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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음의 옹호

 그래서 내 이웃들은 나를 거만하고 차갑고 못된 여자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2년 전, 동네에서 포틀럭 저녁 모임이 열렸을 때 이웃들은 우리 집 바로 뒤 파티 주최자의 집 안마당에 모여서 내가 얼마나 고상한 척하는 인간인지 힘담했다는 것이다. 그 여자는 아무하고도 얘기를 나누지 않아요. 얼마나 도도하게 구는지.
 물론, 내가 그 대화를 직접 들은 건 아니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 초대를 받았을 때("오세요! 함께 놀아요! 이웃들을 사귀어보세요!") 나는 주최자들에게 그날 밤에 선약이 있다고 말했고 (가족행사라서 빠질 수 없거든요, 정말 미안해요), 당일에는 차를 집에서 멀찌감치 세운 뒤 살그머니 집으로 들어가 거실에 숨었다. 불을 켜지 않고, 커튼을 빈틈없이 치고.
 그로부터 일 년쯤 흐른 뒤, 나는 옆집에 사는 여자와 친해졌고, 그로부터 그날 밤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나는 아연실색했다.
 "내가 고상한 척한다고 생각한다고요? 도도하게 군다고? 내가 그냥 수줍음이 많아서 그런다는 걸 왜 모르죠?"
 이웃 여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사람들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수줍음을 다른 걸로 이해하죠."
 여자는 잠시 후 덧붙였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들은 좀 헷갈려요."

 이 대화는 이후 몇 달 동안 내 머릿속에 박혀서 꼭 심하지 않지만 사라지지 않는 가려움처럼 나를 괴롭혔다. 나는 평생 수줍음을 탔다. 나는 늘 남들 앞에서 말문이 막히고 남들을 과하게 의식하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는 선생님에게 지목되어 교실 앞으로 나가서 말해야 할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10대 때는 매력적인 남자아이가 곁에 있기만 해도 두려움에 말문이 막혀서 목소리를 잃었다. 권위 있는 사람과—대학교수나 심리치료사나 아빠와—눈을 마주치면 내가 단숨에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이제는 수줍음의 확연한 증상들을(입이 마른다거나 손바닥에 땀이 난다거나)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최소한 숨기는 법을 터득했지만—그런 증상들의 핵심에 있는 기분은 극복하지 못했다. 낯선 사회적 환경에 처할때,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파티장에 들어가야 할 때, 사람들 앞에서 말해야 할 때 내가 맨 먼저 본능적으로 보이는 반응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아악! 머릿속에서 녹음테이프가 큰 소리로 돌아가기 시작하고(너무 무서워, 넌 마땅히 할 말을 찾지 못할 거야, 사람들이 널 나쁘게 평가할 거야), 머릿속 화면에 뻣뻣하고 불편한 자세로 얼굴에 어색한 미소를 가면처럼 쓴 내 모습이 등장한다.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인다. 빠져나갈 방법을 찾고, 변명을 지어내고, 차를 먼 곳에 세우고 집으로 숨어들고 싶다.
 나만 이런 것은 절대 아니다. 이 주제에 관해서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말이 옳다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은 오히려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타인과의 접촉을 차단해주고 가끔은 더 나아가 우리를 고립시키기도 하는 기술 덕분에 세상은 수줍음 많은 사람들에게 점점 더 편안한 곳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동료들, 판매원들, 은행 직원들, 심지어 친구들과도 직접적인 접촉을 피할 수 있다. 대화 기술 따위는 엿이나 먹으라지. 이제 우리는 대화 대신 인터넷, 이메일, 자동화 기계를 통해서 접촉할 수 있다. 그리고 (놀랍지 않게도) 그 결과 우리는 수줍음을 점점 더 많이 타게 된다. 자신이 만성적으로 수줍음을 탄다고 응답한 사람의 수는 지난 20년 동안 전체 인구의 40퍼센트에서 50퍼센트로 늘었다. 미국에서 선구적인 수줍음 연구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필립 짐바르도에 따르면, 과반수의 사람들은(55퍼센트) 인생의 어느 시점에 스스로를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라고 여겼던 경험이 있거나 특정 상황에(수줍음을 유발하는 인물 목록의 상위에는 연애 감정이 드는 사람과 권위자로 여겨지는 사람이 있다) 수줍음을 탄다고 말한다. 미국인 중에서 단 한 번도 수줍음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답하는 사람은 5퍼센트에 불과하다.
