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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향기, 默香



  한국에서 이익집단을 넘어선 진정한 보수주의가 형성될 수 있을까.


  이데올로기라는 것이 본디 투명하거나 일관된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서구에서 자유주의, 사회주의와 더불어 3대 정치 이데올로기를 이루었던 보수주의는, 한국에서 존중할 만한 이념과 세력으로 존재하지 못했다. 보수주의도, 자유주의도, 사회주의도 실력과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곧잘 스스로 지리멸렬에 빠지기도 하는 동안 경쟁다운 경쟁 한 번 없이 제각각 속물 보수주의, 속물 자유주의, 속물 사회주의에 휘청거리고 있다. 물론 보수주의보다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훨씬 강력한 실체였던 우리 현실에서, 이념적으로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까지 탄압받았던 사회주의를 나머지 둘과 동등한 위치에 놓고 비판하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아직 우리는 유의미한 사민주의 정당조차 가져본 적이 없다. 아무튼 보수주의를 자임하는 분들이 오래 전부터 해온 습관대로 공포 마케팅, 증오 마케팅에 의존하는 한, 거부감, 혐오감만 키울 뿐 차오르는 미래 세대의 선택을 받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그 반대쪽도 상대를 자꾸 닮아가다간 마찬가지의 운명에 처할 테고...


  다니엘 벨은 자신을 "경제에서 사회주의자, 정치에서 자유주의자, 문화에서 보수주의자"로 묘사한 바 있는데(책 141쪽),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려면 정치에서 '자유주의적 합리성'의 회복이 절실하다. 상대가 본 것을 내가 놓쳤을 수 있다고 쿨하게 인정하는 태도 말이다. 처음에는 어떤 추상적이고 고매한 기치를 위해 복무한다고 생각하면서 시작하였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상대를 섬멸하는 전쟁이 되다 보면 어느새 대의는 온데간데없어지고 자신들을 그 기치와 동일시하면서 결국에는 조직 보위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집단이기주의, 당파주의에 빠지게 된다. 


  지은이 로버트 니스벳은 2차세계대전에 육군으로 참전한 사회학자로, 처음에는 좌파적 입장을 띠었으나 그의 첫 저작 The Quest for Community: A Study in the Ethics of Order and Freedom (1953)이 보수주의 저작으로 평가받았고, 그 자신도 후에 철학적 보수주의로의 전향을 부인하지 않았다(책 147쪽). 이 책은 '복지 보수주의'를 제안하며 마치고 있는데, '신보수주의'의 창시자로 불리는 니스벳도 더 구체적으로는 '공동체주의자'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최근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의외의 의기투합이 있었다는 식의 보도가 있었는데,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어쨌든 '탈진영'은 한국 정치가 바람직하게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이라고 본다). 니스벳은 자신이 수학한 U.C.버클리에서 가르치다가 컬럼비아 대학에서 경력을 마쳤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에드먼드 버크와 보수주의』, 『현대사회의 정신사적 기초』라는 책이 있다.




  책은 자유주의의 존 스튜어트 밀, 사회주의의 맑스에 대응하는 인물로서 에드먼드 버크를 보수주의의 태두로 중요하게 다룬다. 보수주의 철학은 1790년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성찰』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니스벳은 이후 2세기 동안 전개된 보수주의의 중심 논지도 그 확장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책 17쪽).


  버크에게 자코뱅 혁명은, '자의적 권력'으로부터의 해방과 "실제로 살고 있는 인간과 그들의 관습, 습관을 위하여 자유를 추구"했던 미국 독립 혁명과는 정반대였다. "실제로 살고 있는 인간 군상들에는 별 관심 없[이], 혁명 지도자들[에 의해 제조된] 평등이란 이름의 평준화였고, 자유란 명목의 허무주의였다." 버크는 "정치적 지식인들"인 자코뱅이 "혁명적 인간Revolutionary Man의 창조에 방해가 되는 모든 제도들을 기꺼이 파괴[했다]"고 비판하면서 프랑스 혁명은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기보다는 절대 권력을 위한 투쟁"이라고 보았다(책 22-23, 25쪽). 당시 공안위원회의 '혁명적 인민'에 관한 다음과 같은 언설은 후세에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익숙한 형태로 반복된다("사회주의적 인간"). "당신은 당신이 해방하고자 하는 인민을 전적으로 재창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민의 편견을 파괴하고, 그 습관을 변경시키며, 필수적인 것들을 제한하고, 그 악덕을 제거하며, 그 욕망을 순화해야 한다." (책 29쪽) 이것은 공포정치의 논거가 되었다. "혁명 시 인민 정부의 토대는 덕성과 공포이다. 공포 없는 덕성은 무기력하고, 덕성 없는 공포는 살인이다." (로베스피에르, 책 30쪽).

