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를 겪고 나는 변했다.
사진을 대하는 자세도 근본부터 바뀌었다.
일상생활은 물론 사진가로서 가장 신뢰하던 ‘보다‘라는 행위에 의문을 품었다. 아니, 의문을 품었다기보다는 ‘보다‘ 라는 행위에 얼마나 구멍이 많은지 통감했다는 게 적절하겠다.
보청기를 끼지 않기 시작한 스무 살 이래, 세계를 오로지 보면서 살아왔는데 실은 아무것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보이는 게 전부라는 생각으로 그 배후에 있는 수많은 것들을 무시한 셈이었다. 내가 보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사실 ‘눈에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표면을 눈이 훑은 것에 불과하다.- P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