 수줍음을 타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나와 비슷한 수준이지만—천성적으로 내성적이고, 낯선 사회적 환경에 처하면 저절로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수줍음 척도에서 극단에 놓일 만한 사람들도 점점 더 많아지는 듯하다.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인생의 한 시점에서라도 사회공포증(대인기피증)을—고질적인 수줍음에 시도 때도 없이 시달리는 바람에 일상을 정상적으로 영위하기 힘든 경우를 말한다—경험하는 사람이 여덟 명 중 한 명 꼴이다. 그래서 수줍음은 세 번째로 흔한 정신 장애로 꼽힌다.
 나는 평생 내 머리카락을 당연시하고 산 것과 비슷하게 거의 평생 수줍음과 함께 살아왔다. 내 머리카락은 예나 지금이나 곧고 가늘다. 내가 설령 굵고 굽슬굽슬한 머리카락을 갖기를 바라더라도, 머리카락의 신들은 내게 그 대신 지금의 이 머리카락을 주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설령 자신감 있고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라더라도, 성격의 신들은(유전학자, 뇌 화학자, 환경론자로 구성된 팀인 듯하다) 나를 조용하고 내성적인 사람으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고, 끝난 이야기다.
 의식적으로 떠올린 생각이라곤 할 수 없지만, 나는 늘 남들도 그 사실을 받아들여서 내 수줍음을 나라는 사람의 핵심적이고 변치 않는 속성으로 이해해주기를 기대했다. 쟬 다그치지 마, 수줍음이 많아서 그래, 하고, 내가 새로 사귄 친구나 애인에게 엄청 적극적으로 굴거나 감정을 한껏 드러내지 않더라도, 상대가 그 사실을 언짢게 여기진 않기를 기대한다. 쟤한테 시간을 줘 그러면 쟤도 차차 풀어질 거야, 하고. 내가 옆집 여자와의 대화를 자꾸만 곱씹었던 것은 아마 이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내 수줍음이 내게만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며 40년 가까이 살아왔다. 이 문제로 불편한 사람은 나야, 자의식과 불안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은 나야, 나보다 덜 수줍어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편안하니까 그들이 나를 봐줘야 해,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줍음이 많은 사람들은 좀 헷갈린다는 이웃의 말을 듣고 보니 좀 까다로운 의문들이 떠올랐다. 수줍어하는 사람들이 비록 부지불식간이기는 해도 특수한 형태의 힘을 휘두르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 어떤 사람의 수줍음을 본인만 경험하는게 아니라 그의 주변 사람들도(수줍음을 다른 안 타든) 경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

 수줍음이 많은 사람들은 종종 암호로 말한다. 내 어머니는 대단히 과묵하고 뼛속까지 수줍어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는 엷은 온기가 있었고, 어머니의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은 다들 그 온기를 알아차리는 법을 익혔다. 어머니의 애정 표현은 분명하지도 직접적이지도 않았다.(어머니는 안아주거나 달래주거나 "사랑해" 하고 말하는 법이 없었다.) 대신 그 애정은 지극히 조용한 몸짓과 단서에서 드러났다. 슬쩍 마주친 시선에서, 한잔의 차에서, 만약 상대가 그 속에 담긴 메시지를 포착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전달될 깊은 걱정이나 자랑스러움을 실은 목소리에서. 