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원제는 <A Treacherous Paradise>로 사전적 의미는 '신뢰할 수 없는, 위험한, 배반/반역하는 낙원'이다. 여기서 '낙원'은 좁게는 주인공 '한나'의 활동 무대가 되는 파라다이스 호텔(로 가장한 매음굴)을, 넓게는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천연자원이 풍부한 포르투갈령 동아프리카(현재의 모잠비크)를 의미한다. 한 공간(호텔)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치며 지내지만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백인과 흑인들, 아프리카 점령지에서 본국보다 부유하게 살지만 언제 폭동이 일어날지 몰라, 하인들에게 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더욱 폭력적으로 군림하는 점령자의 불안한 상태를 나타내는 중의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가난에 등 떠밀려 독립한 18세 스웨덴 여성 한나는 도시에서 하녀로 일하다 호주행 증기선에 선상 요리사로 취직한다. 3등 항해사와 결혼한지 두 달 만에 풍토병으로 남편을 잃고, 슬픔에 빠져 포르투갈령 동아프리카의 로우렌소 마르케스에 배가 정박한 틈을 타 몰래 떠난다. 호텔인줄 알고 투숙한 곳은 알고보니 도시 최대의 매음굴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아이까지 유산하기에 이른다. 몸이 회복된 후 매음굴의 포주 '바즈'의 청혼을 받고 파라다이스 호텔의 안주인이 되어 식민지 백인여성의 지위(흑인들에게 모든 일을 시키고 본인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이들의 의무이자 권리)를 누린다. 발기부전 특효약이라는 가루를 매음굴의 여성에게 받아 남편의 음식에 섞은 다음 날, 포주는 주검으로 발견되고, 얼떨결에 한나는 거액을 납세하는 매음굴을 운영하는 여성사업가이자 거부의 지위를 상속받는다.
모든 것을 처분하고 아프리카를 떠나려는 그녀를 붙잡은 것은 남편의 백인 절친, '피멘타'가 살해된 사건이었다. 유색인을 쫓아 공격하도록 훈련시킨 사냥개를 백인에게 판매하는 일로 떼돈을 번 피멘타는 '이사벨'이라는 흑인여성과 살림을 차려 아이까지 둘 낳았다. 어느날 포르투갈의 본처가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오는 소동이 벌어지고, 이사벨은 한나가 보는 앞에서 피멘타를 칼로 찌른다. 재판도, 변호인도 없이 평생 감옥에 투옥될(본국에서 사형제가 폐지되지 않았다면 즉결 처형되었을지도) 운명에 처한 이사벨을 돕는 일에 한나는 책임감을 느낀다.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한나의 시선에 따라 사건이 묘사되는 방식은 섬세했고,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생생했다. 한나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은 인종에 대한 편견, 인종차별의 형태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구분된다.
"흑인들은 우리들의 그림자에 불과해요. 그들에겐 색깔이 없어요. 우리가 어둠속에서 그들을 보지 않아도 되게 신은 그들을 검게 만드셨어요. 그리고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결코 잊어서는 안돼요." (135쪽)
첫째, 이 사회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인종차별적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점령지의 백인들(남녀 할 것 없이)뿐 아니라 매음굴의 흑인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백인들에게 차별을 당하는 흑인들은 도리어 다른 유색인을 차별하기에 이른다. 한나가 이사벨의 석방 자문을 위해 멀리서 모셔온 인도계 변호사 판드레가 매음굴을 방문하자, 백인에게 가장 인기가 없는 여성조차도 '피부색이 갈색'이라는 이유로 그를 손님으로 받기를 거부한다.
