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디에 앙지외에 대하여>
......그의 어머니는 그 후 유명한 프랑스 여배우인 위게트 뒤플로가 자신을 박해한다는 망상에 시달린 끝에 그녀를 살해하려다 실패하고,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피해망상증 진단을 받고는 파리 생트-안느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여기서 그녀는 그 유명한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을 만난다. 자크 라캉과 디디에 앙지외, 정신분석학의 두 거목 사이의 기묘한 인연이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라캉은 그녀를 치료하기보다 그녀의 사례를 자기 논문에 이용하기 위해서 그녀로부터 정보를 수집하는 데 골몰했고, 그 결과 앙지외의 어머니에게 갈등과 적대감만을 남긴 채 1년간의 치료를 마치게 된다. 라캉이 '에메(Aime'e)사례로 이름붙인 이 사례는 그의 유명한 박사학위 논문인 '인격과의 관계 속에서 편집증적 정신증에 관하여'(1932)의 기초가 된다. ......
......앙지외는, 1949년에 정신분석가가 되기 위해 파리정신분석협회에 소속되어 라캉의 분석 수련생이 된다. 라캉과 자신의 어머니와의 관계는 전혀 모른 채 말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알게 되기 전부터 앙지외는 라캉과의 분석에 깊은 불만을 품었고, 라캉은 앙지외에게 자기와의 분석에서 일어난 일들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하며, 불편했던 4년간의 분석을 마치게 된다. 앙지외는 라캉과의 분석이 끝나고 나서야 자기 어머니가 라캉의 환자였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
어쨌든 앙지외는 구조주의, 언어학, 철학 등의 영역을 정신분석에 도입한 라캉주의 흐름과는 달리, 분석 받는 사람들 각각의 독특한 필요에 따라 해석의 기법과 분석 기법들을 변형하는, 실용적인 영미권의 정신분석이론들을 프랑스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또한 그는 정신분석이 대학 교육의 학문적 영역에서 토론되고 발전될 수 있도록 정신분석을 대학에 도입한 선구자들 중 한 사람으로서, 스트라스부르그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와 파리 소르본 대학교의 교수를 거쳐, 파리 10대학교 인문대학의 창설자 중 한 사람이 되어, 이 대학에 심리학과와 교육학과를 개설했다. ......
앙지외는 심각한 내적 상처들로 고통 받는 그의 내담자들을 감싸주고, 공감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 탁월한 정신분석가였고, 임상심리학과 정신분석학에서 중대한 이론적 공헌을 남긴 사상가였다. ...... 그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훌륭하게 대신한 아버지와의 친밀하고도 따뜻한 관계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그의 개인적인 아픔을 승화시켜, 보다 환자의 입장에서 치료하는 적극적인 정신 분석가가 될 수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은 앙지외가 이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어린 시절의 피부자아 형성의 중요성을 본인 스스로 실증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피부자아와 심리적 싸개>
이 책은 정신분석학과 임상심리학 분야의 필독서로서 널리 읽히고 있는 앙지외의 대표작 <Le Moi-peau(피부자아)>를 번역한 것이다. 이 책에서 디디에 앙지외는 '자아는 피부다'라는 당시로서는 전복적인 사고를 제시하고 있다. 일찍이 프로이트가 형이상학의 영역에서 '자아'를 끌어내려 신체와의 연관성 속에서 정신분석학을 창시했듯이, 앙지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피부'라는 구체적인 명칭으로 '자아'를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즉, 누군가가 나의 피부를 만지는 것을 느끼고, 내가 누군가의 피부를 만짐으로써 '자아'는 탄생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피부'는 피부 그 자체를 가리키기도 하지만 하나의 은유로서 그 의미가 확장된다. 피부가 신체를 감싸듯이, 자아가 심리 전체를 감싼다는 의미에서 앙지외는 자아를 피부에 비유하고, 그러한 특성을 강조하여 '피부자아'라는 용어와 개념을 발전시킨 것이다. 그리고 앙지외는 피부자아를 '심리적 싸개(enveloppes psychiques)'의 개념으로 확장한다. 여기서 '싸개(enveloppes)'라는 용어는 어떤 대상이나 사물을 감싸고, 포장하고, 둘러싼다는 의미에서 포장, 봉지, 봉투, 덮개 등으로도 번역될 수 있지만, 이 책의 역자인 우리는, 심리를 감싸준다는 의미에서 '싸개'라는 용어를 선택했다.
