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노라고 하면 세계사와 관련하여 대체로 두 가지가 떠오른다. 중국사에서 진시황의 만리장성 축성과, 한고조의 굴욕과 한무제의 대대적 공격이 하나요, 서양사에서 소위 서로마제국의 멸망으로 이어진 훈족의 침입. 물론 후자에서 훈족과 흉노를 동일시할 수 있는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어쨌든 중국사만 놓고 보면 흉노는 한나라 시기 이후로는 존재감이 없기에 자연스레 소멸한 것으로 이해하기 마련이다.
이 책은 중국 한족의 역사와 구별하여 흉노 자체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은 역사서다. 솔직히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거의 해본 적이 없다. 그만큼 중국 정통-이것도 편향적인 시각이겠지만-을 벗어난 주변사는 관심과 사료 자체가 빈약하다. 저자는 비단 이 책뿐만 아니라, 돌궐과 위구르를 다룬 삼부작 유목제국 역사서를 완성하였으니 일단 그 사실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저자는 중국 사서의 기록을 토대로 흉노의 기원과 본격적 대두 이전부터 흉노의 건국과 전성기, 한나라와의 대결과 패배에 이은 제국의 분열, 그리고 해체와 소멸에 이르기까지 유목제국으로서 흉노의 전모를 꼼꼼히 살핀다. 부제가 ‘기원전 209 ~ 216’으로 되어 있는데, 유목국가로서 정체성을 지닌 기간이 4백 년에 가깝다는 점을 알리기 위해서인 듯하다. 저자도 강조하고 있듯이 유목민족이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는 사례가 빈번하지만 대개 단명에 그치는데 흉노는 매우 장기간에 걸쳐 중화 세력과 대결을 벌였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흉노 유목제국사를 복원하는 작업은 몽골 초원을 중심으로 한 북아시아의 유목 세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사, 나아가 세계사에서 흉노의 위상과 의미를 곱씹어보는 과정이다. (P.34)
몇 가지 인상적인 대목 또는 새삼 주목하고 싶은 역사적 사실을 복기하고 싶다. 먼저 흉노의 원주지는 현재의 만리장성 이남이라는 점이다. 흉노는 몽골 초원이 아니라 고비사막 남쪽의 초원과 삼림이 혼합된 지역에 자리 잡았으며, 자신들과 같은 유목민뿐만 아니라 융과 같은 목축민들까지도 한데 아울렀다. 중원과 매우 인접한 지역이니만큼 전국시대뿐만 아니라 진, 한나라도 흉노에 굉장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던 지리적 요인이 있었다.
이에 따라 시황제의 만리장성 축조가 갖는 의미도 달리 봐야 한다. 우리는 보통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라고 배웠다. 저자는 이것이 침입 방지와 자국민의 이탈 방지, 그리고 유목민의 동선을 강제로 북으로 이동시키려는 조치라고 한다. 주거에 용이한 땅을 잃고 내몰린 흉노로서는 생존 차원에서라도 잃어버린 고토를 회복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으리라. 이후 흉노와 중화의 갈등과 대결은 바로 이 지역의 공고화와 회복의 다툼에 아니다.
흉노의 최대 전성기는 명백히 묵특 대선우 시기일 것이다. 그는 한고조와의 일전에서 압승을 거두어 치욕적인 화친을 맺도록 강요하였으며, 막남 지역뿐만 아니라 동서로 확장하여 중화와 대등한 거대한 유목제국을 형성하여 흉노의 번영을 구가하였다.
묵특은 이제 과거 융과 호의 일부를 통합한 수준이 아니라, 중국에서 온 반한 세력과 서쪽에 있던 월지 및 월지의 통제를 받던 오아시스와 유목민 모두를 통제하는 명실상부한 유목제국의 ‘대선우’가 되었다. (P.143)
중국 역사의 후대에 보면 유목민은 단순히 중원에 침입하여 약탈과 조공을 기대하는 차원을 떠나 중원에 터를 잡고 아예 점령하려고 시도한다. 반면 흉노는 고비사막 남쪽, 오늘날 오르도스 지역 외에 중원 본토에 대해서는 별다른 영토적 욕심을 보이지 않았다. 당대 중국으로서는 천만다행이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중국사, 나아가 세계사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으리라. 흉노로서는 자신들의 생활 습속을 굳이 바꾸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필요한 물자와 인력은 언제든 인근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까.
1백 년 가까이 수세에 몰렸던 한-흉노 관계가 역전된 계기는 한무제의 등장부터다. 흉노의 기동력을 따라잡기 위해 한무제는 기병을 대거 양성하여 흉노 본거지를 급습하였고, 흉노의 양팔을 자르기 위해 서역과 제휴 내지 지배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한국사에서 등장하는 고조선의 멸망을 이끌어낸다. 국사 시간은 고조선의 멸망이라는 사건 자체에 주목하는데, 저자는 한무제의 큰 그림을 고조선과 흉노의 동맹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전쟁의 목적을 밝힌다. 어찌 보면 우리 역사는 한과 흉노의 대결에서 유탄을 맞은 셈이다.