나와 어머니가 소통하는 방식을 지켜본 제삼자라면 어머니를 차갑고 표현에 소극적이고 무심한 사람으로 묘사했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어머니의 그런 스타일이 아주 정상적인 것으로 느껴졌다. 내가 좀 커서 친구들의 집에서 자고 와도 된다고 허락받았을 때, 나는 다른 어머니들이 거리낌 없이 감정을 표현한다는 점에, 그들이 자식을 보듬고 등을 쓸어주거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준다는 점에 매번 놀랐다. 그런 행동이 생경했고, 심지어 채신없어 보였다. 이런 해석은 애정에 대한 내 기대치가 몹시 낮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또한 내가 일찍부터 내 어머니를 해독하는 법을 익혔다는것, 어머니의 과묵함에서 행간을 읽고 그로부터 온기를 포착하는 법을 익혔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내 수줍음은 물려받은 성질일 가능성이 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높다. 흰 피부나 건강한 치아 같은 육체적 특징처럼 내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성질일 것이다. 수줍음은 사람의 성격에서 가장 한결같고 오래가는 특징들 중 하나인 듯하다. 뿌리 깊은(그리고 대체로 고칠 수 없는) 생물학적 원인에서 비롯하는 성질인 듯하다. 사회 공포증은 유전되는 듯하고, 최초의 징후는 심지어 출생전부터 감지된다. (태아 때 심장박동이 빨랐던 아기는 커서 징징거리고 바스대는 아이가 되기 쉽고, 성인이 되어서는 불안증과 내향성을 갖기 쉽다.) 그리고 숫기 없는 성격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제롬 케이건은 그런 성격을 "행동학적으로 내성적인" 기질이라고 부른다) 평생 그 성격으로 살 가능성이 높다. 수줍음 연구의 할아버지 격인 케이건은 2세 아기들을 조사하여 내성적 기질과 내성적이지 않은 기질로 나눈 뒤 그 아이들이 7세가 되었을 때, 그리고 12세에서 14세 사이일 때 다시 조사했는데, 그 결과 아기 때 수줍음 많은 성격으로 평가되었던 아이들 중 75퍼센트는 7세가 되어서도 조심성 많고 진지하고 조용했고, 10대가 되어서도 그런 행동 패턴이 뚜렷했다.
 케이건은 우리 뇌에서 생물학적 두려움 반응을 일으키는 부위인 편도가 행동학적으로 내성적인 아이들에게서는 좀 더 일찍 활성화하는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웠다. 한편 또 다른 연구자들은 전두엽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전두엽은 부정적 감정을 제어하는 데 관여한다고 여겨지는 부위로, 수줍음이 많은 아이들은 대담한 아이들보다 전두엽이 더 활발하게 활동하는 듯하다.) 요즘은 또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자주 범인으로 여겨지는데, 태생적으로 내성적인 사람들은 두 물질의 혈중 농도가 여느 사람들보다 낮은 듯하다. 아마 이 물질들의 농도를 높이거나 낮추는 데 관여하는 어떤 유전자—이른바 수줍음 유전자—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성격이 본성과 양육이 결합한 결과라면—즉 우리가 타고난 속성과 우리가 태어나서 접한 환경의 결과물이라면—나는 어머니에게서 생물학적 수줍음 이외에도 더 많은 것을 물려받았을 것이다. 어머니가 자신의 내성적인 성격을 다루었던 방식, 암호에 의존했던 방식도 물려받았을 테고, 내가 어머니를 해독하는 법을 익혔듯이 남들도 나를 해독할 줄 알 테고 기꺼이 그렇게 해주리라는 기대도 물려받았을 것이다.
