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전적으로 번역자인 이민경 작가님 때문이었다. "가부장제의 바깥을 들여와 소개하겠다"는 작가님의 말씀을 어딘가에서 읽었고 그게 바로 이 책이란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흥미롭고 신기했다. 그리고 더 많은 질문들이 남았다.
나는 사실, 가모장제가 가부장제의 문제점에 대한 궁극적 해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남성이 여성으로 성별이 바뀌어도 여전히 가모'장'이라는 가족의 중심점이자 권력의 집중점은 있기 때문. 그리고 나는 억압이나 권력의 남용 같은 온갖 문제들의 근원이 '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아무런 '장'도 없이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게 존중받는 가족은 있을 수 없는 것인가 하는 궁금함. 그리고 핏줄로 이어진 관계에서 생기기 마련인, 애정을 위시한 소유욕과 집착, 관심을 빙자한 통제욕구와 간섭 같은 문제들이 가부장에서 가모장제로 바뀐다고 해결될까? 하는 궁금증도 있었다. 이를테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딸들이 (여전히)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이라는 차악을 택하는가.
모쒀인들은 오직 어머니의 핏줄로만 이어지는 모계 가족을 꾸리며 아이가 태어나도 생물학적 아버지는 가족에 속하지도 않을뿐더러 아무런 의무도 권리도 책임도 갖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은 아이에 대해 여러 선택지를 갖는데 그냥 남처럼 데면데면하게 지낼 수도, 무언가를 정기적으로 챙겨 주며 자식으로 대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머니와 그 아이들, 그 아이들 중에 딸들이 낳은 아이들... 이렇게 이어지며 한 집에 모여 사는 이 모계 가족에서 가족 구성원, 특히 아이들은 행복할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 자연스레 독립을 하여 자신만의 공간에서 삶을 꾸려나가고 싶어지는 것이 본성이고 그것이 제대로 된 삶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던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 책에도 명확한 답이 드러나 있지는 않았다. 다만, 모쒀인 공동체에서는 집안의 어른이 어린아이를 대할 때에도 한 사람으로 온전히 존중하며, 남자와 여자가 서로를 동등하게 존중한다는(여성이 공동체의 중심이라 하여 남성들이 차별이나 멸시, 비하를 받지 않는다는 언급이 있었다. 남성들에게는 남성들의 역할이 있고, 가부장제 하에서의 여성들처럼 그렇게 천대받는 것은 아니라고. 그것이 무척 신기하기도 했고, 역시 여성은 남성보다 근본적으로 평등과 민주적인 관계를 지향하는 더 나은 존재들이 아닌가 싶기도.) 언급이 있었다. 이 부분은 무척 바람직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모쒀인 남성들이 대체로 마마보이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부분이 흥미로우면서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성별을 떠나, 다 큰 어른이 되어도 동반자를 구하고 집중하기보다 어머니의 집에서 어머니의 일을 돕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한 인간의 성숙이라는 관점에서는 조금 마이너스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아이를 낳고 키우는 데 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과 비용을, 대가족 구성원들이 조금씩 나누어 맡아 해결한다니. 그래서 '온몸을 갈아 생활비를 벌어오는 대가로 위세를 부리며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과 '온몸을 갈아 가사와 돌봄노동을 하느라 자기 삶을 희생하며 차별받는 사람'이 없어도 되고, 가족 내에서 모든 것이 평등한 분담으로 해결된다니. 아니 아이를 키우는 데 외할머니, 엄마, 이모들, 외삼촌들, 이렇게만 있어도 된다고? '가장' 노릇을 하는 한 명에게 경제적 부담이 집중되는 일이 없다고...? 그게 어떻게 가능해? 지금 우리 사회에선 부부가 맞벌이를 해서 모든 걸 갈아 넣고 가사와 육아는 돌보미를 써도 모두가 힘들고 모든 것이 너무나 부족한데...? ...너무나 꿈같은 얘기였다. 하지만 어쩌면 그건 모쒀인들이 문명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소규모의 자급자족 경제 하에서는 가능했으리라. 이미 문명을 체화하고, 살기 위해 막대한 규모의 비용을 필요로 하는 현대인들이 이런 시스템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마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힌트로 가부장제 가족이 아닌 새로운 공동생활 형태에 대한 더 많은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나아가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정말 바람직한 일이 되리라고 생각하기에 이 책은 충분히 가치 있다고 느꼈다. 사실 (모쒀인들이 문명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바람에 이미 전통적 공동체가 파괴되기 시작한 시점에 씌어진 탓인지 더 많고 깊은 질문들을 던지고 고찰할 수 있어 보임에도 끝부분에서 조금은 급하게 마무리된 감이 있는) 책의 본 내용보다, 이민경 작가님의 역자 후기가 내 마음에는 더 오래 남고 끌렸다. 비혼 여성 네 명으로만 이루어진 공동생활이라니. 무척 궁금하고 기대되는데, 그 체험담도 꼭 책으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많은 새로운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이 이 책을 시발점으로 해서 가부장제의 대안이 될 만한 공동체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