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히말라야는 왜 가? - 엄마의 글쓰기
abikethief 2020/12/12 22:42
엄마라는 정체성을 갖고 글을 쓰는 사람,
저자 백운희는 그런 사람이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내게는 이 책이 '히말라야 '라는 여행지를 제목에 두었지만, 여행서라기보다는 여성, 엄마가 겪게 되는 사회적 억압과 차별을 겪는 동안 자기 객관화의 과정을 거친 한 사람이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하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책으로 다가왔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사회적 민감도가 유난히 높았다. 엄마가 되면서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약자'가 된다는 것에 대해 더욱 절실히 실감했다. 그 시선을 '엄마'라는 역할에게만 국한하지 않고 성별, 성적지향, 장애와 질병, 경제력 정도, 아동, 이주노동자, 동물, 환경 문제까지 사회의 약한 곳을 들여다보려는 시선으로 확장(p.147)한 그녀는 히말라야 여행을 기획할 때 이미 '정치하는 엄마들'의 활동가이기도 했다.
방송기자를 꿈꾸던 그녀는 신문기자가 되었고, 직업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경력단절여성이 되기로 했다. 그녀가 회사생활을 하고, 엄마가 되어 겪은 삶의 과정들은 나나 다른 엄마들 역시 함께 겪은 일들이다. 10년이 되어가는 '엄마'로 산 지난한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나의 선택'이 그녀와 다르지 않음을, 그녀가 겪은 시선과 무례함을 대개의 엄마들도 체감한다. 그녀는 개인적인 연민 안에 '이야기'를 가두지 않고 구조적 문제를 바꾸는 글쓰기를 시작한다.
19장은 경력단절여성이 된 이후 인정 투쟁을 이어가며 내 가치를 증명하기 위한 글쓰기, 세상을 바꾸는 글쓰기, 나를 드러내는 글쓰기를 하게 되는 과정들이 담긴 장이라 특히 좋았다.
어떤 책보다도 어떤 저자보다도 나는 그녀에게 공감했고, 그녀의 안녕을 빌었다. 우리는 수퍼우먼이 아니므로, 늘 '나'와 '엄마', 수많은 역할들을 수행하는 동안 균형을 잃지 않고 안녕하기를 바란다.
글은 변화를 위해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다. 무력감에서 벗어나 한 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면 가능성을 확대해 경계를 넘을 수 있도록 돕는다. 말하는 이와 듣든 이 모두에게 그렇다. 글 쓰는 이들이 많아지면 세상도 변하리라 믿는 것이다.
나는 타인의 이야기, 낯선 이야기가 더욱 궁금하다. 자신에서 시작해 세상과 미래로 확장되는 그 여정에 용기를 주고 싶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온 이들과 함께 글을 쓰며 기록을 남기는 과정이 없었다면 나 역시 바깥세상에 나설 결심을 더디 했을지도 모른다.
엄마, 여행의 키워드로 사회를 바라보려는 노력을 마음속에만 꼭꼭 묵혀 뒀었다. 이를 꺼내기로 결심한 데는 내가 그러했듯이, 나의 글쓰기가 한 사람에게라도 자극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있다. 그리하여 나는 계속 쓰고 말할 것이다.(p.236)
성과로 측정되지 않는 육아와 가사의 ‘그림자 노동‘을 이어가며 ‘이러다가 어느 순간 나를 잃어버릴까‘ 두려웠다. 세상과 나를 이어주던 매개가 사라진 것만 같았다. 자아의 해상도가 지극히 낮았던 나라는 사람이 인정 투쟁을 이어가던 나날들 속에 가치를 증명하는 일은 글쓰기를 통한 기록이었다.종이신문 기자로 밥벌이를 위해 직업적 글쓰기를 이어가던 과거보다도 절박했다.(p.229)
히말라야는 최선을 다한다고 모두가 알아주는 것은 아니며, 최선만이 해답은 아니니 이제는 자신을 돌보자고 다짐하기 위한 장소가 됐다. 앞선 랑탕행이 불안에 맞서는 용기, 느슨한 연대를 향한 여정이었다면 두 번째는 침잠이 목표였다. 입과 귀를 닫고 내 안으로만 파고들어 꼬치를 트는 시간이 필요했다. 제법 단단해진 줄 알았지만 여전히 약하고 헝클어진 마음을 도닥이고 싶었다.(p.246)
정신이 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임을 ,이제는 안다.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건강해진다. 그래서 배가 고프면 먹고, 졸음이 몰려오면 자야 한다. 잠은 줄일수록 수명도 준다는 경고를 이제 받아들이기로 했다. 몸 쓰는 삶을 위해서라도, 나는 계속 걷는 사람일 것이다.(p.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