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긴 방학이라, 논문 쓰기는 어려워 이것저것 평소에 관심에 두던 책들을 짬짬히 읽는다. 지난 알파고-이세돌 이후 인공지능(저자의 개념으로는 '인조지능')에 대해 관심이 뜨거웠는데, 이에 답할 수 있을 책이다.
저자는 인공지능과 컴퓨터언어학에서 박사를 받고, 스탠포드에서 인공지능과 컴퓨터의 영향, 윤리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단지 책상물림인 것은 아니고, 스스로 벤처회사를 창업해서 성공적으로 매각한 경험도 있다.
저자는 인조지능이 앞으로 인간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차분하게 많은 예와 함께 설명한다. 터미네이터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기보다는, 인조지능이 인간의 편의를 위해 남몰래 일하며, 심하게 표현하자면 인간이 동물원 속의 동물이 되며 인조지능이 자신들의 세계를 끊임없이 발전해갈 세상을 그리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와 같은 경우, 단지 자가용이 인조지능에 의해서 운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자가용'이라는 것의 의미가 없게 만든다. 이제 개인이 차를 소유할 필요가 없이, 어디를 가든 차를 부르면 몇 분 안에 차가 대기해서 원하는 곳까지 운전해주는 것이다. 즉, '개인용 대중교통'과 같은 시스템이 10~20년 안에 가능할 것이라는 예측 등이 흥미롭다. 그런데 이를 통제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조지능의 시스템이고, 이러한 시스템이 여러 층위에서 작동할 때 충돌하여 엄청나게 큰 혼돈을 야기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실제 주식시장에서 초단타매매 프로그램이 충돌하여 수조의 재산이 공중분해된 적이 있었던 역사적 사례를 제시한다. 인조지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인간이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 다만 인조지능의 해석결과만을 두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는 대목도 흥미로웠다. 그랬을 때, 이제 인간은 자신보다 더 '똑똑한' 아이를 바라보며, 은퇴 후에 모히또나 마시면 되는 것일까? 한글도 못 쓰는 부모가, 양자물리학을 전공하는 자식을 바라보며, 그래그래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몸도 챙겨... 라고 하는 것처럼?... 그것도 좋겠지만, 이제 더 이상 인간이 '진리'탐구의 최전방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서글프기도 하다.
물론 인류의 미래가 '모히또'와 함께 여유롭지만 왠지 침울한 은퇴한 노년 같은 것만은 아니다. 미국의 빈부격차는 지난 50여년간 엄청나게 증가했는데, 인조지능의 영향으로 이는 더욱더 증가할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빌 게이츠는 로봇에 세금을 부여하자는 등의 주장도 했다. 인조지능의 혜택을 상위 0.1프로가 가져가야 되는지, 아니면 전체 인류가 누릴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는 것이다.
자본이 자본을 생산하는 자본주의가 심화될 수록,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부자는 점점 부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민주주의'는 어떠한 해결책을 낼 수 있을까. 또 빠르게 변화하는 직업에 시장과 정부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를 "직업대출"과 같은 제도를 제안한다. 이에 대해서는 더 고민해봐야겠지만, 피케티, 퍼트남, 카플란이 모두 소리높여, 빈부격차에 우려를 표하고 '평등'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