  어빙 배빗은 훗날 『리더십과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적 지식인 집단을 모두 염두에 두고 '민주주의적 제국주의democratic imperialism'를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고도로 조직적이고 단호한 소수의 의지가 소극적이고 비조직적인 대중의 의지를 압도하는 방식을 이른바 민주주의 운동만큼 분명히 보여 준 운동은 없었다." (책 60쪽) 민주주의로 인한 대중의 창조가 전체주의 국가 탄생의 싹이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도슨, 엘리엇, 커크에 이르는 보수주의자들은 물론이고, 부르크하르트, 니체, 키에르케고르, 호세 오르테가 가세트, 피터 드러커, 한나 아렌트도 유사한 지적을 했다, 책 77, 82쪽).


  "나는 미래에 대해 전혀 희망을 갖지 않는다. 일종의 로마 제정 시대처럼 반쯤은 참을 만한 몇 십 년의 세월이 우리에게 허용될 수도 있다. 내 의견은 민주주의자와 프롤레타리아트가 갈수록 가혹해지는 전제정치에 시달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 부르크하르트(책 137쪽)


  니스벳은 『성찰』에 더하여 번역되지 않은 버크의 저작 중 『궁핍에 관한 상론 Thoughts and Details on Scarcity』을 추천했다.



  니스벳은 토크빌도 중요한 이론가로 다룬다. 토크빌은 프랑스 혁명가들을 다음과 같이 비난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들을 경멸했으며, 교묘하고 독창적인 노선에 따라 제도를 개조하는 데 취미가 있었고, 헌정 체계의 오류가 있는 부분을 바로잡으려 하기보다는 논리적 규칙과 미리 고안한 체계에 따라 전체 헌정 체계를 재구축하고자 했다. 그 결과는 재앙 그 자체였다. 왜냐하면 학자로서 장점인 것이 정치가에겐 악덕이 될 수 있으며, 위대한 문헌을 창조할 수 있는 바로 그 재능이 파국적인 혁명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코뱅의 언어는] 주로 그들이 읽은 책들에서 차용한 것으로서 추상적인 단어, 값싼 장식적 언설, 멋을 부리는 상투어 그리고 문학적인 문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책 25쪽)

  토크빌의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혁명』이 그런 내용이라는 것은 미처 몰랐는데, 과학에서 '오컴의 면도날'이 한 기준이 될 수 있어도, 정치에서 지나치게 완벽한 논리 체계, 단순하고 선명한 구호, 미사여구가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은 맞는 말 같다. 버크는 국가 조직의 '기하학적 조화'를 추구하고, 이성의 이름으로 권력을 집중시키는 프랑스 혁명정부의 조치가, 이웃들 간의 지역적 연계를 파괴하고 "하위 공동체의 유대를 갈기갈기 찢어 [] 반사회적이고 반문명적이며 서로 고립된 입자들의 혼돈 상태로 해체"하였으며, "모든 시민을 뒤섞어 하나의 동질적인 대중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표현했다(책 72, 76쪽). 니스벳은 일종의 '말의 혁명'이었던 프랑스 혁명의 수사는 루소로부터 비롯되었고, 이것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드 메스트르의 다음과 같은 말은 버크나 토크빌 같은 보수주의자들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입장을 잘 대변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반혁명이 아니라, 혁명의 반대 상태이다." (책 42쪽)

  토크빌도 버크와 마찬가지로 『빈곤에 관한 회상록 Memoir on Pauperism』이라는 책을 썼다.



