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토대가 되는 기획강의를 꼭 듣고 싶었는데 듣지 못했다가 이번에 책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러니까, 2016년쯤이었던 것 같다. 페미니즘 리부트가 이루어지고, 각성한 여성독자들이 한창 '페미니즘+문학'에 목말라 있었을 때. 여성작가들이 새로운 여성서사를 막 내놓기 시작했을 때. 주위에선 '그러면 지금까지 한국문학의 이런 남성중심성에 대한 비판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 페미니즘 비평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궁금증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새로운 여성주의 시각으로 각성은 했는데, 문학 전공자도 아니고 아무래도 비평보다는 창작물을 먼저 찾아 읽어왔던 친구들이 페미니즘 비평에 대한 목마름을 표시했던 것이다. '글쎄, 있었겠지. 없었을 리가 있나. 우리가 무지해서겠지' 했지만 연구자도 학생도 아닌 터라 무엇을 어디서부터 찾아 읽어야 할지 몰랐던 건 나나 친구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책을 펼쳐보니 역시, 있었다. 반갑고 간절한 마음으로 나의 무지를 깨달아 새로고침한다.
대충은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의 여러 부분이 충격적이었다. 심진경의 글에 나오는 '모델소설'이라는 장르의 존재를 작년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을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었다. 문단의 여성 작가들을 폄하하다 못해 그들의 성폭력 경험을 왜곡한 서사를 아예 장르로 만들어버리다니. 그야말로 글로 하는 2차 가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그게 다름아닌 문단에서 일어난 일이라니. 너무나 기막힌 일인데, 지금까지의 문단을 생각해보면 딱히 놀랄 일도 아니다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의 곳곳에 드러난 자료들이 여성과 여성 작가의 문학들을 둘러싼 문학계 안팎의 혐오의 시선들을 또 다시 너무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승옥과 조세희의 '정전'들이 남성의 각성과 그들이 추구하는 대의를 표현하기 위해 어떻게 여성을 희생제물로 삼았는가, '문학소녀'로 일컬어졌던 여성들에 대한 지독한 비하의 시선은 어떻게 남성들을 넘어 여성들 자신에게까지 내면화되었는가.
허윤의 글은 염상섭과 손창섭의 작품들을 '건실한 남성 가부장'의 역할에서 벗어난 '퀴어한 남성 서사'로 읽는다는 점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한국 남성들의 지배적인 특징인 '식민지 남성성'과 어떤 점에서 같고 또 다른지에 대한 부가적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루이제 린저에 관한 김미정의 글은 읽으면서 너무도 마음이 복잡했다. 독자들이 폭발적으로 지지를 하니 방한까지 청해 루이제 린저를 데려와놓고 그에 대한 언급을 일부러 쏙 뺀 독일문학사 연구 발표를 하고, 거기에 더해 한국문학계에서 언급하기엔 너무 위험하고 급진적이었던 그녀의 문학에서 '여성'이라는 말을 지우고 애써 '인간' '휴머니즘'으로 포장한다. 1990년대 여성작가들의 후일담 문학을 다룬 김은하의 글도 읽으면서 심란하기는 마찬가지였더랬다. 80년대, 진보적 문학의 대의를 만나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일상성과 욕망을 자의든 타의든 포기하거나 은폐하고 삭제해야 했던 여성 작가들이 훗날 그 시절을 소환하며 한없이 고통스러운 진정성의 자학을 계속하거나, 반대로 기이한 권태에 빠진 내면을 그대로 자신의 작품에 드러냈다는 것, 시대에 봉사하기 위해 여성을 지우라는 사회의 압력 속에 문학과 글쓰기 자체도 포함되어 겹겹의 검열과 고통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에 생각이 많아졌다. 글쓰기가 여성에게 자유와 해방을 가져다줄 수 있는 한 가지 중요한 방법이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도리어 족쇄가 되어 여성성을 짓누른다면 우리는 어떻게 글을 쓰고 또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결코 여성이 그 자신으로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했던 문학계의 분위기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흔히 '젊다'고 표현되는 남성 작가들은 자신들의 무능함과 권태와 찌질함과 타락과 방종과 심지어는 폭력까지도 서슴지 않고 작품에 표현하고 승인받는데, 여성 작가들은 어떤가. 게으르고 더럽고 무능하고 비열하며 고민도 없고 폭력적인 욕망을 지닌 여성 인물들이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한 적 자체가 지금껏 드물지 않은가.
책을 읽으며 내내 '이 부분을 하나하나 따로따로 깊이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신여성이 등장한 시대부터의 '여성-한국문학-비평'의 계보가 차근차근 정리되는 느낌이었고, 말미에는 이 기획강좌와 책을 가능하게 했던 기획자 오혜진 평론가의 힘있는 글이 만만찮은 울림을 준다. 페미니즘 리부트와 함께 여성주의와 퀴어문학이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하자, 문단의 남성 평론가들이 일제히 '문학은 정치적 올바름을 자랑하는 트위터가 아니다', '페미니즘과 퀴어문학은 내용은 새로울지언정 형식적으로는 퇴보다. 그동안 한국문학이 그토록 공들여 해왔던 서사에서의 낯설게 하기 전략을 완전히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비평 안팎에서 못마땅해 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며, 적잖이 징후적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이 여성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는데 그것을 애써 윤리적 강박이자 문학적으로 덜 떨어진 무언가로 치부하며,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스며든 남성사회의 폭력을 도저히 괄호 치거나 없는 셈 칠 수 없어 작품에 자연히 스며나오는 것을 '피해자 코스프레'이자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하기 위한 값싼 전략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을, 나는 보았고 지금도 보고 있다. 이런 상황을 지적하고 넘어가는 여성 연구자/평론가들이 있어 참으로 고맙고 다행스러운 마음이다. 한편으론 이런 시대에 '형식상의 새롭지 않음' 정도를 굳이 지적할 수 있는 남성들의 한가한 권력이 참 부럽기도 하지만, 여성 작가와 독자들이 앞으로는 이런 목소리에 굳이 신경쓰지 않고 내고 싶은 목소리를 마음껏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성들이 여성으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서사를 쓰는 것을 그렇게 폄하하고 싶은가. 마음대로 하라. 당신들에게 이것은 그저 '한때의 유행'이자 '정신 나간 도덕적 강박'에 불과할지 모른다. 새로운 여성 서사들이 미학적으로 완벽하지 않다고, 속도가 느리다고 흠집을 잡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렇게 하라. 그러나 우리에게 이것은 환골탈태다. 여성 작가와 독자들은 뼈를 갈고 피를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내고 전혀 다른 욕망을 탐구하면서 몸의 근본부터 바꾸는 싸움을 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소재를 갈고 시대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시대와 정면으로 맞부딪치면서 미학의 기준 자체를 바꾸는 싸움이다. 우리에게 당신들의 평가와 만족과 승인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 책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