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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음이님의 서재
  •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 이득수
  • 14,400원 (10%800)
  • 2020-06-04
  • : 21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끊어야 하는 것은 술, 담배, 3백(3白/ 밀가루, 소금, 설탕)......등 다양하겠지만, 내가 요즘 유독 끊고 싶은 것을 꼽으면, 바로 ‘글’이다. 왜냐하면 하는 말과 쓰는 글이 삶과 일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자괴감 때문이다. 마치 ‘고작 그렇게만 살다 죽어’라는 악마의 저주가 덧씌워진 삶의 굴레에 포박당한 듯 늘 제자리. 그래서 ‘헛된 희망을 품는 글 따위 집어치우자’고 결심하고 또 작심한 나날이 하루 또 하루....... 그러다 이득수 시인의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를 만났다.

 

 늙고 병든 노(老)시인이 바라보는 아름다운 세상은 아주 낮거나 혹은 아주 높다. 작은 풀과 꽃, 각종 산나물, 흙담장, 엉성한 허수아비, 버려진 삽 등에 따듯한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저녁노을, 구름, 고추잠자리, 갈까마귀 등을 보며 탄복하기도 한다. 이는 아마도 자연과 어우러져 살면서 먼저 저 멀리 떠나보낸 이들을 되새기며 그리워할 수 있고, 언젠가 자신에게도 찾아올 작별의 순간이 아득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리라.


 오늘은 해가 지면 공연히 슬퍼질 것 같다. 환각과 환청이 아롱진 그 어지러운 우울 속에서 제 손으로 귀를 잘라도 끝끝내 못다 푼 절망 같은 목숨을 마침내 끊어버린 외로운 사내 반 고흐의 환상과 잔영을 위해 울어주고 싶다. 또 커다란 생선 대신 거대한 절망을 낚아 작살 던지듯 제 심장에 라이플을 쏘아버린 텁석부리 사내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위해서도 울고 달이 뜰 때쯤이면 장미가시에 손가락을 찔려 죽은 가녀린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를 위해서도 울어봐야지.- 제 3부 p.131 ‘또 한 번 코스모스’ 중에서


 책 속 유려한 많은 문장들 속에서 유독 이 부분이 기억에 남았는데, 노시인의 슬픔과 울음이 전해주는 잔잔한 위로가 나의 가슴 속에 스며든 까닭이다.

 

...모든 걸 다 버려야 한다. 그러나 아직은 아무 것도 버리지 못하고 벌레 먹은 물푸레나무의 이파리처럼 미련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다.

 나는 아직 이 숲의 눈빛이 되기에 멀었나 보다, 골짜기를 돌아 나오는 메아리의 능선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도 저녁하늘을 물들이는 노을이 되기에도. 얼마나 더 세월이 흘러야 내가 바람이 될까? 나는 언제쯤 강물이 될까? - 에필로그 중에서

 

 늘그막에 인생을 노래하는 이득수 시인의 포토 에세이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통해서 바람처럼 강물처럼 연연하지 않고 흘러가는 힘을 엿보았다. 가끔씩 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을 이부자리에 뉘면 서러운 감정에 휩싸이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놓아야 할 것, 버려야 할 것들을 떠올리면서 이런 의연한 삶의 마음가짐을 되새겨봐야지. 하기야, 글을 끊겠다고 다짐하면 뭐하나, 이렇게 또 서평을 쓰고 있는 나인데.......그래, 어서 어서 흘러라, 나의 인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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