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부끄러운 이야기부터 시작해 볼까 한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미술, 특히 회화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물론 가끔 전시회에 기웃거리거나, 여행을 간 나라의 미술관을 둘러보기는 했지만 정말 그뿐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미술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는 나에게 그림들은 그저 벽에 걸린 액자에 불과했다. 그랬던 내가 처음으로 미술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다소 엉뚱하게도 공연을 통해서였다.
연극 <레드>는 추상표현주의의 대가로 알려진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삶과 작품철학에서 영감을 받았다. 극중에는 괴짜 화가 로스코와 그의 젊은 조수 켄(ken)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삶과 죽음, 재현과 모방, 예술과 '예술의 아닌 것'의 경계, 그리고 현대 철학의 흐름 등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눈다. 소재가 소재이니만큼 <레드>에는 캐릭터로서 무대에 서 있는 로스코를 포함해 수많은 화가와 미술 작품이 언급된다.
로스코는 조수이자 제자인 켄에게 이렇게 성을 낸다.
"하지만, 진지함이나 의미를 열망하지 않는 세대는 렘브란트나 터너, 미켈란젤로, 마티스, 그리고 나 로스코까지 포함해서 앞서 간 선배들, 분투하고 극복해 낸 사람들의 그림자마저 밟을 자격이 없는 존재들이야!"
객석에 앉아 있던 나는 이 대사를 듣고 그야말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고전은 고전으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이유가 있다. 지금에야 낯이 익고, 익숙하다 못해 식상해져 버리기까지 한 '고전'들은, 처음 등장했을 때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마하바라타>가, <햄릿>이, <겐지 이야기>가 인류의 역사에 발자취를 남겼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19년의 세상이 만들어지기까지 미술은 어떤 기여를 했을까? 어떻게 변해 왔을까? 누가 오늘날 '미술' 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만들었을까? 자연스럽게 이런 것들이 궁금해졌다.
미술이란 무엇인가? 특히,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미술이고, 무엇이 미술이 아닌가? 서울 시내의 미술관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그림들과 조각상들이 미술이라면, 누가 이것들을 '미술'로 만드는가? 어떻게 오늘날의 미술은 이런 모습에 이르게 되었을까? 누구나 한 번씩은 떠올려 보았을 만한 질문들이지만, 동시에 누구도 섣불리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어쩌면 평생을 궁리해야 할 만한 이 질문들에 길라잡이가 되어 줄 만한 책이 있다면 바로 <현대미술의 여정>일 것이다.
<현대미술의 여정>은 그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미술이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모습이 되기까지의 200여 년의 발자취를 이야기한다. 사실 리얼리즘부터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미술까지를 책 한 권 안에 담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리얼리즘 시기의 회화'라는 주제 하나만으로도 대학의 한 학기 강의 시간을 꽉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의 여정>은 작품 하나, 작가 개개인에 대한 자세한 설명보다는 미술 사조의 흐름에 집중하고 있다. 당대의 역사, 정치적 상황, 예술가들 사이에서 오가던 담론 등을 배경으로서 짚어 준 다음, 왜 이런 시기에 이런 흐름이 나타날 수밖에 없었으며, 어떤 작가나 작품의 등장이 사조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맥락 속에서 이야기하는 식이다. 지금껏 인상주의, 초현실주의 등 달달 외우기만 했던 딱딱한 사조들이 일종의 사상적 엔진으로서 그 시대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를 깨닫게 되는 것은 정말이지 즐거운 경험이었다.
딱 하나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의 대부분이 서구 미술사에 대해서만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굉장히 최근까지 '무엇이 예술인가'를 결정하는 문화 권력 자체가 서구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포스트모던 이전까지의 미술은 지식 및 권력 체계가 '이것이 예술이다' 라고 정의한 것에 가까웠다. 미술이 혼성, 다원성을 기반으로 소수자의 목소리 등 그 동안 소외되어 왔던 것에 귀기울이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현대미술의 여정>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여기까지의 발걸음을 더듬어 왔다면, 지금부터 일어날 변화를 담아내는 것은 아마 또 다른 일이 될 것이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담아낸 다채로운 풍경과 로스코의 단색 캔버스는 전혀 닮은 점이 없어 보이지만, 마네의 <풀밭 위 식사>가 없었더라면 피카소도, 로스코도, 앤디 워홀도 없었을 터이다. 바위 틈새로부터 흐르는 물줄기 없이 커다란 강도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미술은, 그리고 역사는 그렇게 흐르고 또 '여행'한다. 우리가 지금 미술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품들도 아마 이 거대한 흐름에 보태는 하나의 물방울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말레비치는 이 땅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인간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오브제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존재인데도 학벌, 지위, 돈, 권력 등으로 그 가치가 가려진다. (중략) 만일 인간의 존재 가치를 뒤덮고 있는 오브제가 사라진다면 인간 존재만이 가치를 드러내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대상이 부재하는 세계는 인간 존재를 강하게 드러내는 세계다. 그런 의미에서 부재는 강한 존재의 확신이다.- P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