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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책의 서재
  • 바늘땀
  • 데이비드 스몰
  • 15,120원 (10%840)
  • 2012-01-30
  • : 1,161

오은 시인의 SNS에서 추천글을 읽고 감상하게 된 그래픽노블. 저자 데이비드 스몰의 불행했던 유년 시절, 부모와의 애착 형성 실패와 방임, 정신 질환의 유전적 문제 등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부모의 방임으로 인해, 목에 난 혹을 뒤늦게 수술하게 된 데이비드. 데이비드의 마음 속 상흔은 수술이 남긴 바늘땀 선명한 흉터로까지 이어졌고, 그 사실이 그를 정신적으로 괴롭혔다. 부모는 여전히 그의 고통을 모른 체하고 그해 가을 그를 동부에 있는 남학교로 강제 전학시킨다. 운동과 성경 공부, 육체노동을 중시하는 학교에 질린 데이비드는 세 차례 도망을 쳤고, 학교에선 그에게 전문 상담을 권한 뒤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기에 이른다.
열다섯에 처음 받은 상담. 상담가는 그에게 사실을 직시하게 한다. 부모님은 데이비드에게 관심이 없고 그를 다른 가족처럼 사랑하지 않는다. 데이비드는 슬프지만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엄마는 이웃이자 친구인 딜런 아주머니와 성적 관계를 맺는 사이였고(엄마가 레즈비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음으로 추측된다.), 의사였던 아버지는 부비강 치료를 명목으로 어린 데이비드의 몸에 수차례 엑스선을 쏘아대곤 했는데 그게 데이비드의 혹과 발암의 원인이 되었다. 데이비드는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집을 나와 홀로 고등학교를 다닌다. 그는 외로움과 허기에 시달리면서 그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자립한 데이비드가 디트로이트 도심 단칸방에 살 때 알고 지내던 친구들의 이야기가 참 좋았다. 그들에겐 현실이었겠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평범한 외로움도 특별한 사연도 다양한 구질구질함도 예술가의 개성과 청춘의 한때로 녹였을 모습이 눈 앞에 그려졌다. 이 시절의 에피소드가 그를 어른이자 화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양분과 소재의 역할을 해주었다고 느낀다.

그의 증조할아버지는 배수관 세정제로 자살 시도를 했다가 성대가 독극물에 다 타버렸고, 증조할머니는 습관적인 도벽이 있었다. 또한 할머니는 불이 난 집을 보며 춤을 추다가 할아버지에 의해 주립 정신 병원에 끌려갔다. 어쩌면 데이비드 역시 부모의 방임에 정신을 잃고 끝내는 잘못된 길을 따라갈 수 있었으리라. ‘난 그 길을 따르지 않았다’는 문장이 적힌 장면은 필연적이었던 운명을 자각하는 동시에, 그 운명을 벗어나고야 만 자신의 주체성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그림에서 돌파구를 찾았고, 과거의 망령으로부터 헤어나오기 위해 지금까지 노력하고 있는 저자 데이비드 스몰.

이 그래픽노블을 영화 <케빈에 대하여>와 비교하는 글을 종종 보았다. 케빈이 활을 쏘지 않았다면 그리고 케빈의 입장에서 말했다면, 아마 이런 작품이 탄생하지 않았을까. 데이비드의 엄마는 확실히 ‘엄마’로서 적합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도 사연이 있었을 거라고 그 사연을 한 번 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데이비드가 첨부한 사진을 보고나니 더더욱.

가수인 패티는 회반죽 가루와 먼지에 시달리며 살았다. 위층 사람들이 다투거나 섹스를 할 때마다, 심지어 방 안을 오가기만 해도 머리 위로 뿌연 먼지가 일었다.
스탠과 레티샤는 2층 욕실에 살았다. 한때는 제대로 된 방에서 살았으나 돈이 거덜 나면서 어쩔 수 없이 생활 수준을 낮춰야 했다. 두 사람은 욕실도 훌륭한 거주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탠의 기타 연주를 살려주는 수준급 음향에, 채광도 좋아 레티샤가 자화상을 그리기에 안성맞춤이라나. 밤이 되면 우리는 초를 켜고 둘러앉아 타일 바닥에 체스를 뒀다.
빌과 지나는 바닥이 무너져 내린 꼭대기 방에 살았다. 생활은 바닥에 난 분화구 언저리에서 해결했고, 쓰레기는 구멍에 내던져 처리했다.
난 그 집 사람들이 좋았다. 사연도 행동도 하나같이 기이한 사람들이긴 했지만, 그 틈에 있을 때면 난 그나마 평범해진 기분이었고, 외로움도 덜했다.
내 집에서부터 이어지는 길을 비질하는 저 사람은 대체 누구지?
나는 그 건물이 할머니가 감금된 곳임을 깨달았다. 옛 주립 정신 병원 건물인 것이다. 그리고 아래 보이는 사람은 내 어머니로, 뒤따라올 나를 위해 길을 쓸고 있었다.
난 그 길을 따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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