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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티넘에서벗어날수없는사람
  • 열일곱의 사계
  • 설재인
  • 13,500원 (10%750)
  • 2025-06-24
  • : 581

 





 “멋진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도저히 떠오른 게 없어서 아민은 그만 아무 말이나 내뱉고 말았다.

 약속해.

 놀라운 사실은, 그 말을 들은 누구도 무얼 약속해야 하는지 되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227쪽)


 책을 덮고 한동안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각에 휩싸였다. 숨이 턱 막히는 것 같기도 하고 머릿속이 어지럽게 엉켜 정리가 되지 않는 기분. 이 오묘한 감각이야말로 이 소설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일 것이다.

 이 책은 열일곱 살의 자퇴생 '아민'을 중심으로 네 명의 인물이 사계절처럼 얽히며 흘러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칼로 자르듯 나뉘지 않고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듯, 이들의 관계 또한 하나의 조밀한 세계를 이룬다.

 책을 읽는 내내 숨이 막힐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소설은 빈틈이 없다. 잠시 쉬어갈 여백 없이, 지문과 대사가 쉴 새 없이 몰아친다. 작가는 왜 이런 방식을 택했을까? 이내 그 이유를 깨달았다. 주인공 아민의 삶에 단 한순간도 쉴 틈이 없기 때문이다. 오직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만 하는 아민. 그의 절박한 상황이 책의 모든 구성 요소를 빈틈없이 다닥다닥 붙여놓은 것이다.

 아민의 끈질기고 맹목적인 생존 욕구는 타인의 세상을 돌아볼 여력을 앗아간다. 자연히 다른 사람들 역시 아민의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의 모습에서 불편함과 거부감을 느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아민의 탓일까? 이 책에서 가장 마음 아팠던 지점은 아민을 지지하고 이해해 줄 '온전한 어른'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른들은 열일곱 살 아민을 동등한 성인으로 취급하며 명확한 이유 없이 적대감을 보이거나 그의 가난마저 멋대로 재단하고 의심한다.

 

 “나를 속이기 위해 자네의 가난을 과장한 것이었나? 그렇지 않다면 왜 돈 잘 주는 좋은 과외 자리를 마다하고 스스로 몸값을 낮추는 짓을 하는 거지?” (165쪽)

 

 이렇듯 극단적으로 현실적인 어른들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온기를 건네는 존재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아민이 가르쳤던 학생들이었다. 어른들이 아민을 코너로 몰아붙일 때, 아이들은 그에게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어쩌면 이 소설의 진짜 주인공은 아민 한 명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민과 다른 네 명의 아이들이 서로에게 봄이 되어 품어주고, 여름이 되어 추위를 녹이고, 가을이 되어 깨닫게 하고, 겨울이 되어 함께 버텨내는 그 '관계' 자체가, 아이들끼리 지켜낸 그 '세계'가 진짜 주인공일 것이다.

 

 “지금 그 애를 맡게 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죽지 않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226쪽)


 유정, 희준, 성현, 지원. 이 네 명의 인물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민의 삶에 깊숙이 스며든다. 누군가는 아민의 가치관을 뒤흔들고, 누군가는 처음으로 이유 없는 사랑을 알려주며, 누군가는 굳게 닫혔던 아민의 세계를 바깥으로 연결시키고 누군가는 당연하게 여겼던 생각에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아민은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 상호작용의 결과는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하시길 바란다. 

 개인적으로 너무도 냉혹한 현실에 부딪히고 상처받는 아민의 모습이 무척 안쓰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적인 어른이 아닌 현실의 어른들을 미리 보여주는 것 또한 청소년들에게 꼭 필요한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냥 따뜻하고 희망적인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냉혹한 삶 속에서도 실낱같은 빛을 따라가 보고 싶은 이들, 인물들의 관계성에 깊이 주목하는 이들, 그리고 어른들이 말하는 세상이 두려운 청소년들이라면, 이 입체적인 세계를 꼭 한번 기꺼이 길을 잃고, 마침내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경험을 꼭 한 번 해보길 추천한다.

 

해당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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