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문학이 필요한 시간
  • 댓글부대
  • 장강명
  • 15,120원 (10%840)
  • 2015-11-30
  • : 7,056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소설이다. 작가가 기자 경력이 있다고 하니, 더욱 취재에 기반한, 있을 법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책 소개를 얼핏 접했을 때는 SNS나 댓글을 이용한 마케팅에 대한 내용인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소설이 다루는 범위가 훨씬 넓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회 계층, 청년 문제, 정치까지. 


나도 PC 통신 시절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꾸준히 해 왔고, 지금도 활발하게 SNS를 사용하는 젊은 세대다. 게임에 미쳤던 때도 있었고, 세이클럽, 프리챌, 싸이월드를 거쳐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활용하며 트렌드를 꾸준히 팔로업 해왔다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마치 구닥다리 세대가 되어버린 듯 했다. (그런 면에서 나보다 나이도 훨씬 많은 작가님이 이걸 써내신게 대단한듯) 소설 속 댓글부대인 팀-알렙은 나보다 조금 어린 20대(소설에서는 1985년부터 1995년 사이에 태어난 청년층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의 이야기였는데, 슬프게도 여기 나오는 몇몇 용어들은 검색 없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와 같은 독자의 마음을 미리 안 걸까, 참고한 기사 제목과 사이트명(리그베다위키)을 책 말미에 첨부한 저자의 배려로, 모르는 용어는 따로 찾아볼 수 있었다. 



소설은 온라인 댓글조작 사건을 통해 사회 권력 지배 구조를 보여 준다. 작가의 전작 단편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소설 속의 주인공 팀-알렙의 멤버 세 사람의 기존 캐릭터가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설 속에서 이들은 폐쇄적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잠입, 조작을 통해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조종하려 든다. 물론 이들 위에는 자금을 대고 지령을 내리는 미스터리한 조직이 있다. 합포회라는 이름의 단체. 국가기관, 경제단체, 수수께끼의 민간인들이 섞여 있다는 것만 아는 상태로 그들의 입맛에 맞춰 일한다. 3인의 정예 댓글부대 팀-알렙은 온라인 커뮤니티 나름의 질서를 교묘히 교란시킴으로써 견고하게만 보이던 온라인 커뮤니티가 해체되고, 구성원들이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세상을 바꿨다 믿었지만, 그들 역시 더 강한 권력과 자본에 의해 지배당했고, 필요가 다하면 버려지는 체스판의 말에 불과했다. 팀-알렙의 리더인 삼궁은 소설 중반에 합포회가 모시는(?) 남산 노인을 만나게 되고, 댓글조작 프로젝트의 '깊은 뜻'을 짐작하게 된다. 


촛불 들고 나섰던 애들도 아마 바뀌지 않을 거야. 1985년부터 1995년 사이에 태어난 애들. 특히 여자애들. 난 그 애들은 아주 버렸다고 생각해. 걔들은 평생 정부 탓이나 하면서 살아갈 거야. (…) 어쩌겠어. 투표를 못하게 하겠어, 인터넷을 못하게 하겠어? 그냥 그렇게 가는 거지. 한동안은 그 애들이 인터넷을 쥐고 흔들겠지. 그리고 인터넷이 현실을 흔들겠지. 암흑시대가 오는 거야.

우린 그다음 세대를 공략해야 해. 아직까지는 머리가 그렇게 굳지 않은 애들. 그 아이들의 정신이나마 건강하게 만들어야 해. 펩시콜라가 말이야, 코카콜라랑 싸우다 싸우다 안 되서 그냥 이십 대 이상은 안 된다, 하고 백기를 들었어. 아무리 콜라 맛을 좋게 하고 비싼 모델을 고용해서 브랜드 이미지를 기깔나게 만들어봐도 스물이 넘은 사람은 설득할 수가 없었던 거야. 그래서 어른들은 포기하고 어린애들을 상대로 마케팅을 했지. 먼 미래를 내다보고. 우리도 그렇게 해야 돼… (152쪽)

