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현대인은 건강에 반드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건강을 둘러싼 온갖 것에 신경을 쓰다 보니 극단적으로는 건강이 인생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된 사람도 많다. 그들의 인생은 건강에 잠식되어 있는 셈이다. 이 정도로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건강을 챙기는 일을 인간의 의무로 여기는 사람은 적지 않다. 검진을 받을 때마다 의사에게 지시를 받고, 각종 미디어에서도 ‘건강하라’는 메시지가 쏟아지는 사회에서 건강에 등을 돌리고 살기란 쉽지 않다. 현대인은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기를 바랄 뿐 아니라,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요구받는다. 어디서나 평균수명까지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현대에는 인간이 ‘쉽게 태어나지 않는 존재’가 되었지만, ‘쉽게 죽는 존재’라는 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되었고, 일상 속에서 이를 의식하기 어려워졌을 뿐이다. 여전히 현대인도 질병이나 사고로 허무하게 죽는다. 그러나 병원과 시설이 인간의 생사와 질병을 철저히 격리하고, 건강이라는 가치가 사회 구석구석까지 침투하면서 우리는 마치 건강하기만 하면 절대 죽지 않는다고 믿으며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 살아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누군가에게 친구, 연인, 지인으로 선택받아야만 하게 되었다. 내가 만나는 상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상대 역시 자신이 만나는 상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나를 만나고 싶어 할지는 알 수 없다. 자유로운 인간관계란, 만나고 싶지 않은 상대와는 만나지 않을 자유 또한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 통념을 바탕으로 행동하고 인간관계에 아무 문제가 없다면 당장은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살면서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고립되면, 사회관계자본 Social Capital19을 잃을 뿐 아니라 개인의 의무와 도덕을 지키지 못했다는 상처와 열등감, 죄책감을 느낀다.
분명 우리는 과거의 부자유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통념과 그 통념에 반했을 때 느끼는 열등감과 죄책감으로부터는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한 불안을 달래기 위해 인간 시장에서 승리하려는 이들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업로드에 여념이 없다. 겉치장에 불과한 SNS 게시물 속에서 그 불안이 비쳐 보이더라도 말이다.
SNS의 인프라, 나아가서는 인터넷의 모든 인프라는 자유로운 사고와 토론에 최적화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가진 특정 생각과 신념을 더욱 강화하거나, 특정 행동을 더욱 부추기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 결과, 이러한 인프라에 의존한 채 인터넷을 사용한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신의 극단적인 생각과 신념이 세상의 상식이자 정의라고 굳게 믿는 이들이 생겨나고, 대중매체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처럼 정치적 타협이나 논의가 불가능해진 분열된 사회가 펼쳐지고 있다.
이토록 부자유한 인터넷 환경 속에서 흔들림 없이 자신의 의지로 생각하고 사물을 인식하며, 자유롭게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