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 소송(der Prozess) 서평
법 , 합의된 폭력
철학자 아도 르노는 그의 글 '카프카 소묘'에서 카프카의 소설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Jeder Satz spricht: deute mich, und keiner will es dulden.(모든 문장이 '나를 해석해 보라'고 하면서, 어떤 문장도 그것을 허용하려 들지 않는다.)"
소송은 결코 친절한 소설은 아닙니다. 주인공 요제프 카가 자신의 직장에서 쪽문을 열었을 때 매 맞는 감시인들을 발견하고, 법치 국가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방식으로 처형당하는 것을 비롯하여 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이상한 사건들'이 존재합니다. 보이는 그대로 '소송'을 읽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고, 난해하다는 평을 듣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글일수록 중요한 것은, 글에 저마다의 해석을 부여해 가며 '생각하며 읽는 것' 이 아닐까요?
우선 작품 내의 우화 '법 앞에서'와 작품 전체의 관계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그러니까 법관도 법무부 공무원도 아닌, '집행자들'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사람들이 법에 가지는 이미지는 어떤가요? 제가 생각하는 법은 무척이나 딱딱하고 권위적이지만, 또 개인이 거부하지 못할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 존재입니다. 법이 지켜주는 '테두리' 안에서 안전하기 살아가기 위해서 사람들은 자신의 자유 일부를 법에게 반납하니까요. 복잡하고 머리 아프고, 또 '무섭기' 까지 한 법. 우리는 살아가며 법에 엮일 일이 없기를 바라곤 합니다. 또 법이 정해 주는 기준 안에서만 살아간다면 그 무서운 덩치와 마주할 일도 없습니다.
주인공 요제프 카는 사회를 이루는 충실한 톱니바퀴입니다. 그가 체포당한 것을 두고 책의 첫 문장에서는 '누군가 요제프 카를 중상모략한 것이 틀림없다. 그가 무슨 특별한 나쁜 짓을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체포되었기 때문이다.(문학동네, 권혁준 번역)' 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요제프 카가 체포당해 불려나가는 '소송의 세계'는 평범한 사회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낡은 건물과 세탁부, 평복을 입은 꾀죄죄한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법정은 요제프가 보아 온 삶의 풍경과 비슷합니다.
요제프 카가 살아 온 체포 전의 일상과 그가 자꾸만 불려나가는 비일상적인 소송의 세계는 다른 듯 하지만 결국 삶의 모습이라는 데에서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결국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법정이라는 것입니다. 요제프 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체포당한 것처럼, 우리도 아직 '체포' 당하지 않았을 뿐 법의 커다란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골 사람이 법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이미 법 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위의 이야기와 같은 맥락에서 '소송' 속에서 화가 티토렐리가 제시한 3가지 석방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코 일어나지 않을 '완전한 석방', 그리고 '외견상의 무죄 판결'과 '판결 지연'. 나머지 둘의 공통점은 결국 소송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삶의 과정 전체가 소송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미루거나 지연시킬 뿐이며, '얼마 동안은 고소에서 벗어나게 되지만, 고소는 그 이후에도 계속 당신의 머리 위를 떠돌다가 상부의 명령이 내려지기만 하면 즉시 효력을 나타낼 수 있다는 의미'라는 티토렐리의 말처럼 결코 삶에게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처럼 '소송'은 인간이 사회를 유지하고 안전하기 살아가기 위해서 자유를 반납하고 법을 만들었지만, 결국 그 무자비한 합리성에 의해 짓눌려지기도 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법과 법이라는 이름이 갖는 권력은 일종의 '합의된 폭력' 이며, 인간의 삶은 그 법 안에서 존속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법이라는 이름의 합의적이고, 합리적인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