두번째 부류는 인종차별을 하지만 자기 이익에 따라 동등하게 대하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매음굴 포주인 바즈는 흑인을 믿지 않고 백인들이 아프리카를 문명화시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나 자기가 운영하는 사업체의 흑인여성들에게는 나은 처우를 보장한다. 다른 포주들은 1:9의 비율로 이익을 나눈다면, 그는 5:5로 공평한 편이었고, 폭력적이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손님들은 제재하기도 했다. 한편 바즈의 절친이자 이사벨의 남편이던 백인 피멘타는 유색인종 혐오를 교묘히 이용해 부자가 된 사람이었지만, 흑인 정부과 혼혈 자녀들을 거둬들임으로써 백인 사회에서 배척당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인종적 편견이 없거나 최소한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다. 대표적 인물이 한나다. 자신도 모르게 다른 백인들처럼 흑인을 하대한 이후에는 괴로워하며 후회하고, 이후로는 백인들에게 물들지 않도록 스스로 행동을 조심한다. 매음굴의 여성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자립해서 시장에 채소가게라도 낼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남편을 살해한 이사벨을 딱하게 여겨 매일 먹을 물과 음식을 날라다 주기도 한다. 이사벨의 오빠인 모세스도 이 부류에 속한다. 당당하게 백인을 똑바로 바라보고 대화하고, 백인 옆쪽 벤치에 평등하게 앉기도 한다. 인종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한나를 대하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기에, 그를 통해 한나는 위로를 얻는다.
"흑인들은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백인들은 현재의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다른 사람들, 아랍인들과 인도인들은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 진실이 파고들 여지가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 (208쪽)
위의 세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 등장인물(?)은 주인공 한나와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침팬지 카를로스이다. 매음굴에서 조끼를 입고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고, 포주가 죽은 후에는 한나와 한 침대에서 자려고 든다거나, 인간의 말을 못 알아듣는듯 하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듯한 태도를 보인다. 동물이지만 인간과 함께 생활하면서 동물인지 인간인지 헷갈릴 정도로 '문명화된' 유인원의 모습으로, 전 주인 바즈와 현 주인 한나가 아프리카에서 거의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쩌면 인종 편견이 없는 세 번째 부류의 모습이 투영된 건 아닐까. 동물도 인간도 아닌 중간 존재, 흑인도 백인도 아닌 모호한 존재. 결국 침팬지 카를로스는 유색 인종이 눈에 띄면 공격하도록 훈련된 목양견에게 물려 죽는 비극을 맞는다.
소설의 장점은 20세기초 포르투갈령 아프리카에서 흑/백인간 몰이해와 두려움으로 인해 간극이 더욱 벌어지는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했다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촌충(기생충)을 먹는 여자, 자신이 죽인 자와 그의 죽음으로 생명을 얻을 기회를 놓친 아직 잉태되지 않은 아이들까지 애도하며 감옥에서 침묵을 지키는 여자, 한나가 무언가를 질문하면 '백인들만 하는 질문'이라며 놀라는 여자, 남편과 아이들이 있음에도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팔면서 자신은 백인들하고만 자기 때문에 남편에게 떳떳하다는 여자들의 모습 등은 이들간 문화적 괴리가 얼마나 컸는지 드러낸다. 한편으로는 모잠비크와 스웨덴 문화 양쪽 모두를 잘 아는 헨닝 망켈이기에 그려낼 수 있는 장면이라고도 생각된다. 그는 아프리카를 제2의 고향이며, '한쪽 발은 모래에, 다른 쪽 발은 눈에' 묻고 산다고 자칭할 정도로 사랑했고, 결국 애정어린 눈빛으로 이 땅을 묘사한다. 이사벨의 고향인 흑인마을을 방문한 한나가 마침내 깨달은 것은 아프리카의 풍성함과 백인의 정서적 빈곤함이었다.
"이 불가해한 가난의 한가운데서 나는 풍요의 섬들을 볼 수 있다. 존재할 수 없었을 행복, 살아남을 수 없었을 온기. 이것을 통해 온갖 부와 안락에 파묻혀 사는 백인들의 또 다른 종류의 가난을 나는 볼 수가 있다." (454쪽)
이 모든 이야기는 모잠비크에서 발견된 식민시대 문서에 적힌, 가장 큰 매음굴을 운영하고 주요 납세자였던 한 스웨덴 여성에 대한 기록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작은 사실에 우리가 모르는 나머지를 더하여" 쓴 소설로 당시 시대상황을 간접 경험하게 해준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