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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 최장집
  • 13,500원 (10%750)
  • 2005-09-09
  • : 1,695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  

 

다소 과감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최장집 교수의 정치이념에 따른 우리나라 현 정치상황에 대한 꼼꼼한 분석서이다.
이 책의 체계를 대략 정리해 보면 ‘(1)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문제제기, (2) 한국 정치사의 비판적 고찰, (3) 민주화 이후 정권에서의 문제점, (4) 결론, (5) 개정판 후기’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저자는 이 책을 쓰게 된 원인이 된 한국민주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투표율의 하락으로 인한 참여의 위기”와 “보수독점의 정치적 대표체제”를 거론하고 있다. “1987년 민주화 직후 이루어진 13대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은 89.2%와 75.8%였다. 하지만 2000년 16대 총선과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57.2%와 48%로 급격한 투표율 하락”을 보여주고 있다. 그 결과 “절차적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투표율 하락의 원인은 “민주화 이후 정부의 무능, 무책임, 부패로 인한 국민의 정치혐오내지 반감이 커진 때문”으로 집권정부의 무능과 부패에 대한 심판은 반대당인 야당에 대한 지지로 이루어져야 하지만 우리나라의 보수적 정치구조는 이런 대안의 선택을 현실적으로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인 현 보수독점의 정치체제는 “매우 협애한 이념적 대표체제, 사실상 보수와 극우만을 대표하는 정치적 대표체제”로서 미군정기 좌익세력이 배제된 채 이루어진 이승만 정권의 성립이라는 “한국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결국 보수우익 양당 체제로 이루어진 지금까지의 정치권력은 보수 기득권층에 복무해 왔으며 노동자 등 각 계층의 입장을 대변해 주지 못했다. 이는 국민의 정치에 대한 냉소와 부정적 인식을 키워왔으며 투표율 하락으로 나타나고 결국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1987년 민주화를 계기로 권위주의 체제를 벗어나 민주주의가 발전해 왔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저자는 반대로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 시국으로 본다면 MB정권이 출범한 2008년 이후 현재까지 상황은 독단적인 “위임민주주의”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고 있어 민주주의의 위기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 정권이라 일컫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간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하는 부분에서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1987년 민주화 역시 “광범위한 사회적 요구와 개혁의제를 배제한 채, 정치 엘리트간의 협약에 의해 정치경쟁의 절차와 관련된 문제를 민주화하는 데 그쳤고” 이로인해 “보수독점적 정당체제는 해체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구조를 지속시킴”으로써 “보수적 민주화”가 고착되어 “정당체제의 위기를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문제의식에 입각해 저자는 한국민주주의의 위기 해법으로 “기존의 보수독점적 양당체제를 해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정당체제를 민주화”하는 등 “선거제도 개선”과 같은 “제도개혁에 집중”해야 한다고 결론 맺고 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것은 이전 초판(2002)의 결론에서 비중 있게 다루었던 “자유주의와 공화주의” 관련 부분을 삭제한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저자는 개정판 후기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전 초판에서 “자유주의와 공화주의에 대해 말했던 것은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데 있어 우리사회가 갖고 있지 못한 어떤 결핍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 때문이며 “한국사회에서 자유주의 전통의 허약함이 민주주의를 약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강한 이념성이 운동에 의한 민주화 과정을 통해서나 그 이후에 더욱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운동의 열정들이 더 빠르게 소멸하면서...과도한 신자유주의적 ‘소유적 개인주의’를 담지하고 실천하는 개인들의 사회를 만들어 버렸기 때문” 에 "오늘의 시점에서 이러한 우려는 분명 기우로 느껴진다."
공화주의를 끌어들였던 것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보조적 버팀목으로서 자유주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던 결과”로 “이 책의 중심명제는 시민사회보다는 국가의 중요성에 두어져”있기 때문에 “공화주의는 자유주의에 대응하는 균형자적 역할을 갖는 이념으로서 불러들여졌다.” 하지만 “윤리적 공동체와 그에 복무하는 덕을 강조하는 공화주의 이념에 대한 강조가, 한국적 토양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강한, 정치에 대한 도덕주의적 태도와 가치를 더욱 강화하는 부정적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에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를 불러들여 한국민주주의를 강화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이 되었다.”

학자로서 기존의 입장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은 일임에도 저자는 냉정한 자기반성과 현 정치상황에 대한 인식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거두어들이는 유연함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학자로서 저자가 한국에서 갖는 신뢰성에 무게감을 더해주는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은 “한국 민주주의의 보수적 기원”을 정밀하게 밝혀내고, 이로 부터 나타나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단하면서 그 해결책을 모색하는 의미있는 시도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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