  전통적으로 볼 때 사회주의, 자유주의, 보수주의는, 흔히 '개인과 국가의 정당하고 바람직한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관점에서 다루어진다. 보수주의자들은 국가주의(민족주의)와 개인주의 양 극단 사이에 있는 사회질서 내의 전통적 중간 집단, 즉 '가족', '지역 공동체', '교구', '이웃' 그 밖에 모든 형태의 '상호 부조' 집단을 중시하고 신성시한다(책 43, 160쪽). 토크빌에 따를 때 이러한 "중개적 결사들은 개인을 중개하고 함양하는 기제로서 소중하고, 그에 못지않게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완충장치로서도 소중하다." (책 81쪽) 19세기 말 메이틀런드, 피기스, 비노그라도프는 중세 이후 서구사를 국가, 법인 단체, 개인의 삼각관계적 시각에서 조망했고, 이 지점에서 헨리 메인(신분 대 계약), 오토 폰 기르케(유기적인 것 대 개인주의적인 것), 막스 베버(전통적인 것 대 합리적인 것), 짐멜(소읍 대 대도시), 쿨리(1차 집단 대 2차 집단), 퇴니스(공동사회 대 이익사회) 등의 유형론이 분출한다.


  "사회적 유기체라는 근본적 관념으로부터 중세는 일련의 다른 관념들을 연역해 냈다. 우선, 다양한 교회 및 정치 단체 내에서 개인이 점하는 지위를 묘사하기 위해 구성원이라는 관념이 발전했고 [] 그 결과 이런 단체의 구성 요소인 개인들은 산술적으로 평등한 단위로서가 아니라 사회집단의 구성원으로서, 그리하여 상호 차별적으로 인식됐던 것이다."


- 오토 폰 기르케(책 63쪽)


  유기적 구조의 성장에 주목하는 역사발전학파에게 가장 큰 적은 벤담주의였다(책 43-44, 72-73, 122-123쪽). 버크를 비롯한 보수주의자들에게 근대사는 권위와 자유의 중세적, 봉건적 종합이 꾸준히 몰락해 가는 과정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이들에게 중세법상 '자유'란 법인 집단의 적절한 자율성에 대한 권리를 의미했는데, 서구사의 전체 형상은 이러한 사회적, 조합적 개념이 개인들로 이루어진 대중에 의해 지배되는 개념으로 해체되는 과정이었다(책 63쪽). 버크에게 최상의 통치는 '분권화'와 '자유방임'이었다. 여기서 '자유방임'은 개인주의에 입각한 자유주의와는 다른 것으로서, 사회에 존재하는 '중개적 구조'의 풍습을 전제하는 것이다(65쪽, 개인주의에 입각한 법은 관습의 창조자라기보다는 종종 그 파괴자가 될 수도 있다. 책 86쪽). 이는 헤겔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요약하자면, "사회적 유대의 강조, 개인의 상대적 경시, 전통에 대한 애착, 위계질서, 영웅주의, [] 그리고 모든 정치적인 것을 봉건화, 분건화하려는 경향"이다(책 67쪽). 어찌 보면, 미국 헌정사 역시도 "'개인' 권리의 극대화를 주장하는 세력과, 주 및 지역 공동체의 '법인체적' 권리의 자율성을 주장하는 세력 간 투쟁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이에 관하여 토크빌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정부'는 강하고 통일되어야 하지만, '행정'은 자유와 질서 모두를 위해서 가능한 한 분권화, 지방화되어야 하며 가급적 드러나지 않아야 한다고 기술했다(책 70쪽).




  보수주의자들에게 '역사'는 그 본질에 있어 '경험'이고, 그들의 역사주의는 추상적이고 연역적인 사고에 우선하는 경험에 대한 신뢰에 기초를 두고 있다(책 45쪽). "한 국민의 진정한 헌법은 한 장의 문서가 아니라 그 제도들의 역사에 있다"는 것이다(버크, 책 50쪽). 만하임은 "보수주의자로서 진정 사물을 본다는 것은 [] 과거에 근거한 상황과 배경에서 도출된 태도에 입각해 사건을 경험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책 46쪽). 증거가 충분히 쌓이기 전에는 경험에서 비롯된 명제를 쉽게 수정하지 않는 태도(귀무가설을 기각하지 않는 태도)를 '인식론적 보수주의'라 이름할 수 있을까. "변화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 때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고장 나지 않았으면 고치지 말라"는 것이다. 버크에게 '혁신의 정신'이란 "변화 그 자체를 위한 변화에 대한 우상숭배이고, 무한히 새로운 것을 통해 기분 전환과 자극을 추구하는 대중들에게 만연된 경박한 욕구[로서], 인간 제도에 적용될 때 특히 치명적[인 것이었다]." (책 50쪽). "진화론적 선택에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지혜를 초월한 엄청난 지혜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자연적인 변화와 발전 과정에 의한 것 이상을 해내려는 사육자의 노력은 [] 터무니없는 짓이다." (책 53쪽)

