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본질은 다름 아닌 이 이동 시간‘에 있다. 만약 이번 체르노빌 투어를 가상현실로 체험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집에서 체르노빌을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노동 자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사고의 상흔은 어떻게 남아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금도 체르노빌 원전 사진 은 인터넷에 얼마든지 있다. 박물관 내부 사진도 있다. 구글 스트리트 뷰도 있다. 현지에 가봤자 사진과 똑같은 풍경이 있 을 뿐이다. 가상현실로도 정보는 충분히 얻을 수 있다.
그래도 무언가가 다르다. 다른 것은 정보가 아니라 시간 이다. 가상현실로 취재한다면 이 정도면 됐어 하고 브라우저 를 닫으면 곧바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즉, 그 순간 생각 을 멈추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쉽게 키예프에서 일본으로 되돌아 올 수 없다. 이도유시간 동안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P84
많은 시간이 요구되는 일을 할 때 최종적으로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은 체력이다.
시간과 노력을 더 기울이면 좋아진다. 하지만 눈과 손이 한계에 달해 일을 멈추었던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이는 철학적으로도 중요한 문제로, 데리다는 "의사소통이 멈추는 것은 잉크가 부족해졌을 때"라고 말했다(유한책임회사. 꽤 신랄한 지적이다. 의사소통은 정치철학자의 이상과달리 합의나 목표에 도달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참가자가 지치거나 싫증이 나서 멈춘다는 것이다.- P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