 자신의 환심을 사려고 안달인 여자들로 넘쳐났을 테니까. 그런데 유달리 자신에게 독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에마에게 색다른 인상을 받는다.
난생처음 여성을 즐겁게 해주고픈 마음이 들었다. 여성에게, 그러니까 에마 같은 상황의 여성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한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지금껏 그는 분별심이나 좋은 성격을 원한 적이 없기에,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P.159)
이 작품은 일단 에마의 자아성찰 내지 현실자각 장면에서 중단된다. 알려진 구성대로라면 꽤나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전개되었으리라.
<샌디턴>은 작가의 밝고 재기발랄함이 여타 작품에 비하여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주인공도 가난한 집안이 아니라 시골 지주의 딸이다. 물론 주변인들에 비해 똑똑하고 이성적이라는 점에서는 여전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샌디턴의 파커 씨 부부 집에 한동안 방문하게 된 그녀는 아웃사이더의 눈으로 마을 사람들의 여러 모습을 관찰하고 판단한다.
파커 씨에게 있어 샌디턴은 제2의 아내이자 제2의 자식이었다. 그만큼 사랑했고, 분명 그 이상으로 열중해 있었다. 그는 샌디턴에 대해 끝없이 얘기할 수 있었다. 그는 샌디턴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P.199)
샌디턴을 해변 휴양 마을로 개발하고자 하는 파커 씨 부부의 열의와 주장은 샬롯은 물론 독자에게도 낯설게 다가온다. 파커 씨의 자매와 동생들이 품는 상상병은 한층 이색적이다. 건강에 대해 염려하는 건 나쁜 일이 아니지만 언제나 안달하며 전전긍긍하는, 게다가 신체적 이상이 없는 상태에서 그네들의 행동은 우스꽝스러우며, 더구나 아서 파커의 꾀병은 해학적이다.
샬럿은 다이애나 양의 심상치 않은 건강 상태라는 것이 상당 부분 엄살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병과 치유는 모두 상식과는 너무 달라서 진짜 질환과 회복이라기보다는 열정적 정신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낸 상상의 질병에 가까운 것 같았다. (P.256)
파커 씨 가족과 더불어 한 축을 이루는 게 데넘 부인이다. 그녀는 결혼으로 재산과 신분을 일군 사람답게 샬럿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그것을 무기로 주변 사람은 물론 마을 사람들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듯한. 데넘 부인의 저택에서 발견한 첫 번째 남편 홀리스 씨의 초상화가 받는 대접은 샬럿의 감정을 독자에게 공감시킨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부분은 전적으로 샬롯의 관찰에 국한한다. 에드워드 경은 데넘 부인의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클라라에게 접근하는데, 결과가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마을은 파커 씨가 의도했던 대로 개발의 성공을 이룰 것인지, 데넘 부인의 상속자는 누가 될 것인지, 상상병자 식구들의 건강은 회복될 것인지, 샬럿은 샌디턴 마을에서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인지 등등.
분명한 건 이 작품이 완성되었다면 제인 오스틴의 기존 소설과는 성격이 다른 새로운 시기로의 전환점을 이루는 작품이 되었으리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미완성으로 그친 게 아쉽다.
10여 년 전에 제인 오스틴의 전체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었다. 이후 제인 오스틴 전집이 출판된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보니 국내 초역 작품이 있음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삭줍기 차원이랄지 작가에 대한 예우랄까 뒤늦게 이 책을 집어 들었는데, 역시나 제인 오스틴은 제인 오스틴이라는 점을 새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