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와 편도체]
얼버무린 결론은 해마에는 닿을 수 없다.
아주
일상적인 소재와 장소들을 활용하며 마치 가까운 누군가의 이야기인 양 잘 포장해 두었다. 해마와 편도체의
대담을 쭉 따라가며 구성되는 이야기는 흥미로운 한편 (좋은 의미로) 찝찝하기도
하다. 다만 대사를 쓰는 방식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 나이대에
맞지 않는 표현과 어투는 두 사람이 정말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인지, 소설에서 상정한 ‘배역’에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 그런
어색함을 느끼는 매 순간마다 일상성으로 확보한 몰입감은 신기루처럼 흩어져 버린다.
이야기의
구성으로 넘어가서, 후반부의 순간적인 서스펜스로 넘어가기 직전까지가 빈약하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점프를 느끼게 만든다. 작가가 하고싶은 이야기들을
하며 쌓아 놓은 미장센을 후반부에 활용하며 이야기를 갈무리하는데, 이 갈무리가 시작되는 지점이 불필요하게
선명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법인은 인격이다.
[상속]
어여쁜 문장을 관망하고 싶은 거라면.
글
쓰는 사람이나 환경을 배경에 세워 어설픈 고민을 늘어놓는 것 만으론 진부함을 벗어날 수 없다. 소설
쓰는 사람들이 소설에 상을 주는 거라 소설 쓰는 소설을 보고 문학인 셈 치고 상 준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구성을
뜯어보지 않아도 거진 전적으로 불완전하나 상속이라는 제목과 그 비유만은 선명하게 음각되어 있다는 게 이 작품의 유일한 희망이다. 따라서 이 소설을 읽는 누군가는 자기의 경험이나 생각을 바탕으로 이 빈틈투성이 작품을 칠할 지도 모른다. 거기에 감명을 받을 수도 있다. 다만 그것은 독자가 채워낸 것이다. 플랫하게 이 소설 안에 있는 문장만으로 본다면 빈약하다.
거기에
더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원동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게 한국 문단의 지금이라면 마음이 조금 쓰리다. 문장은 늘어져 이어가지만 읽게 만들 힘은 그 어떤 문장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부분은 파편적이고 전체는 이미지를 완성하기에 한없이 부족하다. 다만 대사는 볼 만하다. 작중 여성 인물만 등장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상인]
이상과 현실 사이 어설픈 언저리가 저리다.
작품은
90년대 대학가를 회상하며, 혁명을 말하는 젊은 이상론자, 어른이 되지 못한 피터팬을 조망한다. 소설을 평하기 위해 본다면
한 걸음 떨어져서 봐야 마땅하겠지만 이 작품은 조금 들어가서 읽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조금 들어가게
읽혔다.
정상인
선배라는 인물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작가는 책의 텍스트를 끌어와 시대적 현실상을 포섭하고 자기의
언어를 덧붙여 소시민으로 ‘전락해버린’ 이상주의자의 이미지를
완성한다. 그러한 인물을 앞에 두고 중년이 되어버린, 서술의
초점이 되는 주영은 캠으로 돌아가 다시 이상론과 마주한다.
이
작품이 어떠했는지 말하려면 동 작가의 ‘상속’과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상속은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내던져진 소설이다.
이미지의 형태는 잡아 놓았지만 마치 유행하는 컬러링 북 마냥 군데군데 빈 칸을 남겼다. 정상인은
그와 달리 이미지를 완결한다. 소설은 끝이 의문이든 결론이든 일종의 완결성을 갖춰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상인은 완성되었고 이미지를 칠한 물감도 금방이라도 액자에 걸어도 좋을 만큼 잘 말랐다.
다만
불필요한 부분이 걸린다. 소설은 정교한 기계장치처럼 반드시 필요한 구성요소만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기계장치를 분해하다 보면 어느새 우스꽝스러운 장난이 튀어나오는, 그런 부류의 위트가 필요한 것이 바로 소설이고, 예술이다. 하지만 더러 의미도 재미도 요소도 아닌 불협화음이 튀어나오는 소설이 있다. 이
작품에서도 첫 페이지의 비혼은 그런 부류의 사족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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