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집에 <참말로 좋은 날>이라는 단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소설집의 내용도 '참말로 좋은 날' 같은 날은 없다.
그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이,'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등장인물들이 성석제 소설에 나오는 특유의 인물군인 건 여전하지만,
그들을 풀어내는 이야기의 형식과 시선은 예전과는 다르다.
너무나 건조해서,고발 프로그램을 보고있는 건 아닌가 싶다.
고발 프로그램 같은 삶의 적나라함이 드러난 작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와 <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
그런데도 예전의 향수가 느껴지는 작품들이 여전히 있다.
그렇다고 이게 예전의 지하철에서 읽다가 미친듯이 키득거리거나,
서서 읽다가,무릎이 꺾이는 기쁨을 주는 작품은 전혀 아니지만,
<고욤>(왠지 나는 협죽도 그늘 아래가 그리워진다),
<고귀한 신세>(성석제 아저씨는 웰빙라이프에 관심이 많다.
초기 엽편 소설들 중에 등장하는 정수기장사등이 좀 생각나더라)
<악어는 말했다>- 이거 진짜 웃긴다..왜 당사자들도 아닌 다른 넘이 끼어서
지들 사이를 망치는데도 그 놈한테는 화를 안내냐고...
<집필자는 나오라>(『인간의 힘』이 생각나지만,최동구같은 희화화된 인물은 아니라는 거)
책을 다 읽고서 책 뒤에 실린 평론을 읽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던 것은,
'말이 말이 아니고, 법이 법이 아니며, 인간이 인간이 아닌 지금을,또 어제를.
그러나 내일은 아니어야 할 그 시간을.그 모든 분할 기계 자체를.'이라는 말에 공감.
성석제는 법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법학을 전공한 사람중에 비문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가장 문법적으로 건조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들이 어쩌면 법학전공자일지도...)
이 소설에는 다른 어느때보다도 경제적 파산으로 인해 법의 지배를 받아야만 하는,
정상적이지 않은 해결책을 도모하다가,자신과 가족들을 파괴시켜가는 가장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누군가를 보호하고자 만든 법이 가정을 파괴하고,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만들어버리는 현실을 그린다.
그리고선 이 작가,
세상이 바뀌어도 사람은 그대로다.라고 한다...
뭐 그렇지, 한량은 영원한 한량이고,구렁이 담넘듯 남의 덕보고 살던 사람은
끝까지 잘 살 수도 있고,잘 살아보려고 갖은 노력하다가 한 순간에 가는 사람도 있고,
자기가 한 일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순교자로 나서는 사람도 있을 거고,
자존심을 지키려고 하다가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인간들도...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