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규(李學逵, 1770~1835)란 옛 문인이 있다. 낯설기 그지없는 이름이다. 높은 벼슬은커녕 낮은 자리 한 번 맡은 적 없다. 일반에 작품이 널리 소개된 적도 없고, 문학사에서 주요한 작가로 대서특필된 일도 없다. 그렇지만 19세기의 시사나 산문사에서 그의 이름을 빠트릴 수 없는 숨은 작가다.
그런 이학규의 산문을 간추려 번역한 산문집이 간행되었다. 그의 산문집이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그가 겪은 불행의 깊이와 그 고통을 삭이며 자신을 다독인 쓰린 심경에 새삼 처연한 느낌이 몰려든다.
이가환의 조카요, 친척에 천주교 신자가 있었다는 이유 등으로 그는 경상도 김해에 무려 24년간이나 유배를 살았다. 가정은 풍비박산 나고, 아내와 자식 어머니는 차례로 고향집에서 죽어갔다. 그는 낯선 타향에서 고독과 고뇌에 몸서리쳤다.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위로한 것은 그나마 창작이었다. “우리같은 존재가 하루라도 시를 안 지을 수 있으리오? 시라도 짓지 않는다면 무슨 수로 이다지 허구하게 긴긴 날을 견디며 보내리오?”라며 저주받은 인생을 창작하는 행위로 위안했다. 그러니 남들처럼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고, 여유로운 심경을 드러낸 시와 문장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남쪽으로 유배 온 이후 10년 동안 눈앞에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고, 가슴에는 마음에 드는 일이 없었네. 마음과 눈이 머무는 곳에 마음에 드는 것이 없으니 마음에 드는 시를 어떻게 쓰겠는가?”라며 반문할 만도 했다. 그런 항변대로 지금 읽어도 그의 시와 산문은 고통과 슬픔이 넘쳐난다.
이번 산문집은 불행한 삶에서 건져 올린 슬픈 사연의 글들이 심금을 울린다. 특히 가족의 죽음을 지켜보며 쓴 문장 여러 편은 어느 하나 가슴 저미는 사연 아닌 것이 없다. 이 산문집을 읽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도 모르는 새 그가 겪은 고통과 슬픔에 전염될 것만 같다. 우선 15년간이나 생이별한 부인을 한번도 재회하지 못하고 결국 사별하고 쓴 <이 아픔, 어찌 말로 다하랴>가 그렇다. 그러나 좋다. 더 애절하여 깊은 연민을 자아내게 만드는 글은 <윤이 엄마>다.
사연은 이렇다. 아내와 사별한 이학규에게 이웃 사는 노파가 근처에 홀로 사는 평민 여자 강씨를 소개시켜 주었다. 정식 결혼도 채 하지 않은 듯, 아내 겸 식모로 강씨와 살았다. 강씨 역시 불행이라면 이골이 난 여자. “한 살이 되기 전에 병에 걸렸어요. 젖도 못 먹고 매도 많이 맞았어요. 어른이 된 지금도 어린애처럼 캄캄한 밤은 무서워 겁이 나고 두렵답니다”라고 강씨는 말한 적이 있다. 아무도 그녀를 돌보지 않았다. 홀로 살던 그녀에게 이학규는 넘볼 수 없는 고귀한 신분의 남자였다. “당신을 믿고 의지할 터이니 배필로 맞아준다면 주인처럼 모시겠다”며 이학규를 상전처럼 모셨다. 그러나 지지리 복도 없는 여자 강씨는 첫 아이를 낳고서 아흐레 만에 세상을 떴다.
이학규는 강씨를 묻고서 술 한 병, 고기 한 접시를 차려 자작하며 그녀가 잠을 잔 곳을 향해 말을 걸었다. 점잖은 한문으로 제문을 지어 영혼을 달래는 것이 관례였지만 그는 그저 말로 할 수밖에 없었다. 글자 한 자 모르는 강씨가 알아듣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살아있을 적에는 터놓지 못한 가슴 저린 사연을 넋두리처럼 토해놓았다.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예전에 내가 당신에게 말했지.
“당신이 아이를 낳으면 윤이라 부르겠다”고.
당신이 바로 윤이 엄마요.
당신은 글자를 모르니 글자로 쓰지 않을 거요.
“윤이 엄마!”라고 부르기만 하면 “나 여깄어요!”라고 대답하오.
어둠을 무서워하는 강씨가 칠흙같이 깜깜한 지하에서 촛불도 없고 곁에 아무도 없이 누워있을 것이 너무도 가여워서 꿈에라도 자주 찾아오라고 당부도 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이학규에 연민의 정을 느끼던 것이 자연스럽게 저 강씨에게 옮겨간다. 문학은 불행을 경험한 인간의 처지를 증언해왔지만 강씨와 이학규의 사연은 어떤 사연보다도 가슴 아프다.
그처럼 이 산문집은 ‘마음에 드는 시’를 짓고 싶어 하던 한 사대부 시인의 고통에 찬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몹시 개인적인 체험임에도 두루 공감할 수 있는 고통의 기록이다. 그렇다면 그는 고통과 절망에 좌절하고 생을 포기했을까? 그의 글을 보면 그는 살기 위해 몹시도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같은 존재에게 없어서 안 될 것이라곤 오직 망상(妄想) 한 가지뿐이지요”라면서 망상을 통해서라도 고통을 이겨보려고 했다. 고통을 이기는 방법을 고안하여 <아침은 언제 오는가>라는 글도 지었다. 그 글에서 자신보다 더 고통을 겪는 사람을 떠올림으로써 거듭 찾아오는 고통을 잊고자 했다.
“수심이 찾아올 때에는 가화(家禍)를 입은 사람을 떠올리자. 피붙이는 벌써 모두 죽임을 당했고, 가산은 보이는 대로 몰수되어 사라졌다. 게다가 자신은 노비가 되어 외딴 변방에 유배된 신세. 지난날 즐겁게 웃으며 노닐던 일들을 돌이켜 생각하니 가슴과 창자가 칼로 도려낸 듯 눈물이 먼저 솟구친다.”
수심이 찾아올 때 자기보다 더 큰 고통을 겪는 사람을 떠올렸으나 그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행복했던 시절을 돌이켜 생각하면 가슴과 창자를 칼로 도려내는 듯하다. 이런 글들은 그저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뿐 실제로 효과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하기사 그가 겪은 고통이 쉽게 해결될 성질은 아니었다. 그런 아픔이 그로 하여금 누구보다 인생의 깊은 고뇌를 표현하고 하층 계급 사람의 힘겨운 삶을 따뜻하게 드러내게 했다. 가식없는 고뇌와 우수의 문학을 산출한 것이 그의 불행이 그의 인생에 베푼 유일한 선물이었다고 한다면 틀린 말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