 내가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남자친구의 부모님이란 나로 하여금 숫기 없는 성격을 드러내게끔 만드는 사람들의 목록에서 늘 상위를 차지하는 존재였고, 늘 내게 두려움을 일으키는 존재였다.(나쁜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 그들 눈에 자식의 파트너로서 부족해 보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나는 이런 불편함과 침묵을 내가 수줍은 꼬마였을 때 가족 모임에서 행동했던 방식으로 행동함으로써,즉 착한 아이로 보이는 요령들을 부려서 착한 아이로 보이기를 기대함으로써 보완하려고 했다. 저녁 식사 중에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더라도 식전에 식탁을 차렸고, 식후에 냉큼 일어나 그릇을 치웠다. 수줍어하는 미소를 띤 채 남들의 기분을 맞춰주고자 하는 태도를 최대한 실행해 보였다. 제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보셨어요? 얼마나 착한지, 남들을 기쁘게 하려고 얼마나 애쓰는지 보셨어요?
 놀랍게도, 이 방법이 늘 통하지는 않았다. 사실은 단 한 번도 통하지 않았다. 남자친구들의 부모님은 보통 나를 무심하고, 쌀쌀맞고,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보았다. 한번은 예전 남자친구의 부모님 댁에서 열린 주말 가족 모임에 사흘이나 참석했는데, 그동안 침대를 정리하고 아침 식사를 만들고 장작까지 패면서 내 불편한 침묵을 벌충하려 애썼건만, 나중에 남자친구가 털어놓는 걸 들으니 그의 어머니는 나를 뻔뻔하리만치 무례한 사람으로 여겼다고 했다.
 수줍음이 곤란한 것은—수줍어하는 사람에게도, 그와 소통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그것이 진공 상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줍음은 사람의 성격이라는 스튜에 들어 있는 한 가지 재료일 뿐이다. 수줍음은 다른 특징들과 섞여 있고—그리고 종종 다른 특징들에 가려져 있다—이것이 수줍음이 헷갈리게 느껴지는 한 이유다. 수줍어하는 사람 본인에게는 수줍음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지배적인 성격적 특질로 느껴질 테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 사실이 늘 그렇게 분명해 보이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내 친구 그레이스는 수줍음을 무척 많이 타지만 그러면서도 아주 다정하고 호기심이 많은 성격이다. 그레이스는 이른바 ‘숫기 없는 외향적‘ 성격이다. 낯선 사회적 상황에서 스스로는 자신감이 없고 겁나겠지만 그 사실을 친근한 태도로 상대에게 이것저것 묻고 시선을 자주 마주치는 행동으로써 훌륭하게 숨긴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그레이스에게는 남들을 편하게 만드는 겉모습이 있다. 또 다른 친구 베스는 상냥하고 섬세한 모습, 우리가 수줍음 많은 사람이라고 할 때 전형적으로 떠올리는 모습을 갖고 있다. 베스는 불편한 자리에서 얼굴을 붉히고, 눈길을 아래로 깐다. 그래서 숫기 없지만 정말 착한 사람으로 보인다. 반면 내 수줍음은 전혀 다르게 드러난다. 나는 숫기 없는 것과는 별도로 기본적으로 침착한 사람이다. 그래서 스스로 침착하다고 느끼지 않는 순간에도 겉으로는 침착해 보이는 법을 터득했다. 수줍어서 말이 나오지 않고 떨리는 나를 꺼버리고 상당히 침착한 나를 내세워서 그 뒤에 숨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수줍음과 침착함은 골치 아픈 결합이다. 두 가지가 함께하면 어떤 무표정한 모습, 냉담함으로 해석되기 쉬운 딱딱한 모습이 연출된다. 내친구 샌디도—아주 예민하고 아주 수줍어하지만 체구가 당당하고 겉보기에는 약간 퉁명스럽다—비슷한 오해를 받는다. 사람들은 샌디를 무심하고 무서운 사람으로 여기는 편이고, 샌디는 이 때문에 미치려고 한다. "수줍어서 그런다는 게 뻔하구먼, 대체 왜 무서운 사람이라고 해석하는 거야?"
