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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너머
 

11월은 묘한달이다.무채색에 가깝다.특징없는 달,그 흔한 공휴일도 하나 없는 무미건조..새벽에 문득 일찍 일어나 라디오에서 아나운서 멘트 하나없이,건조한 경음악을 2시간 내내 듣는 느낌이다.한없이 명징해지는 느낌,인디언들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 했던가.새벽의 공복에 느끼는 허허로움,오롯한 홀로움.


11월에 듣는 자우림 6집은,한마디로 그러한 허허로움에 더욱더 불을 당기는(?) 멜랑꼴리한 음반이다.혹시나 그 허허로움을,이 음반을 통해 위무받겠다는 이들에겐 독약이 될지도.하지만 짜릿한 정면대결을 원하는 분들에겐 이렇게 손을,☞☜ 내밀고 싶다.


그저께 가까운 산사에 들렀다.오랜만에 휴대용 CDP도 함께.산사에서 김윤아의 흐느적거리는 음성과 맑고 청아한 풍경소리가 겹쳐지면서,그로데스크하면서도 묘한,느낌을 받았다.서늘했다.한없는 침잠(沈潛)..


"흐린 봄철 어느 오후의 무거운 일기(日氣)처럼, 그만한 우울이 또한 필요하다.세상을 속지 않고 걸어가기 위하여 나는 담배를 끄고 누구에게든지 신경질을 피우고 싶다."

                                     

                                                                    - 김수영 <바뀌어진 지평선(地平線)> 中에서.


돌아오는 길에는,도시 한복판을 거닐며 다시금 리플레이.그 속에서 나는 ‘청춘’을 생각했다.여전히 정답표없는 문제들속에서 헤메이는,어디로 가야할 지 알 수 없지만 어디로든 가야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휘둘림에 귀얇은,고독을 이기기위해 고독에 익숙해지려던 모습들,외우다싶이 내던진 첫사랑의 수줍던 고백,같은..


김윤아는 한없이 절제 되어 있으면서도,저 깊은 곳에서 감정을 끌어올린다.분명 성숙해졌다.짝수음반을 감안해도,이번 음반은 확실히 좋다.중독성이 있다.긴 호흡이 좋다.그 사이 사이 틈속에서,살아가는 일이 이미 상처가 된 사람들의,내밀한 감정의 섬세한 행간들을 읽어낼 수 있었다.2번째 트랙의 가사처럼 정말로 아,그리움에 이 가슴이 저려온다.


♬Loving Memory♬

 

아, 그리움에 이 가슴이 저려오네 아, 다시 못 올 사랑의 기억이여 아, 외로움은 겨울의 비처럼 차네 아, 이 가슴은 비에 젖어 우네 사람은 왜 만나게 되고 왜 머물지 못하는가 그대와 나는 서로의 빛나는 상흔이 되었네 사람은 왜 사랑을 하고 왜 사랑을 지우는가 그대는 나의 어두운 그림자, 눈부신 신기루 봄에 피는 꽃들은 봄이 가기 전에 시들어버리고 사랑은 채 피우기도 전에 사라지네 아, 그러나 난 그대를 떠나야 하네 아, 이 사랑은 여기서 끝나네 아, 외로움은 겨울의 비처럼 차네 아,희미해진 사랑의 기억이여 아,외로워라 아,외로워라


오랜만에 윤대녕의 ‘은어낚시통신’을 꺼내 다시 읽었다.청춘의 흔적,청춘의 문장들에 밑줄이 조용히 그어져 있었다.


"사막에서 사는사람.“그 말이 나를 겨냥한 것임을 깨달은 것은 그녀의 얼굴을 히뜩 올려다 본 다음이었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얼굴은 창백하게 굳어 있었다."상처에 중독된 사람."그녀는 줄곧 히끄무레한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그렇게 뇌까렸다. 나는 싸늘히 식은 채로 그녀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감정에 나약한 척하면서 사실은 무모하고 비정한 사람,터미네이터."  "......" "무서운사람."


청춘은 절망이다,허나 진정한 청춘은 절망을 짓밟고 일어나는 것이라 했던가.죽을만큼 고통스러운 일을,죽지 않을 만큼 웃어넘기는 사람들속에서..나는 청춘의 끄트머리쯤 왔을까.김윤아의 목소리가 유난히 공허하게 느껴지는,멜랑꼴리한 11월의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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