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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EHALLE
  • 아시아 건축기행
  • 강영환
  • 15,200원 (5%480)
  • 2019-02-20
  • : 65

여행을 하는 것만큼이나 여행기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기에는 작가의 삶의 궤적이 묻어난다. 같은 시기에 같은 지역을 돌아보고 오더라도, 여행을 떠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에 따라 도시의 모습은 달라진다. 여행기에는 그 사람이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대하는 시선이 그대로 담겨 있다. 천 명의 여행자가 있으면 천 명의 시선이, 또 천 개의 풍경과 천 개의 이야기가 있는 셈이다.


그런 점에서 <아시아 건축기행>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여행기다. 이 책에는 건축과, 건물에 얽힌 이야기에 대한 저자의 오랜 사랑이 묻어난다. <아시아 건축기행>은 저자가 지난 사십여 년간 발로 뛰며 보고 느낀 점을 적은 견문록인 동시에, 그가 스쳐지난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낸 '사람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미얀마, 타이, 라오스, 네팔, 부탄....... 저자가 돌아보고 온 10여개국은 우리에게 익숙한 나라이지만, 한편으로는 또 먼 이름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웃한 아시아 국가들의 역사보다는 바다 건너, 혹은 다른 대륙에 위치한 서구 국가들의 역사에 더 익숙해져 있다. 지금까지의 세계사가 철저히 서구 사학자들의 입장에서 연구되었던 탓이다. 70년대 이후 '제 1세계' 바깥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주목하는 바람이 불어 조금씩 판도가 바뀌고는 있다고 하지만, 기존에 축적된 서구중심주의적인 시선을 걷어내기는 쉽지 않다.


저자 강영환 교수는 건축, 그 중에서도 건축에 얽힌 역사를 공부해 온 사람이다. <아시아 건축 기행>이 여행기이자 역사서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흥미로운 것은 세계 곳곳의 건축물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다. 저자는 건물의 아름다움과 기교, 건축 기법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변 풍경도 놓치지 않는다. 건물 주변을 둘러싼 '오늘의 풍경',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시선을 던지는 것이다.


"타지마할 같은 환상의 걸작이 지닌 아름다움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슬럼가의 아수라장과 극단적 대비를 이룬다. 그것은 건축유산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을 요구한다. 과연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 얼마나 멋진 건축물인가를 설명하기에 앞서 누구에게 멋진 건축인가를 숙고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건물을 지었거나, 그 건물에 살았거나, 그곳에 기도를 하러 왔거나, 그 곳을 지켜내거나 혹은 얻기 위해 피흘리며 싸웠거나, 혹은 만들어진 지 수천 수백 년이 지난 지금 그 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 같은 거대한 역사적 사건에 주목하기보다는 건물을 통해 거기에 엮인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려는 시도가 참 따뜻했다. 작가의 말마따나 거대한 건축물들을 보며 그것을 지었을 이들의 땀과 고통, 삶의 단면을 기억하는 것이 아름다움에 대해 감탄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가 피라미드 앞에서 거대하고 경이로운 건축기술을 찬탄하지만, 그것을 짓는 데 동원된 히브리 노예들의 땀과 고통을 기억하지 않는 것과 같다. 또한 탁월한 예술적 조형으로 칭송받는 유럽의 중세 성당 같은 걸작품을 보면서 종교세로 착취당하던 민초들의 고통을 떠올리는 사람도 드물다."-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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