 해석. 물론 이것이 핵심이고, 착각에 이르는 문이다. 수줍어하는 사람들은 과묵함의 망토 뒤에 숨은 채 상대가 스스로 관계에 대해서 품는 두려움이나 편견이나 자기 인식을 투사하는 빈 화면으로 기능한다. 만약 그 상대가(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타인에게 호감을 사고 싶다고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수줍어하는 사람의 태도가 그에게는 자신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만약 그 상대가 자신이 타인의 기대에 부합하는지 혹은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수줍어하는 사람의 불편함이나 과묵함이 그에게는 자신이 지루해서 그러는 거라고 보일 수 있다. 수줍음은 오해로 통하는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수줍음을 타는 내 친구 하나는 이렇게 한마디로 요약했다. "침묵은 로르샤흐 테스트야."
 내가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해온 것은 4년 전이다. 이후 한동안은 이웃들이 내 태도에 자신들의 해석을 투사하기는커녕 나라는 존재를 인식조차 못했을 것 같다. 나는 기척을 거의 내지 않고 드나들었고, 완벽한 투명인간처럼 수줍어하는 삶을 살았다. 조용한 여자분이네, 이웃들이 이렇게 말했을 수는 있다. 혼자 있길 좋아하나 봐.
내가 도도한 인간이라는 평판은 문제의 파티 후에야 나타난 듯한데, 그 파티는 내 두 번째 책인 《드링킹》이 출간된 직후에 열렸다. 《드링킹》은 잘 팔렸고, 베스트셀러 목록에 상당 기간 올라 있었고, 기사도 많이 났다. 그래서 그해 여름에 이웃들은 내가 촬영팀을 데리고 집을 드나드는 모습을 가끔 봤을 텐데, 내게 그 상황은 엄청나게 부끄러운 상황이었다. 만약 그때 누가 보고 있는 걸 보면, 나는 살짝 찡그리고 시선을 돌렸다. 내 내면의 감각은 나 자신에게는 그 이상 명확할 수 없었다. 나는 남들의 관심이 불편해서 달리 어쩔 줄 모르고 수줍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창피해서 찡그린 딱딱한 얼굴이 외면적으로는 전혀 다르게 읽혔다. 책이 출간되기 전에는 눈에 띄지 않거나 간과하기 쉬웠을 듯한 내 과묵함이 이제는 유명함, 전문성, 성공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이 투사되는 빈 화면이 되었다. 나는 남을 의식하거나 불안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콧대 높고 차가운 사람으로 보이게 되었다. 자기가 남들보다 잘난 줄 아는 베스트셀러 작가, 이웃들의 저녁 모임에 납실 마음 따위는 없는 사람으로.

 그렇지만 내가 지금 그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수줍음에 익숙하기는 해도, 나라고 해서 수줍음을 타지 않는 여느 사람들보다 타인의 수줍음을 더 잘 읽어내거나 더 잘 참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나보다 더 숫기 없는 사람과 대화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 젊은 여성은 사교의 자리가 불편해서 몸을 꼬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질문을 던지면—어떤 일을 하시나요? 어디 사세요?—그는 한참 대답할 말을 찾다가 최대한 짧게 대답하고는(음...... 아직 학생이에요) 다시 바닥을 내려다보고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꼬먼서 내 반응을 기다렸다. 나는 그와의 대화가 괴로웠다. 그가 받는 스트레스가 내게도 너무 익숙한 것이기 때문이었지만 그보다 좀 더 복잡한 감정, 짜증이랄까 심지어 분개심이라고도할 만한 감정 때문이기도 했다. 어색한 침묵이라면 나도 익히 알지만—그게 뭔지 알고, 그걸 두려워하고, 그걸 미워한다—내가 그 침묵을 메우는 사람이 되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그리고 침묵을 메우는 데는 한가한 잡담을 나누든 진심으로 관계를 맺는 대화를 나누든 노력이 든다. 나는 그 젊은 여성의 어깨를 움켜쥐고 흔들면서 이렇게 말하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이봐요, 이런 상황이 힘들다는 건 알아요, 나도 수줍음이 많으니까, 하지만 당신도 내가 이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줘야 해요.
