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 가장 쉬운 일
이얍 2025/03/24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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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
- 김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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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 - 2025-03-05
: 555
한 달 전 남서울미술관에서 ’건축의 장면‘이라는 전시를 보다가 친구들과 나는 문득 질문 하나를 떠올렸다. 왜 우리 나라는 오래된 건물을 보존하고 지역 특색을 유지하려 하지 않을까?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있다가 챗지피티에게 바로 물어봤다. 커서가 깜박이더니 답변이 돌아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만 가장 큰 이유는 부동산 개발과 투자 때문이란다. 또한 구축을 어렵게 유지보수하기보다 개발 후 지어진 신축 건물을 선호하는 풍조 때문이라 했다.
나는 그때 한국인으로서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물이 사라져가는 현상에 안타까움을 느꼈고, 한국에서 여행을 할 때마다 느낀 ‘조망이 재미없고 천편일률적인 환경‘이 슬펐다. 이 책 《아름답고 위태로운 천년의 거인들》을 읽고 나니 그때의 안타까움과 허탈함이 얼마나 일차원적이었고 인간중심적이었는지, 가슴이 아플 정도로 깨우치고 있다. 부동산 개발과 투자 가치라는 숫자 계산은 인간이 만든 인간의 건물 뿐만 아니라, 이 공간에서 같이 살고 있는 생태계 또한 거침 없이 무너뜨리고 있던 것이다. 책은 부제대로 ‘개발과 손익에 갇힌 아름드리나무 이야기’에 대해 다룬다. <한겨레21>에서 ‘나무전상서‘라는 제목으로 1년 10개월간 연재된 기사들을 엮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보호수는 무엇이고 어디에 있을까? 책에 따르면, 울릉도 도동에 있는 향나무다. 2000~2500살로 추정된다. 검색했을 때 먼저 손꼽히는 나무들은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나 부산시 기장읍에 사는 느티나무. 각각 수령이 1500년, 1300년일 것으로 짐작된다 한다. 책에서 처음 소개하는 안동 은행나무는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다음으로 크고 오래된 나무로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됐다. 700년 넘게 살았는데 임하댐 건설 문제 때문에 1990년 27억에 가까운 돈을 들여 상식(올려서 옮겨 심음)된 후로 혼자 서 있지 못한 채 사각 철골에 몸을 기대고 있다. 상식할 때 사람이 들어 올리기 위해 나무의 굵은 뿌리가 잘렸고 새로 난 뿌리의 지지력은 아직 보장하기 어려운 상황. 우여곡절의 시간을 지나 지팡이를 짚은 할아버지처럼 버티고 있는 안동 은행나무의 사연을 듣고 나니, 이 나무가 양평의 은행나무처럼 1000살을 넘겨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한국의 산림청을 비롯해 정부 산하 공원 관리소들은 생육 여건을 좋게 만든다, 인명 사고를 예방한다, 소음을 만드는 백로의 서식처나 생태교란종을 없애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 갖은 핑계를 대며 주기적인 강전정(가지치기)와 벌목을 기조로 하고 있다. 책에는 인간이 가늠도 하지 못하는 세월을 지내온 나무들이 너무 쉽게 사유화되고, 재개발 때문에 잘리거나 옮겨 심어지고, 트레일러 혹은 차도/보도블록 크기에 맞도록 강제되어 기형이 되고, 인기종에 밀려 온전하게 생육을 이어가지 못하는 사례들이 이어진다. 혹은 고양 산황산의 골프장 개발, 가덕도 동백림 터널의 신공항 개항 계획, 우범기 시장의 전주천 프로젝트 등 존폐의 위기 앞에서 동식물의 서식지 전체가 풍전등화인 상황이다. 보고 있으면 인간의 욕심이 뭔지 가슴이 답답해지고 화가 났다. 내 집 앞에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오래오래 살 수 있게 지속적인 관심을 주는 일이 가장 쉽게 ‘지속가능성’을 실천할 수 있는 일이라고, 저자가 서문에서 강조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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