 


온라인커뮤니티들 -> 댓글부대 -> 합포회 -> 남산노인 -> (그 위의 누군가?) 로 이어지는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있는 이는 '정부탓'만 하고 자포자기하는 사회 분위기를 염려한다. 다시 말해, 그가 걱정한 것은 대중이 만들어내는 사회의 분위기, 여론이었다. 남산 노인은 말한다. 경제가 사회를 활력있게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잘살자고 희망을 갖는) 사회 분위기가 출산율을 높이고 경제를 살아나게 한다고. 인터뷰를 통해 팀-알렙의 댓글조작 이야기를 취재하는 K일보 기자(언론)는 이들의 활동을 세상에 폭로함으로써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결국은 이 '남산 노인'을 압박, 견제하고자 했지만, 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권층의 견고한 전선 앞의 개인은 무력할 뿐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또 다른 축은 팀-알렙의 멤버 세 사람 각자의 스토리로,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하위계급 간의 먹이사슬 관계를 극단적으로 보여 준다. 팀-알렙의 세 사람은 가방끈(학력)이 짧고, 정규직으로 노동시장 진입에 실패한, 단칸방에 살며 연애와 결혼을 현실적으로 꿈꾸기 어려운(심지어 모태솔로), 한국 사회에서 속된 말로 '루저'라 불리우는 청년층을 대표한다. 세 사람은 댓글알바로 쉽게 번 돈을 윤락녀들에게 탕진하며, 돈으로 섹스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사실을 통해 권력을 누린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래선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감정적으로, 인간적으로 여성들을 의지하고 싶어하는 그 나이대의 청년일 뿐이다. 그러나 돈으로 연결된 관계는 쉽게 휘발될 뿐이라는 교훈만 남긴다.


더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이미 했는지도?) 이쯤에서 멈추고,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를 꼽아볼까 한다. 소설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댓글 문화, 그 이면에 숨겨진 의도와 결합된 권력구조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한국은 인터넷 보급률, 사용률이 세계적으로 높고 변화의 속도 또한 빠르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이런 사건과 현상들은 어쩌면 세계 최초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는 소설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소설에 묘사된 것이 100퍼센트 허구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온라인이기에 더욱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것 뿐이지, 친목 커뮤니티의 폐쇄성, 배척성, 마녀사냥, 왕따 등은 사실 온라인 만의 문제라 보기도 어렵다. 실생활에서도, 한국인들이 모인 오프라인 커뮤니티에도(심지어 해외에서도) 벌어지는 일들이 아닌가. 소설은 이를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터넷은 과연 항상 좋을까, 온라인을 신뢰해도 되는 것일까, 정보통신 발달이 불평등을 완화한다고 볼 수 있을까. 

소설 속 합포회 리더가 했던 말이 생각나 인용한다.


처음에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내 또래들은 정말 엄청난 도구가 왔다, 이걸로 이제 혁명이 일어날 거다, 하고 생각했지. 모든 사람이 직위고하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으로 대안을 찾아낼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생각했지. 인터넷이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권위를 타파해서 민주화를 이끌 거라고도 믿었어. 거대 언론이 외면하는 문제를 작은 인터넷신문들이 취재하고, 인터넷신문조차 미처 못 보고 넘어간 어두운 틈새를 전문 지식과 양식을 갖춘 블로거들이 파고들어갈 줄 알았어. (…) 그냥 거대 언론이 하던 나쁜 짓을 아마추어들도 소자본으로 하게 됐을 뿐이야. 거대 언론이 점잖게 기업에 겁을 주며 광고를 따냈다면 인터넷신문들은 대놓고 삥을 뜯지. 블로거들은 동네 식당을 상대로 협찬을 요구하고. 이것도 민주화라면 민주화지. 협박, 공갈, 갈취의 민주화. 누구나 더럽고 야비한 짓을 할 수 있게 되는 민주화. (55쪽)



과연 우리는, 

한국 사회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