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으로 혼란스러운 책이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혼란스럽게 '읽힌'책이라고 말해야 옳겠다. 사실 이러한 혼란스러움에는 저자의 책임도 일정부분 있는 듯 싶은데 '지역주의', '지역할거' 나아가 '지역패권'까지, 우리가 정치적으로 '논쟁의 대상'으로 삼는 지역주의의 정의라는 게 매우 모호하고 어찌보면 사람마다 각양각색일텐데도 불구하고 본서의 경우 그러한 개념정의를 거의 넘어가다시피 한 후 내용을 전개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본서가 문제로 삼고 있는 '지역주의'의 개념은 책을 다 읽고나면 어느정도 어렴풋이 추측이 가기는 한다만 그래도 조금 석연찮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아마도, 그 점이 이 책이 가진 유일한(그런데 조금 치명적인것 같기는 하다) 단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본서는 참신하고 재미있는 내용을 담고있기도 하다.
핑계를 갖다 붙히다 보니 결국 고려시대 훈요10조까지 거슬러 올라가곤 하는 옛 기록상의 지역차별논리부터 1971년 대선을 거쳐 1987년 정초선거에의 지역주의 관련 자료를 실증적으로 아우르며 저자가 제기하는 질문은 간단하면서도 의미심장하다. 우리에게 '망국적'이랄 법한 지역주의라는게 존재하기는 하느냐는 것이다. 사실 지역주의 관련 '자료'라고 해야 1987년 이후에나 급증했고, 유권자들이 지역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도 1987년 선거 이전이 아니라 이후의 통계에서부터나 잡히기 시작한다. '71년과 '87년 선거의 경우 권위주의대 민주주의라는 다수의 유권자가 선거 초기 수용한 명명백백한 이슈가 있었음에도 언제나 그 결과는 지역할거 운운하며 해석되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러한 해석이 얼마나 온당치 못한 이야기인지 저자는 무려(!) 게임이론 같은것까지 동원해가며 비교적 흥미롭고 합리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한국의 지역주의적 투표는 외국과 같이 한번도 분리지향적인적은 없었고 외려 중앙권력지향적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이는 굳이 따지자면 '경제투표'정도로 이해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그러니까, 저자에게 이러한 투표행태는 지역주의가 '아니다'.) 아울러 역대 선거과정에서의 투표행태도 언제나 지역보다는 다른 이슈가 중심이 되어왔다. 그럼에도 언제나 그 결과에 대한 해석은 '올해도 망국적인 지역감정'운운하는 단선적인 논리에만 의존하다보니 가끔씩 우스꽝스러운 일이 생기기도 한다. 2004년 총선에서의 조순형씨가 갑작스레 지역감정을 극복하겠다며, 아무리 입법부 의원의 역할이 지방자치단체장과 다르다고는 해도 연고도 없고 그 지방의 사정도 잘 모르는 동네에 출마한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일게다.
한마디로 지역주의적 '해석'이 지역주의적 '현실'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인데, 여기서 저자는 과연 누가 지역주의적 해석을 도모했는가, 누가 어떠한 의도로 이러한 현실을 만들었는지를 묻는다. 그에 대한 저자의 근본적인 답은 아마도 '구체제'정도라고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87년 당시 민정당과 그 밖의 정당이 선거정국에서 보인 태도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듯, 아울러 87년 대선 당시의 조선일보 사설에서 조금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듯 과도한 권력의 집중화와 권위주의를 특징으로 하는 구체제 그 자체는 민주화라는 그 자체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지역주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조장해왔다. 여기에 차별성이 없는 보수독점적 정당체제 또한 이러한 지역주의 담론을 유통시키는 데에 한몫을 했는데 정당간의 정책적 무차별성은 결국 정당 지도자의 출신지역이 과다대표(?)되는 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추가로 90년대 중후반 재야세력의 극우정당 가입에 지역주의가 인기있는(?) 알리바이로 쓰여지면서 지역주의 담론은 정치적 신념과 세력에 관계없이 소비되었다.
'모든 문제를 지역주의로 설명하면서 상황의 어려움을 지역주의 때문으로 합리화하려는 집권세력의 욕구'가 결국 지역주의적 현실을 주조했다고 보는 저자가 제시하는 지역주의에 대한 처방은, 그러한 비판만큼이나 명쾌하고 간단하다. 지역정당체제의 등장을 지역주의에 의한 결과로 설명할 수 없다면 지역정당체제 극복 또한 지역주의 해소로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당이 정책으로서 자신의 선명성과 정체성을 갖추고, 기존의 모든 이슈들을 그저 지역주의 때문으로 치부해버리는 폭력적인 담론에 진지하고 성찰적인 자세로 맞서자는 것이다.
민주적인 선거를 치르는 어느 국가건 특정 지역에 특정 정당이 강한 경향이 존재하는 것은 드물지 않은 현상이다.(미국에선 이를 일컬어 '섹셔널리즘'이라고 한다) 지역마다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차이와 우선을 두는 가치관에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여기에 부응하는 정당 또한 그리 많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투표행태를 분석하며, 여타의 현안에 대한 고려는 없이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망국적인 지역감정'이라며 매번 유권자들의 '멍청함'(?)을 성토하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이런식의 담론의 해악은 비교적 커서, 정당 그 자체의 주요 목표가 어떠한 정책입안이라거나 이념적 지향의 달성이 아닌 까놓고 '전국적으로 고른 득표를 받는 것'으로 보일 지경인 웃지못할 상황이 구축되기까지 했다. 이는 우리 정치를 현실로부터 괴리시키고 역설적으로-현실과 괴리되었다는 의미에서-이데올로기화 시킬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러운 현상이다.
지역주의라는 괴물은, 그것이 우리의 현실과 동떨어져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시민을 정치로부터 괴리시키고 소외시킨다. 이는 곧 민주주의의 약화와 위기를 의미한다. 지역주의적 담론이 '진지한 수준으로' 만연하기 시작한 87년 선거 이전과 이후의 투표율이 천차만별인 것은 괜한 이유가 아니다. 지역주의 하나만 해결된다면 뭐든 해결될 것이라는 잘못된 기대를 버리고, 오늘의 정치 현실을 바로 보는 것, 아마도 그것이 이 열망-절망의 싸이클을 깨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민주주의 구축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굉장히 재미있게(?!!) 쓰여진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