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수조원을 써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한국의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좀 더 논리적으로 타 국가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사람들
-한국의 불평등은 어떻게 탄생하였고 현재 어떤 모습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
-정규직과 비정규직, 청년 실업 문제, 기업별 경쟁력과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아래 세 가지를 주장한다고 하였다.
1.동아시아 사회는 벼농사 생산양식의 일부로서 형성된 가족 세대 간, 또래 세대 내부의 협업 시스템에 기원한다.
2.동아시아 국가의 존재 이유는 ‘재난 대비 및 구율’에 있다.
3.쌀, 재난, 국가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진 벼농사 체제의 유산들-생산 및 구율을 위한 조직 국가와 공동 노동 조직의 제도적 뼈대들(기술 튜닝과 연공제)을 현대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제도에 맞게 재구성해야 한다.
이 주장을 총 6장에 걸쳐 역사적 사료와 통계 자료를 이용하여 펼치고 있는데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 내용은 4~6장에서 읽을 수 있었다.
4장 벼농사 체제와 불평등의 정치심리학에서는 벼농사 사회와 밀농사 사회의 불평등 구조의 차이점을 설명하였고 동아시아의 국가 주도 생산 시스템에 포함되어 참여할 수 있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간 불평등이 발생한다고 하였다. 동아시아에서 국가권력과 결탁하거나 거기에 속한 자들이 부를 축적해 온 것은 현재 사회로 이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벼농사 체제의 유산인 토지에 대한 집착은 현대 복지 국가의 발전을 제약하고 있고 국가의 역할이 생산에는 개입하지만 분배 관련 일은 재난 대비와 구휼에 한정해 왔다고 서술했다.
그리고 개인들이 부동산을 통한 사적 안전 자산을 확보하도록 경쟁을 부추김으로써 상층 20퍼센트의 자산 소유 계급, 자산을 노후에 소비해야 하는 자산 소비 계급, 노후 소비조차 감당할 수 없는 하층 자산 빈곤 계급으로 분할되었다고 말하였다.
5장 연공제와 공정성의 위기에서는 한국의 불평등 문제의 핵심은 연공제이며 연공제의 문제점과 연공제로 인해 상위 20퍼센트의 노동자와 하위 80퍼센트 노동자들간의 임금 불평등이 나타났다고 했다.
6장 벼농사 체제의 극복에서는 이전 벼농사 국가시대에 적용했던 한시적 구휼 국가 시스템이 아닌 개인의 생애 전체를 대상으로, 모든 계층으로 확대되어야 하고 ‘조직 정체의 생산성을 정체시키는 주범’인 연공제 중심의 임금 체계를 개혁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여성들에게 더 많은 책임과 의사결정권을 부여하고 남성 위주의 구조를 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연공제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은 연차가 높은 자(50대)와 연차가 낮은 자(20대) 사이에서 발생하거나, 연공제 속에 있는 정규직과 연공제 밖의 비정규직 사이에서 발생한다고 말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아직 사라지지 않는 연공제의 문제와 직무급제가 광범위하게 확산되지 않는 이유를 현존하는 거대 노조가 반대하고 있고 숙련을 측정하는 모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연공제 철폐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하면서 끝을 맺는다.
불평등의 문제를 논한다면 한국의 급속한 국가 주도하의 경제 발전과 그 과정 속에서 축적되었던 사회 불평등이나 부의 격차를 보통 말하는데 저자는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쌀을 경작하던 시대의 긴밀한 협업 시스템,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한 벼농사를 위한 마을 공동 노동 제공, 무임 승차가 발생하지 않게끔 하는 평가 체계 등을 풀어서 설명하였다. 특히 벼농사에 공동 노동이 투입되지만 소유는 따로 하고 나의 수확량을 이웃과 비교, 질시하는 동아시아 벼농사 지역의 정주민의 경쟁 심리와 질시를 논하는 부분은 다른 책에서는 본 적 없는 내용과 주장이었다.
그리고 벼농사 체제에서 오랜 시간 축적된 ‘협업의 기술’은 이후 도시 산업화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적용되고 저자의 표현처럼 공장과 사무실에서 재탄생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기업이 채택한 연공제의 기본 가정은 벼농사에서 본 것처럼 당연히 연장자일수록 숙련도가 높아진다는 것이었다. 기업 운영에서 각 개인의 숙련도의 차이는 큰 문제가 아니었고 조직 일원으로 근무하면서 협업을 통해 숙련도는 평준화될 것이라는 가정이 연공제를 뒷받침해주었고 실제 근무하는 노동자들도 더 오래 일할수록 급여를 많이 받는 것에 거부감이 없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연공제의 문제와 불평등을 지적하고 해결책을 내놓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이와 관련한 안건을 상정하여 토론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공제가 아닌 숙련도를 평가하고 측정하여 철저히 성과 중심으로 운영하는 조직의 실제 사례들이 모여 획일적인 연공제를 개혁하려는 논의가 필요하다.
매우 심각한 청년 실업 문제, 연공제에 속하는 정규직과 그렇지 않은 비정규직 문제, 저출산의 문제 등을 그냥 두고 본다면 불평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욕조차 꺾이는 더욱 더 암울한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내가 사회과학 책을 읽는 이유는 사회 현상에 대한 저자의 주장과 뒷받침하는 논거들을 보면서 (일부 엘리트가 아닌!) 사회 구성원들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풀어낸 벼농사 생산체제와 재난 극복과 대비를 위한 국가의 역할, 연공제의 문제점과 개혁을 위한 방법과 관련한 내용들을 좀 더 알아보고 싶어진다.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2장 벼농사 생산체제와 협업-관계 자본의 탄생 중에서
동아시아 위계 조직의 기원은 군사정권도 아니고 일제의 잔재도 아니다. 바로 이 마을 단위 협업 시스템 내부에, 위계와 수평적 협업의 문화와 제도는 깊숙이 장착되어 있었다. 산업화 세대는 벼농사 체제를 농촌에서 도시로 이식한, 협업의 장인들이었다. - P157
5장 연공제와 공정성의 위기 중에서
노동조합 운동은 자본과 노동 간 분배 및 노동 내부의 분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전투적 경제주의는 노동조합을 갖고 있는 세대 네트워크의 코어 그룹에만 수혜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세대 네트워크의 역할은 ‘선도 기업의 임금 협상 결과’를, 임금 투쟁을 벌이는 다른 기업별 노조에까지 ‘확산’시키는데 있다. - P293
5장 연공제와 공정성의 위기 중에서
1987년부터 20년을, 노동운동은 연공제 임금 투쟁에 ‘몰빵’한다. 그 결과가 세계 최고의 연차에 따른 임금상승도다. 연공제는 자본이 소개했지만, 1987년 이후 노동이 움켜쥔 제도고 바뀌었다. 오늘날 연공제와 근속연수의 방어 및 연장은 전투적 노동운동을 주도한 대기업 정규직 노동조합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다. 한국의 상층 정규직 노동운동은, 따라서 ‘연공제 연대’ 라 불러도 무방하다. - P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