한은 흉노와 외부 세력이 연합해 한을 공격하는 일을 막기 위해 하서(이후에 하서사군 설치)와 조선(이후에 한사군 설치)을 공격해 차지했다. 이렇게 해서 한은 흉노를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며 포위할 수 있었다. (P.371)
특히 한나라와 관심을 기울인 곳은 서역이다. 흉노는 서역 제국에서 정기적으로 공물을 받았으며 사막 교통로를 지배하여 교역 수입을 독점할 수 있었다. 한나라는 장건의 모험 이후 서역의 중요성을 깨닫고 하서회랑을 거쳐 오늘날 신강위구르자치구로 이어지는 서역 경영에 역점을 두게 되었음은 흉노와 대결을 통한 의외의 소득일 것이다.
순전한 외침만으로 패망에 이르는 나라와 민족은 드물다. 대개는 내우외환이 겹치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한나라의 압박으로 흉노 국가가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다섯 선우 쟁립이니 남북 흉노 분열과 같은 내부 요인으로 흉노는 자체 역량을 오롯이 결집하는 데 실패하였다. 이것이 최종적으로 북흉노의 소멸과, 남흉노의 중국 내 편입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과제다.
한과 흉노가 함께 이루던 ‘이원적 질서’는 흉노의 분열로 인해 한이 주도하는 ‘일원적 질서’로 바뀌었다. 이제 흉노는 스스로 아무리 ‘자존’을 지키려 해도 한에 종속된 여러 변수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처지가 되었다. 이런 양상은 남북 대결 국도가 심화되면서 더 확고해졌다. 흉노는 이제 ‘각자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P.331)
중국사를 훑어보면 일시적으로 중국과 맞먹거나 우위를 보이는 세력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십중팔구는 정복당하거나 패망하는 수순에 이르는데, 단기전으로는 가능하지만 장기전으로 접어들면 중국의 막대한 자원과 인력의 힘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비슷한 피해를 입더라도 회복력의 수준이 다른 것이다. 전장이 중원이 아닌 경우에는 한층 더하다. 우리는 대표적 사례를 고구려를 통해 볼 수 있다. 수나라와 당나라에 팽팽하게 맞섰던 고구려는 지속된 전쟁으로 약화된 데다가 지배층의 분열로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저자는 조조에 의한 남흉노의 해체 이후 병주 흉노와 남북조 시대의 흉노를 짤막하게 다룬다. 그가 남흉노까지만 집중적으로 탐구한 까닭은 이후 흉노는 ‘유목제국’으로서의 의의보다는 군소 세력으로의 잔존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만약 국가로서의 흉노 외에 흉노 백성의 자취에도 관심을 지녔더라면 더 많은 이야기가 등장했을 것이다. 남북조 시대의 유연도 분명 흉노의 후예임을 여러 사서에서 인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의 서술 방식은 약간 딱딱하고 건조한 편이다. 본격 학술서와 대중서의 중간에 가깝지만 일반 대중이 흥미롭게 읽어나가기에는 쉽지 않다. 하지만 중국 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다면 간과하였던 역사의 조각을 맞춰나가는 재미는 쏠쏠하다. 책의 부록으로 실은 ‘대선우의 계승과 분열’ 연표와 ‘대선우의 계보도’를 함께 참고하면 어지러운 흉노 지배층의 분열과 다툼도 한결 체계가 잡힌다.
이 책이 흉노에 관한 모든 궁금증을 풀어줄 수 있는지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세계사적으로 흥미로운 주제인 흉노와 훈의 관계에 대해 저자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학술적 논란이 있다고 언급할 따름이다. 저자는 애초 이 책을 중국사의 범위 내로 제한한다. 기존 중화 세력 위주 역사서술의 편향을 벗어나 중화 세력과 유목 세력이 이원적 구도로 역사를 펼쳐나갔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야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할 수 있다고 한다.
이후 북중국을 무대로 전개된 분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호와 한의 ‘대결’과 ‘융합’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의 ‘이분법적 설명’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장성 안쪽으로 한정된 중국의 범위와는 다른, 초원과 북중국이 하나로 연결된 새로운 판도에서 비한(非漢) 세력들이 서로 얽혀 ‘다원적’ 성격을 보여주었다는 부분에 초점을 두고 역사의 전개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P.396)
흉노와 우리 역사와 관련하여 일각에서 신라 왕족의 흉노 기원설을 제기하고 있다. 문무대왕비를 비롯한 일부 자료에 근거를 두고 있다. 주류 사학계는 부정적이지만, 혹시라도 그렇다면 흉노의 역사는 더 이상 우리와는 무관한 남의 것이 아닐 수 있다. 진위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이를 계기로 농경 문화권 중심의 편향된 역사관을 탈피할 필요성은 충분하다. 과거 유목과 방랑은 부정적으로 치부되었지만 오늘날은 디지털 노마드라 하여 안주하지 않는 자유로움이 더욱 각광받는 세상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