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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hie du

며칠 전 친구와 대화 중 “‘달리기 같은’ 거야”란 말이 튀어나왔다. ‘달리기 같은’ 요즘 말버릇 중 하나다. 아무 거에나 갖다 붙인다. 달리기 같은 삶, 달리기 같은 맛, 달리기 같은 밤, 달리기 같은 책, 달리기 같은 허기, 달리기 같은 욕망, 달리기 같은 연애, 달리기 같은 우정, 뭐 이런 식으로.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 튀어나온 ‘달리기 같은’ 다음 말은 글쓰기였다. 달리기 같은 거지. 그래, 이 비유가 마음에 와 닿았다. 달리기 하는 것 같은 글쓰기.
나 자신을 위한 글쓰기. 달리기를 하는 이유는 다른 무엇도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를 위해서다. 그런 글쓰기. 스스로를 위한 거지만, 달리기는 타인을 시기 질투하지 않는다. 나보다 잘 달리는 사람을 보고 질투하거나, 나보다 못 달리는 사람을 보고 경시하지 않는다. 나보다 잘 달리는 사람을 보면 배우고 싶고, 나보다 못 달리는 사람을 보면 부상당하지 않고 잘 달릴 수 있도록 돕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달리기의 매혹에 동참시키고 싶지, 내 영역 침범하지 마라며 배타적인 마음을 갖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렇게 글쓰기 하고, 타인의 글쓰기와 만나고, 함께 가는 것. - 뭐 긍정적으로 본 거다. 달리기 잘 하는 사람들 중에 지 잘났다고 뻐기는 인간들도 꽤 되긴 하는 것 같다. 자랑할 만 하니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많은 고통의 시간을 겪고 그 만큼 노력한 과정 없이 절대 그렇게 달릴 수 없다는 걸 잘 아니 인정해주면 된다. - 어쨌든,
좋은 달리기는 어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달리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있는 달리기다. 바로 지금. 달리는 순간의 지금. 글쓰기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 하거나, 가령 멋진 글을 써서 유명한 작가가 된다거나, 인정과 사랑을 받는다거나, 그런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지금 이 순간, 글을 쓰는 내 존재를 온전히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 그런 글이 좋은 글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달리기의 매혹을 알기 위해서는 몇 차례 고통을 넘어서야 한다. 숨이 차고 몸은 움직이지 않고 도저히 더 이상 뛰지 못할 것 같은, 안 돼, 여기까지야 하는 순간을 몇 번은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 폐활량도 트이고 숨차지 않고 꾸준히 달리며 해방감을 만끽할 수 있는 순간도 온다. 글쓰기에도 그런 순간이 있다. 특히 마감이 있는 글쓰기. 목적이 뚜렷한 글쓰기를 할 때 그런 순간이 있다. 안 돼, 도저히 쓰여지지 않아, 하다가 어느 순간 그분이 내려와 글이 풀렸을 때의 만족감. 그런 게 있다. 하지만 그런 것 말고, 특정한 목적지를 향해 가지 않고, 나 스스로를 위한 글쓰기를 하면서 그런 순간을 겪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어딘가 제출하고, 마감이 있는 글쓰기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그저 글 쓰는 순간을 위한 글이면서, 고통을 견디고 또 견디다가 어느 순간 확 트이는, 그런 과정 속에서 행복해지는 글쓰기. 그런 글쓰기는 없을까.
오늘, 아니 어제구나, 오랜만에 옛 친구들과 줌으로 신년모임을 가졌다. 그 친구들과는 걷기 같은 관계다. 신뢰할 수 있는 친구들이다. 건강하게 단단하게 걷고 있는. 그래서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어쩌다 만나면 항상 의지가 되는. 그 중 한 친구가 요즘은 코로나 지나면 만나자는 얘기는 만나지 말자는 얘기와 같은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다음에 밥 한 번 먹자나 술 한 잔 하자 말고 다른 인사말이 필요하다. 코로나여도 다음에 만나서 걷자. 이게 괜찮겠다. 달리자는 부담스러우니. 어제는 등산이라도 하자고 했다. 함께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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