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다이빙, 고카트, 사격, 그리고 연극—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인생들이 아직 한참 남아 있다.–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인스타그램 피드를 스치듯 넘기다가, 이 책의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도무지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이라니. ‘사교 클럽’이라는 단어도 흥미로웠지만, “웬만해선 죽을 수 없다”라는 말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생각했다. 은퇴한 첩보 요원이 나오는 이야기일까? 아니면, 온갖 불운을 피해 가는 행운의 주인공일까? 기대를 안고 책을 펼쳤다.
내가 상상한 인물들은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책장을 덮을 수 없었다. 이야기는 한국이 아닌 외국의 작은 동네를 배경으로 한다. 처음엔 ‘노인’이라는 익숙한 이미지로 등장하는 인물들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각자의 삶을 품은 구체적인 인물로 변화해 간다. 어디선가 마주쳤을 법한 얼굴이지만, 동시에 누구도 닮지 않은 사람들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들이 ‘등장한다’가 아니라 ‘등장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야기의 중심은 만델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노인 사교 클럽이다. 사교 클럽이 열린 첫날에 인물들은 단호하게 말한다. 이 이야기는 ‘차를 마시고 빙고 게임을 하고 뜨개질을 하는 다정한 노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그런 불쾌하고 상투적인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말이다. 클럽의 운영자인 리디아는 처음에 전형적인 교양 활동을 기대했지만, 모인 이들은 그녀의 상상을 아주 시원하게 깨버린다. “무슨 활동을 해보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스카이다이빙, 고카트 레이싱, 수중 발레, 사격 연습 같은 것들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노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생기 넘치는 대답이다. 그런데 그렇게 대답하지 못할 이유가 또 어디 있겠는가. 그들 안에는 여전히 청소년, 청년, 중년의 자신이 남아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겉모습만 보고 너무 쉽게 단정 짓는다. ‘노인에게는 낡은 시간만 있을 뿐이야. 모두 지나간 시간이겠지.’ 이 이야기를 읽으면 그 말이 얼마나 부끄러운 생각이었는지 알게 된다. 낡은 시간이라니! 우리는 모두 흐르는 시간 위에 존재하고 있다. 아주 공평하게 말이다.
책을 읽고 나서 ‘대프니’라는 인물이 기억에 오래 남았다. 그녀는 “요즘 젊은이들은 모든 정보를 손쉽게 얻는다”고 말하며, 자신은 젊었을 적 도서관에서 마이크로피시를 뒤지고, 정보원을 포섭하고, 열차 안에서도 정보를 얻기 위해 애썼다고 회고한다. 읽기 전 떠올렸던 은퇴한 첩보 요원의 이미지가 겹치며 대프니가 더욱 궁금해졌다.
오랫동안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을 하지 않은 것 같은 대프니는 사람들 속에 섞이기 위해 서툴게나마 계속 노력한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지만 이야기가 흐르면서 점점 마음을 여는 방법을 알게 된다. 누군가가 도움을 청하고 또 누군가의 부탁을 받아들이는 존재로 변해간다. 이 변화는 ‘성장’이란 것이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했다.
우리는 흔히 ‘나이를 먹는다고 모두 어른이 되는 건 아니야’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나이가 들면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원래 모순적인 존재지만, 삶에 대한 태도와 생각까지 그렇게 모순적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청소년 미혼부인 ‘지기’의 이야기도 내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지기는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잘생겨 친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아이였다. 그러나 파티 날,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는 그 책임을 떠안고, 아이 ‘케일리’를 홀로 키운다. 반면 아이의 친모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복귀하고 친구들과 웃으며 지내며 SNS에 사진을 올린다. 지기는 그 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느끼지만 그 감정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는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묵묵히 감당할 뿐이다. 그런 태도는 자신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난다. 지기는 자신의 미래가 당연히 케일리를 위해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성장하고 나아가는 삶을 상상하다가도 이내 그 꿈을 접는다. 아이를 돌보느라 자신의 가능성조차 지워가는 지기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 그에게 과외를 제안하는 선생님이 등장했을 때, 무척 고맙고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지기는 정말 대견하면서도 마음 아픈 인물이었다.
왜 이 모든 책임을 혼자서 감당해야만 할까. 왜 이른 출산과 양육의 문제에서, 대부분의 책임을 한쪽이 감당하는 모습이 더 많이 보이는 걸까. 그런 생각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트’. 그는 무대에서 오래 활동한 단역 배우다. 연기를 여전히 사랑하지만, 나이가 들며 점점 기회를 잃는다.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음에도 사회는 ‘하지 말아야 할 나이’라며 조용히 선을 긋는다. 그의 모습은 단지 한 인물의 문제로만 보이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고령화 사회의 현실과 자꾸만 외면하게 되는 감정들이 아트 안에 담겨 있었다.
아트는 도벽이 있는 인물이지만, 복지관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연말 연극을 준비하며 아이들과 함께 무대를 만들고 복지관을 지키기 위해 진심을 다하기도 한다. 그러나 연극 당일, 그동안 자신이 물건을 훔쳤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가장 진심이었던 무대 위에서 가장 깊은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아트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곁엔 오랜 친구 윌리엄이 있고, 언제나 당당하고 생기 넘치는 대프니가 있다. (물론 대프니는 다소 신경질적인 면도 있지만 이제는 그런 면조차도 그녀의 매력처럼 느껴진다.)
이 책은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지만, 동시에 이 사회가 껴안고 있는 현실과 문제들을 날카롭지 않은 방식으로 보여준다. 인물들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보게 만들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무거워지거나 어두워지지도 않는다. 이게 이 책이 가진 장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른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졌던 한 사람의 외로움과 용기에 대해 말한다. 나이가 많든 적든 우리는 모두 동등한 인간임을 깨닫게 한다. 그것도 아주 쾌활하고 기발한 장면들로 말이다. 각각의 인물들은 책임과 회복, 성장의 방식에 대하여 질문하게 만든다.
이 책을 하나의 인물로 만들어 본다면, 자전거를 타는 노인일지도 모른다. 느릿하게 가 아닌 아주 빠르게 자전거를 타며, 앞 바구니에는 계란후라이꽃을(개망초) 가득 담고, 뒤에는 색색깔의 풍선들을 잔뜩 묶어두었을 것 같다. 멋있는 선글라스를 모조 보석 반지를 낀 손으로 내리며 물어볼 것 같다. 아주 장난스러운 어조로 “당신의 삶은 어떤가요?”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까? 그러고는 옆으로 맨 카메라가 떨어질 듯이 흔들려도 신경 쓰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것 같다.
요즘 당신의 삶은 어떤가. 잘 흘러가고 있나? 잘 흘러가게 행동하고 있나? 하지만 못 흘러가고 있거나 고여있어도 괜찮다. 이 책을 펼치면 대프니, 지기, 아트가 자신의 삶을 보여줄 것이다. 그리고 책을 덮었을 때 당신은 어떤 형태로든 변화해 있을 것이 분명하다. 대프니의 모조 보석 팔찌를 걸치거나 케일라를 품에 안거나 연극 대본을 손에 쥐거나, 늙은 개를 옆에 두거나. 그 형태가 무엇이든,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은 이미 그들 곁에 서 있을 것이다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