 냉혹한 진실인바, 수줍음을 타는 사람들은 함께 있기가 힘들 수 있다. 스스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을 도맡게끔, 관계 맺기에 선행하는 지루한 일을 도맡게끔 만든다. 이 젊은 여성이 아직 몰랐던 사실은—나도 이제야 조금 알게 된 사실인데—그가 수줍음 탓에 스스로는 남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무력한 존재라고 느낄 테지만 실제로는 적잖은 힘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남들과 한방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어떤 감정을 일으킬 능력이 있다. 스스로는 남들에게 주목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느끼거나 남들을 두려워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에게는 또한 선택지가 있다. 입을 열 수도 있고, 아니면 침묵을 지킬 수도 있다. 남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도 있고, 아니면 닫힌 채로 있을 수도 있다. 관계 맺기에 필요한 일을 얼마간 맡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 일을 타인의 손에 완전히 맡길 수도 있다.
 수줍음 많은 사람들을 닦달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나는 우리 문화가 수줍음에 곧잘 동반되는 예민한 감수성을 인정하고 높이 사는 문화이기를 바란다. 사교적이고 자신만만한 성격에만 지속적으로 보상하는 문화가 아니었으면 하고 바란다. 수줍음 많은 사람들에게 자력으로 구제해야 한다고, 더 노력하라고, 그런 것쯤은 극복하라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수줍음을 타는 것, 자신이 과한 자의식에 휘둘리며 그 탓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고 느끼며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내 친구 하나는 이것을 "만성적 감정 변비" 상태라고, 그다지 은근하지 않게 표현했다.) 수줍음 타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다. 수줍음이 자신으로부터 많은 기회를 앗아간다는 사실, 수줍음 때문에 파티장에 들어가거나 동료들 앞에서 발표하거나 하는 간단하기 짝이 없는 일들마저 어렵게 느껴진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수줍음으로부터 개인의 책임에 관하여, 우리가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지난 여름에 나는 점심마다 개를 데리고 산책하면서 어느 은퇴자 부부가 사는 집을 지나갔다. 헬렌과 프랭크라고, 열성적으로 정원을 가꾸는 부부다. 나는 그 집을 지나갈 때마다 그들에게 뭐든지 친근하고 상냥한 말을 건네겠다고 다짐했다. 전통적인 좋은 이웃의 이미지를 좀 드러냄으로써 콧대 높은 속물이라는 평판을 희석하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부부가 키운 장미를 칭찬했고, 부부가 기르는 고양이들에 대해 물었고, 어색한 순간을 이거내면서, 날씨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름이 끝날 무렵에는 일주일간 뉴햄프셔에 갔다가 돌아온 뒤에 그들에게 블루베리 파이를 선물했다. 그들은 차츰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얼마 전, 프랭크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언제 자기네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자고 초대했다. 대답할 말을 찾느라 뜸 들이면서 나는 겉모습과 영향의 문제, 개인의 힘과 선택의 문제를 곱씹었다. 이건 내가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야, 수줍음의 동굴을 나가서 이웃과 어울리려고 애써볼 기회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잡담을 나눠야 한다는 사실과 내가 탐내는 유대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놓고 저울질해보았다. 내가 평생 불안에 지배당한 채 살아왔다는 사실, 두려움을 안고 사는 것이 삶을 제약한다는 사실, 변화란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내 입에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저야 정말 좋죠. 초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함께 날짜와 시간을 정한 뒤, 나는 프랭크에게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고 문을 닫았다. 내가 용감하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훌륭한 일을 해냈다는 것, 두려움과 고독 대신 위험과 친목에 표를 던졌다는 것을 나도 알았다. 그리고 약속한 날이 오자(잊지 말길 바란다. 변화는 어렵다! 생물학이 운명이다!), 나는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심한 독감에 걸려서 몸져누웠다.
 나는 정말 아팠다. 혹은 아픈 척했을지도 모른다.(요즘 독감이 도나 봐요, 저도 갑자기 걸렸지 뭐예요!) 아무튼 그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아주아주 좋았다.

(1999년)-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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