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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유일의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 씨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가 한글로 쓴 백과사전인 [규합총서]는 꽤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책이라고 한다. 나는 이 동화를 통해 알게 되어 이번에 읽어 보게 되었다.
워낙 문장력이 좋고 작품이 탄탄해 믿고 보는 작가다.
장면 묘사가 탁월해 책을 읽고 있는 지금 조선 영조 시대에 살고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팔십 척의 배를 한 줄로 늘어 세우고 그 위에 널빤지를 얹어 지은 다리인데, 그 위에 홍살문도 세우고 배에는 오색 깃발을 달아 아주 장관이었다고 했다. p22은행나무가 가지를 뻗친 흙담 아래에는 구기자가 무성하고, 반대편 담에는 안채로 통하는 사잇문이 나 있었다. 오래 묵은 집인지 기와는 색이 바랬지만, 잘 닦은 마루는 반질거렸다. p37
이 동화에서는 덕주라는 여아 인물과 빙허각 할머니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할머니, 윤보, 덕주의 만남은 어쩌면 운명이었다.
어려서는 아버지를, 혼인해서는 남편을, 늙어서는 아들을 따르는 것이 여자의 도리였던 그 시대에 덕주는 서체에 관심을 갖는다.
할머니는 덕주를 눈여겨보고 말을 한다.
덕주는 어머니의 면포를 들고 아버지와 함께 살림을 배울 만한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 할머니를 만나게 된 덕주는 놀란다.
아버지는 현명한 부인이라고 칭찬하고 덕주는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할머니 집에서 일을 돕기로 한다.
집에서 여인들이 옷감을 짜는 일을 길쌈이라고 한다. 아주머니들이 모인 길쌈 자리에서 듣는 이야기들은 덕주에게 큰 자산이 된다.
누구든 책을 읽고 싶으면 열심히 공부하면 되지 않느냐는 할머니의 말에 덕주는 치맛자락을 움켜쥔다.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면서, 먹고사느라 바쁜 사람들은 읽을 수 없는 글자로 쓴 게 이상하지 않나요? 그 진짜 글자라는 걸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p80
덕주가 책을 쓸 수 있었던 이면에는 어머니의 힘도 크다.
자신은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묵묵히 살림을 살지만 딸이 글을 쓰는 것을 막지 않는다.
뜻을 가진 아이를 지켜주는 것도 어른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한문을 공부해야만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시절, 언문으로 책을 쓴다는 것은 편지 쓰는 것과 같은 것으로 치부했다. 이에 할머니는 귀한 지식을 담는 글자이기 때문에 한문을 공부해야 한다고 하며 언문으로 글을 쓰면 여인이기 때문에 언문으로 썼다고 가벼이 여길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한글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올라왔고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우리는 원서로 작품을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선조들이 한글의 보급에 힘써줬기 때문에 지켜지고 보존되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저 강물 때문에 그런가 봐요. 멀리까지 뻗은 강을 보면 나도 모르게 생각이 따라 흘러요. 세상은 넓고, 사람은 많고, 그중의 절반은 여인일 텐데. 정말 그 많은 여인이 이리 똑같이 사나. 정말 모두가 고분고분시키는 대로 사나 궁금해져요. p116
덕주의 말을 되짚어보면서 나는 어떠한가 생각했다. 세상의 절반은 여자일 텐데 그중 하나인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글을 쓰려고 하는 마음만큼은 잊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덕주도, 빙허각 할머니의 그 마음으로 책을 썼을 것이다.
미꾸라지처럼 살아가겠다는 덕주의 말이 요즘 세상 살아가기에도 잘 맞는 말이다. 진흙 속에 있다가 유유히 헤엄쳐 나갈 힘을 길러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주관적인 서평을 작성하였습니다.>
팔십 척의 배를 한 줄로 늘어 세우고 그 위에 널빤지를 얹어 지은 다리인데, 그 위에 홍살문도 세우고 배에는 오색 깃발을 달아 아주 장관이었다고 했다.- P22
은행나무가 가지를 뻗친 흙담 아래에는 구기자가 무성하고, 반대편 담에는 안채로 통하는 사잇문이 나 있었다. 오래 묵은 집인지 기와는 색이 바랬지만, 잘 닦은 마루는 반질거렸다. - P37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면서, 먹고사느라 바쁜 사람들은 읽을 수 없는 글자로 쓴 게 이상하지 않나요? 그 진짜 글자라는 걸 아무나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P80
언문도 글이고, 글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니 말이다.- P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