다양한 감각들로부터 비롯된 이러한 심리적 싸개들이 서로 끼워 맞추어지고 포개어져서 일종의 심리 장치의 표면으로서의 자아를 구성하고, 이 표면은 나 자신과 세상의 '경계'가 된다. 우리는 여기서 '경계'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대 정신분석학에서 '경계'는 의미 심장하다. 임상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가로서 수많은 환자들을 경험한 앙지외는 오늘날 정신분석을 받는 환자들은 프로이트가 주로 다루었던 히스테리, 강박증, 공포 신경증을 겪는 환자들이 아니라 대부분 경계선 장애와 성격장애로 고통 받고 있다는 점을 정확하게 간파해낸다. 경계선 장애의 환자들에 직면한 앙지외는 기존의 정신분석 이론으로 이들을 이해하고 치료하는데 한계를 느끼고, 새로운 이론에 기반을 둔 분석 기법의 필요성을 수용했다. 이러한 임상 겸험들이 앙지외의 피부자아 이론의 토대가 된 것이다. 경계선 장애는 말 그대로 '경계'의 결여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 앙지외는 경계선 장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경계선 장애 환자는 심리적 자아와 신체적 자아, 현실의 자아와 이상적 자아, 자기에게 소속된 것과 타인에게 소속된 것 사이의 경계들을 확신하지 못하고, 이러한 경계들이 심한 우울증과 함께 급작스럽게 변동되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또한 성감대를 다른 신체부위와 구분하지 못하거나, 기분 좋은 경험들과 고통스러운 경험들을 혼동하고, 자신이 느끼는 욕동들을 잘 식별하지 못한다. ...... 더불어 약화되거나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심리적 싸개로 인해서 자기애적인 상처를 받기 쉽고, 불쾌감이 퍼져나가는 느낌, 자신의 삶을 살고 있지 않다는 느낌, 자신의 신체와 사고가 작용하는 것을 외부에서 보는 듯한 느낌, 자신의 존재이기도 하고 동시에 자신의 존재가 아닌 어떤 것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동반하기도 한다."
(후략)
<번역을 마치고서>
우리는 쌍둥이인 다현이와 다훈이를 키우면서 이 책을 번역했다. 이 책의 번역을 통해 아기가 태어나서 생애 초기에, 자신을 돌보는 사람과 친밀하고 따뜻한 관계를 맺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끼고 알게 되었다. 그러나 유학생활의 스트레스로 인해, 실제 삶에서 우리의 아기들에게 좋은 엄마, 아빠가 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 또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때로는 좋은 엄마, 좋은 아빠가 되지 못한 적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 우리는 그때마다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다른 무엇보다 가정과 우리 아기들의 소중함을 마음에 되새기려고 노력했다. 앙지외가 우리에게 좋은 부모가 되라고 계속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리를 감싸주는 싸개는 외부를 향하는 면과 내부를 향하는 면, 이렇게 이중의 싸개로 되어 있다. 이것은 신생아를 감싸주는 두 개의 싸개, 즉 겉싸개와 속싸개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속싸개는 아기와 직접적으로 닿는 부분이고, 겉싸개는 외부로부터 아기를 보호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싸개는 서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약간의 틈이 존재한다. 우리의 가정도 이러한 겉싸개와 속싸개로 구성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알고 있는 아버지의 구조이다. 우리는 흔히 아기의 심리적, 신체적 건강은 어머니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아기를 돌보는 어머니가 얼마나 적절하게 사랑으로 아기의 욕구를 채워주느냐는 아기의 생존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하지만 그 책임이 전적으로 어머니에게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아기는 어머니의 보살핌에 의해 살아가지만, 어머니 역시 자신을 지지해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일반적으로 아버지가 그 역할을 맡는다. 앙지외가 지적한 것처럼, 여기에서 '어머니'는 아기를 낳은 혈연적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는 사람을 의미한다. 경우에 따라서 아기를 돌보아주는 보모, 양부모, 혹은 아버지, 할아버지나 할머니 등의 가족의 일원이 '어머니'가 될 수도 있다. 아기가 건강하려면, 우선 이 어머니가 건강해야 할 것이고, 어머니가 건강하려면 이 어머니를 지지해주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지지해주는 가족 또한 건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건강하려면, 이 사회에서 아버지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의 번역은 우리나라에서 그 활용가치가 충분히 자리 잡지 못한 정신분석학에 대한 학술적인 기여일 뿐만 아니라, 이런 가족의 가치와 인간 사회의 건전성에 대한 추구를 떠올리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역자들에게 무척 뜻 깊은 경험이었다.
(후략)
심리를 감싸주는 싸개는 외부를 향하는 면과 내부를 향하는 면, 이렇게 이중의 싸개로 되어 있다. 이것은 신생아를 감싸주는 두 개의 싸개, 즉 겉싸개와 속싸개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속싸개는 아기와 직접적으로 닿는 부분이고, 겉싸개는 외부로부터 아기를 보호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싸개는 서로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약간의 틈이 존재한다. 우리의 가정도 이러한 겉싸개와 속싸개로 구성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알고 있는 아버지의 구조이다.
앙지외가 지적한 것처럼, 여기에서 `어머니`는 아기를 낳은 혈연적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는 사람을 의미한다. 경우에 따라서 아기를 돌보아주는 보모, 양부모, 혹은 아버지, 할아버지나 할머니 등의 가족의 일원이 `어머니`가 될 수도 있다. 아기가 건강하려면, 우선 이 어머니가 건강해야 할 것이고, 어머니가 건강하려면 이 어머니를 지지해주는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지지해주는 가족 또한 건강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가 건강하려면, 이 사회에서 아버지가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