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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필요한 시간
  • 핀란드의 끝없는 도전
  • 파시 살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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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07
  • : 948


핀란드 교사 부부 사이에서 태어나 실제로 교육계에 종사하고, 교육행정을 공부하며 각국의 교육정책을 분석한, 20년 교육 전문가가 쓴 핀란드 교육이야기다. 1970년대만 해도 다른 나라와 비슷한 교육제도를 갖고 있던 핀란드가 30년에 걸친 끊임없는 교육개혁으로 다른 OECD국가를 제치고 선두에 선 비결을 분석했다. 저자에 따르면 핀란드 내부에서도 9년제 종합학교 시스템으로의 개혁 과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한다. 그러나 2001년 PISA(국제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 자국 학생들이 읽기, 수학, 과학 영역에서 다른 OECD국가 학생들을 앞섰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자 반대는 누그러지고, 핀란드의 교육 모델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다른 선진국은 경쟁 시장 체제를 따라 교육의 효율성을 계산한 반면, 핀란드는 학생들에게 즐겁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고, 학습 부담을 줄이고, 경쟁을 장려하지 않으며, 전국 단위의 표준화된 시험을 최소화하고, 학생 평가에 대한 책임을 지방자치단체와 개별 학교에 위임하는 방향으로의 개혁을 추구했다. 

단순한 생각으로 큰 차이를 만드는, 북유럽 사람들이 좋아하는 미니멀리즘은 교육 개혁에도 적용이 되었다. 저자는 핀란드 종합학교 개혁의 세 가지 원칙을 소개했는데, 얼핏 보면 당연한 말 같지만 뜯어보면 단순하면서도 의미있는 개혁임을 알 수 있었다. 


첫째, 생활환경과 열정이 전혀 다른 학생들을 같은 교실에서 함께 가르치려면, 완전히 새로운 교수법과 학습법이 필요했다. 기회 균등의 원칙에 따라 모든 학생은 즐겁게 배우고, 출세할 기회 또한 공평하게 제공받았다.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의 경우, 교사가 학습장애 혹은 개인적인 장애 여부를 초기에 알아보고 즉시 치료를 지원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특수교육은 학교 교육과정에 빠뜨릴 수 없는 부분이 되었고, 모든 지방자치단체와 학교는 특수교육이 필요한 학생을 위해 전문가를 채용했다. 


둘째, 진로 지도와 상담이 필수교육과정이 되었다. (...) 원칙적으로 학생들은 일반계 후기중등학교(한국의 고등학교)에 진학하거나 직업학교에 진학하거나 취업하는 등 세 가지 진로 중 한 가지를 택할 수 있었다. 진로 지도와 상담은 전기중등교육과 후기중등교육의 토대가 되었으며, 핀란드에서 재수와 중퇴율이 낮은 이유를 설명하는 중요 요인이기도 하다. 진로지도는 정규교육과 직업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도 한다. 종합학교 학생들은 진로지도 과정의 일부로 각자 직장을 선택해 2주간 실습을 받는다.


셋째, 성격이 전혀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던 교사들, 다시 말해 학구적인 중등학교와 실습 중심의 공민학교에서 일하던 교사들이 같은 학교에서 다양한 학생들과 함께 일하게 만들었다. (...) 종합학교 개혁은 단순한 구조 개혁이 아니라 핀란드 학교의 새로운 교육 철학이었다. 적절한 기회와 지원만 뒷받침되면 모든 학생이 배울 수 있고, 인간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배우는 것을 중요한 교육목표로 삼아야 하며, 학교는 수십년 전에 존 듀이가 주장한 대로 '작은 민주국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65-66쪽)



