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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갈매님의 서재
  • 오, 사랑
  • 조우리
  • 10,800원 (10%600)
  • 2020-08-27
  • : 1,358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음에 정원庭園을 가진 사람들

- 조우리, 『오, 사랑』을 읽고

 

오사랑(18세)과 이솔(19세)은 첫눈에 서로를 알아 보았을 것이다. 둘은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는, 외로운 사람이니까. 솔이는 중학교 때 자기가 이모라고 부르던 여자와 엄마가 키스하는 장면을 보고는 아빠에게 말한다. 이후, 엄마는 솔과 아빠를 영영 떠나 버리고, 아빠는 솔이와 같이 살기는 하지만, 솔이를 외면하고 미워한다. 사랑이는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자기 주변에 어떤 친구도 남아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학교에서 ‘이상한 애’ ‘오타쿠’ ‘일본 애니빠’로 낙인 찍혀 있기 때문이었다.(p148)” 사랑이도 솔이도 혼자인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외로운 아이 둘이 붙어다니자 학교에서는 금세 ‘레즈비언 커플’이라고 소문이 난다. 소문은 그저 공기에만 떠도는 것이 아니었다. “레즈비언 바이러스 옮으면 어떡해?” 구체적인 말로 사람을 공격하고 사람에게 폭력을 가한다. 둘은 한국을 떠날 궁리를 하다가, 사랑이의 친아빠가 영국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랑과 솔은 영국으로 떠난다.

 

사랑이의 삶은 어느날 ‘보통’을 훌쩍 뛰어넘어 버렸다. 레즈비언, 왕따, 영국 가출, 두 명의 아빠, 이런 것들이 사랑이를 설명하는 말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랑이의 엄마는 딸에게 말하고는 했었다. “공부 열심히 하라고 안 하잖아. 그냥 보통으로만 다니다 졸업해.”

 

보통의 삶을 사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지만, 보통의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 되기도 한다. 보통의 경계가 나의 견해와는 상관없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타인이 정해놓은 ‘보통’의 기준을 벗어난다는 것은, 주위 사람들의 시선, ‘나’에 대한 나 자신의 검열의 시선을 통과해야함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이 시선에 마음의 노예가 되든, 이 시선의 강박을 벗겨내든 하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고 말이다. 솔이와 사랑이의 주변 아이들은 ‘보통’을 벗어난 동성애자를 바이러스 취급한다. ‘보통’이 아닌 대상을 조롱한다.

 

사랑이가 영국에서 만난 레나는 고등학생인데 임신을 한다. 사랑이는 레나에게 묻는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왕따 안 시켜?” “감히 누가 누구를 왕따 시켜. 우리는 학생이기 이전에 사람이야. 임신과 출산은 인간의 소중한 권리야.”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당당하게 말하는 레나. 또 사랑이는 ‘뱅드림’을 매우 좋아하는 어른 로이에게 “사람들이 안 놀려요?”라고 묻는다. 사랑이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심하게 좋아하다가 ‘오타쿠’라는 이유로 왕따를 당해봤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에 ‘정원庭園’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정원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비틀즈, 일본 애니메이션, 타투)이 살기도 하고, 남들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여기저기 묻혀있기도 하다. 한 시절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사랑한 시간이 데려다 준 풍경이 간직되어 있기도 하다. 정원은 깊을수록, 풍성할수록 좋다. 사랑, 즐거움, 슬픔, 외로움을 많이 간직한 정원일수록 숲은 깊고 흙은 두툼하게 마련이다. ‘깊고 두툼함’은 그대로 살아갈 힘이 된다. 타인이 정한 보통의 경계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삶을 살 수 있는 힘 말이다. 그래서 정원庭園의 힘이 깊은 이는 보통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 않는다. 그 경계 안에 있으려 버둥거리지 않는다. 보통이 꼭 행복의 기준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아니까. ‘보통’을 벗어나도 행복할 수 있으니까.

 

사랑이는 한국으로 가고, 솔이는 타투이스트가 되기 위해 영국에 남는다. 둘 사이에 머문 마음을, 우리는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사랑이라 불러야 할까. 레즈비언 커플의 비정상적인 사랑이라 부르면 될까. 금방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사랑이 뭘까? “두 존재를 포개어서 외로움이 덜어진다면”, 외롭고 눈물날 때 서로 위안 받고 쓰다듬어 주고 싶다면, “그 애가 웃을 때 주변의 공기가 단번에 뒤바뀐다면”, 이건 사랑일까? 아마 사랑일 것이다. 사랑이 아니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 “마음이란 영원히 감춰지지 않는다고 했어. 누를수록 떠오른다고, 외면할수록 전부가 되어버린다고 했어.(p183)” 솔이 엄마가 솔이에게 남긴 말이다. 결국 사랑이고, 그 마음은 사랑이 맞다.

 

이 책을 읽는 즈음은 루시드 폴의 음악 <오, 사랑>을 즐겨 들을 때였다. 노래 제목과 책 제목이 우연히 같네, 라고 생각하며 소설을 읽다가, 소설 마지막에서 <오, 사랑> 노래 가사 전문을 만났다. 가사는 그대로 솔과 사랑의 이야기였다. 그렇게 여겨졌다. 두 사람이 고요한 음악이 되어 잠시 머문다.

 

고요하게 어둠이 찾아오는

이 가을 끝에 봄의 첫날을 꿈 꾸네

만 리 넘어 멀리 있는 그대가

볼 수 없어도 나는 꽃밭을 일구네

 

……

그대 부르는 이 목소리 따라

어디선가 숨 쉬고 있을 나를 찾아

네가 틔운 싹을 보렴 오,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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