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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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믈렛
  • 에셔의 손
  • 김백상
  • 12,150원 (10%670)
  • 2018-04-25
  • : 559


너무 오랜만에 sf를 읽어선지 촉촉하면서도 계속 머리를 쓰게 만드는 특유의 감각으로 젖어 읽는 내내 즐거웠다.

전뇌라는 건 sf 팬이나 창작을 꿈꾸는 이라면 한번쯤 창작의 모티프로 삼아보고 싶을 만한 소재다. 특히 나의 뇌가 타인의 전뇌와 연결되었을 때 어떤 식으로 동기화가 이루어지는가.. 를 나도 나 나름대로 시각화해 상상해 본 적이 있다. 아주 옛날, 아이팟을 pc에 연결해 아이튠즈 음악을 동기화할 때처럼 이쪽과 저쪽의 균형이 맞춰지며 동기화가 이루어지는 모습을 그려보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그걸 이야기로 상상해 본 적은 없는데, 이 작품에선 그 장면의 이미지화에 기이한 천재 화가 m.c. 에셔의 그림이 전면으로 쓰인다. sf와 에셔라니, 참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그리고 에셔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드러나는 폐쇄적이면서도 마술적인 이미지처럼, 이 작품은 구조 전체가 여러 갈래의 서사들이 서로를 참조하고 맞물리면서 닮아가는 독특한 형태로 짜여 있다. 작품 전반에 쓰인 논리와 사유와 연구의 밀도도 상당히 높다. 이를테면 의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식욕과 성욕에 대해 다소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머리와 몸통 부분만 빼고 팔다리를 의체로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 인간은 어떤 형태의 음식을 먹게 될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라든가, 팔다리가 높은 출력을 내면 척추가 지탱하기 어려워 척추보호용 외골격을 사용해야 한다는 설정 같은 것은 제법 현실감이 있었다. 

다만 여러 독자들이 지적한 대로, 여러 인물들이 모두 1인칭으로 제각기 서사를 펼치는 까닭에 다소 혼란스러운 감이 있다. 결말 부분에서 서사가 급하게 진행되어 대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된 것인지를 한번에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사건의 흥미로움에 비해 ('수연'을 제외하고) 인물들의 인간적 동기와 배경이 다소 약한 느낌이다. 이를테면, 김진은 대체 왜...? 마리는 대체 어째서...? 그리고 가장 수수께끼에 둘러싸여 있는 '섭리'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이런 궁금증들이 여전히 남는데, 이건 그리 작은 의문들은 아닌 것 같다.

어째서 사건의 핵심에 등장하는 시가 이육사의 시인 것일까, 의식의 지평선을 넘어가버린다는 것은 무의식이 옮아버린다는 것을 뜻할 텐데, 그것은 혼돈 이상의 심각한 의미가 있는 일 아닐까, 인간이 타인의 무의식에 감염된다는 것은 말이다. 또한 가장 궁극적으로, 지우는 손은 왜, 기억을 지우는가...... 어떤 의도로? 이런 궁금함. 빠르게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니 조금씩 더 깊이 건드려줄 수 있는 부분들을 급하게 지나가버린 것 같아 약간 아쉽다. 

물론, 인간의 싱싱한 뇌가 가방에 담겨 바닥에 놓여 있고, 몇 페이지가 지나면 그 뇌의 주인이 곧바로 등장해 유쾌한 대화를 이어가는 식의 박진감 있는 전개를 한국 소설에서 찾아보기에는 정말 어렵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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