핀란드 학생들은 9년간의 기초교육과 3년의 후기중등교육을 마치고 대입시험을 치르기 전까지 표준화된 전국 단위의 평가를 받지 않는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고부담시험은 학생들의 학업 동기를 약화시키고, 교사들은 시험과목에 우선순위를 두거나 정보를 반복 학습하고 암기하는 방식으로 교수법을 바꿀 수 밖에 없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교육당국이 성과(학생들의 성적, 학교 평가)를 바탕으로 교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건 핀란드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발상이며,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과정은 양적 지표로 나타낼 수 없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라는 걸 이해한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놀라운 학습능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핀란드는 '특수교육'을 문제를 해결했다. 특수교육의 목표를 "각자 능력에 따라 또래들과 함께 학교를 마칠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을 돕고 지원하는데 있다"고 두고, 저학년때부터 학생 능력에 맞춘 시간제 특수교육을 제공한다. 일반 학급에서 다른 학생들과 섞여 공부하지만 각자가 취약한 부분은 소그룹으로 특수교사의 개별지도(말하기, 읽기, 쓰기부터 수학, 외국어에 이르기까지)를 받는다. 물론 전문가의 진단에 따라 특수 학급에 편성되어 종일제 특수교육을 받는 경우도 있다. 2008-2009년에는 종합학교의 약 3분의 1이 특수교육을 받았다. 해마다 시간제 특수교육을 받는 학생과 과목은 달라지나 보통 16세에 의무교육을 마친 학생 중 절반 정도가 재학중 특정 시기에 특수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특수교육은 전혀 특수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특수교육을 받는 학생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을 줄여주고 학생의 자신감과도 연결된다. 사소한 학습장애를 초기에 교정하고 모든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핀란드가 다른 국가에 비해 유급, 중퇴율이 현저히 낮을 수 밖에 없는 이유였다. 

또 재미있는 점은 사립학교가 없고 학교간 성적 격차가 작다는 것이었다. 핀란드에서는 학교간 성적 격차가 7% 정도인데 비해 다른 OECD 국가들은 약 42% 정도라고 한다(그럴수밖에!). 핀란드 학교 내에서의 성적 격차는 개인의 재능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겠지만, 학교 간의 격차는 일반적으로 사회 불평등과 관련있다고 해석한다. 핀란드에서 학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학교는 수도에 있는 학교도, 좋은 대학에 많이 보내는 학교도, 교육과정이 훌륭한 학교도 아닌, '집에서 가장 가까운 학교'라는 말이 납득이 되는 순간이었다. 

저자는 핀란드 정부가 학생 평가에는 예산을 아끼지만, 유능한 교사를 양성하고 재교육하는데는 아낌없이 투자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핀란드에서 교사가 되려면 교육학 석사과정을 마쳐야 한다. 석사 과정을 마치고 교사가 된 이후에도 박사과정에 등록해 공부하는 교사가 적지 않고, 게다가 핀란드의 박사 과정은 모두 무료이다. 교육학을 전공한 후 교사가 되지 않더라도 교육행정과 민간 부문 취업에도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재능있는 인재들이 교직 과정을 선택한다. 핀란드의 젊은이들이 교직을 평생 직업으로 선택하는 이유는 의사, 변호사, 건축가 못지 않게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며, 존경받는 직업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학생들의 시험 성적을 토대로 교사 능력을 평가하는 책무성 제도나 중앙 정부에서 교사의 업무를 통제할수록, 똑똑한 젊은이들은 창의성과 진취성을 발휘할 수 있는 '다른 직업'을 찾아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읽을수록 놀라웠고, 자연스럽게 한국의 제도와 비교하게 되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제도가 있다. 보충수업, 진로상담도 있고, 핀란드의 모듈제까지는 아니겠지만 자유학기제도 있는 것으로 안다. 대학 진학을 희망하면 인문계로, 취업을 위해 특성화고에 진학히도 한다. 한국의 교사들도 엄청난 경쟁을 뚫고 교사가 된 유능한 인재들이고, 석사학위를 가진 교사도 많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도 씁쓸한 이유는 무엇일까. 제도는 비슷하게 도입했지만 내재된 철학의 간극이 크기 때문인 것 같다. 교육개혁을 위해서는 보건, 고용정책 등 다른 공공정책도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높은 학업성취도보다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 선택과 경쟁 대신 형평성과 책임 공유에 집중할 때에야 모든 아이들이 잘 배울 수 있는 교육제도를 만들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이 가슴에 박힌다. 



자주 간과되는 핀란드 교육제도의 성과 중 하나는 핀란드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읽기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교육적 요인과 사회문화적 요인이 있다. 핀란드 학교의 읽기 수업은 표준화된 커리큘럼 대신 개인의 발달 속도를 바탕으로 한다. 핀란드 부모들은 많이 읽는다. 조밀한 도서관 네트워크를 통해 책과 신문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막이 나오는 TV 프로그램과 영화를 본다. 우수한 독해력과 빠른 텍스트 이해력은 각 평가 영역의 과제들을 잘 이해할 수 있는지 점검하는 PISA 평가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한다. (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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