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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hie du


<바바라>, <피닉스>, <트랜짓>에 이어 펫졸드의 영화 중 네 번째로 본 영화. 아름답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영화. ‘운디네’라는 이름은 신화에서 차용한 것. 운디네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인간이 되고, 상대방이 배신하면 그를 죽이고 물로 돌아가는 운명을 가진 물의 정령이라 한다. ‘독일 낭만주의 작가 프리드리히 드 라 모테 푸케, <운디네>, 2013, 지만지’를 읽어봐야겠다.

분열된 동서독의 비극 문제를 주로 다뤄온 펫졸드인데, 이번 작품 <운디네>에서는 그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고 환상적, 신화적으로 다룬다. 펫졸드의 작품에서 시간은 종종 중첩된다. 역사와 현실, 과거, 현재, 미래가 뒤섞여 혼재한다. 지아장커의 <스틸 라이프>가 떠오른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구동독 지역의 베를린, 재개발로 역사의 흔적은 계속 사라진다. 사람들도 사라진다. 단기임대로 3개월만 잠시 임대할 뿐인 입주민들은 그 전에 누가 살았는지 알지 못하고, 누군가 사라져도 실종신고를 하는 사람도 없다. 운디네 역시 임시 계약직이었을 뿐이라 주거지를 제외하곤 아무런 정보도 알지 못한다. 운디네가 정말 실존했던 사람이었는지도 의심스럽다.

호수에 묻혀있는 어떤 구조물에 새겨져 있는 ‘운디네’라는 글씨, 물속을 헤엄치는 운디네의 분신과도 같게 느껴지는 상상의 동물 같은 거대한 메기, 독일의 역사가 물속에 가라앉아있는 것과 같은 신화적, 역사적 공간에서 운디네의 사랑이 연인을 살린 것 같다는 환상을 준다. 떠나는 연인을 지켜보는 신체 없는 물속 운디네의 시점숏이 독일의 현대를 바라본다. 무섭도록 아름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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