  역사학자 중에는 '정확히 실제 일어난 그대로의 wie es eigentlich gewesen ist' 과거를 회복하라고 호소한 랑케가 대표적이고(책 49쪽), 오크숏Michael Oakeshott과 베겔린Eric Voegelin 역시 경험과 역사의 '구체성'을 강조한다. 이들은 합리주의자들의 '자연적', '추론적', '가설적', '논리적' 역사는 추상적 이론일 뿐 역사가 아니라고 본다. 루소의 다음과 같은 입장은 이들의 입장과 대척을 이룬다. "사실을 논외로 두고 시작하자. 왜냐하면 그것은 논의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 우리가 여기서 착수하고 있는 검증은 역사적 사실로서가 아니라 (역사가의 연대기보다는 물리학자의 가설과 더욱 비슷한) 조건적이고 가설적인 추론과정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책 47쪽) 과거에 대한 '주관적 낭만화'도, 미래에 대한 '진보적 발전주의'도 모두 거부 대상이다.


  "진보주의 사상은 결국 모든 것이 자신을 초월하는 것, 곧 미래의 유토피아나 어떤 초월적 규범과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도출하는 것임이 드러난다. 그러나 보수주의는 사물의 모든 의미를 그 '배후'에 놓여 있는 것, 즉 시간상의 과거나 진화론적 기원에서 발견한다. 진보주의자는 사물을 해석하는 데 있어 미래를 사용하지만 보수주의자는 과거를 사용한다."


- 칼 만하임(책 135쪽)




  그 밖에도 짧은 분량 안에 많은 내용이 나오지만 이 정도로 정리를 마친다. 강정인 교수의 번역이 그리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덕분에 어렴풋했던 보수주의에 대한 관념이 조금 잡히는 것 같기도 하다. "신에 대한 신앙을 상실한 결과 야기되는 위험은 인간이 아무것도 믿지 않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것이든 믿어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체스터턴, 책 114쪽)라는 견지에서 종교의 중시, "한 (원숙한 시인의) 작품에서 가장 우수하고 가장 개성적인 부분은, 죽은 시인들과 그의 선조들이 가장 정력적으로 그들의 불멸성을 주장하는 부분일 것이다. 예술가는 조국의 문학 전체에 부단히 자신을 바친다. [] 예술가의 진보는 지속적인 자기희생이며, 지속적인 개성의 소멸이다."(엘리엇, 책 132쪽)로 표현된 것과 같은 예술에서 전통의 강조도 납득이 갔지만, '재산'이나 '권위'에 관한 내용은 살짝 궤변 같기도 하고 와닿지 않았다. '반기술주의' 역시 지금 시각에서는 보수주의의 특질로 보기 어렵다.


결코 보수주의자는 아니지만, 군나르 뮈르달은 우리 시대에 이 점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보수주의 진영은 그들의 ‘현실주의‘에 의해 상당한 이득을 누렸다. 실제 활동에서 보수주의자들은 존재하는 질서 이외의 ‘자연적인 질서‘에 대한 사변을 삼갔고, 대신 사회를 있는 그대로 연구했으며, 그 결과 실제로 근대 사회 과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P118
"자연법은 역사적 방법 앞에서는 한순간도 그 발판을 유지하지 못했다." - 메인- P122
"진보주의 사상은 결국 모든 것이 자신을 초월한는 것, 곧 미래의 유토피아나 어떤 초월적 규범과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도출하는 것임이 드러난다. 그러나 보수주의는 사물의 모든 의미를 그 ‘배후‘에 놓여 있는 것, 즉 시간상의 과거나 진화론적 기원에서 발견한다. 진보주의자는 사물을 해석하는 데 있어 미래를 사용하지만 보수주의자는 과거를 사용한다." - 칼 만하임-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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