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여류 소설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노년인 70살에 쓴 자전적인 소설로 2016년 가을 처음 읽었을 때는 150여 페이지에 불과한 얇은 책임에도 시점도, 나이도, 화자도 왔다 갔다 해서 정신없는데다, 감흥도 없어 영화의 여운을 무색케 할 정도로 읽은 게 후회스러웠다.
그러다 겨울 읽을 책이 없어 다시 집어 들었는데, 처음과 달리 책의 전체적인 내용이 오롯이 내 것으로 다가왔다. 2회독이 주는 선물인 셈인데, 한 번 읽고 내팽개쳤으면 큰일 날 뻔했다.
20세기 초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 사덱을 배경으로 예쁘지는 않지만 조숙하고 눈이 관능적인 15살 난 백인 여자와 못생기고 체격도 왜소한 27살인 부자 화교의 만남과 사랑, 이별이 주된 줄거리다.
소녀가 남자를 만났을 때는 무언가 탈출구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2남 1녀 중 막내였던 그녀는 교사인 어머니 홀로 키우고 있었는데, 어머니의 사랑과 관심을 받고자 했지만, 그 대상은 오빠들 차지였다.
가장인 어머니와 두 오빠를 둔 그녀 사이엔 ‘돌로 된 가족’이라는 표현처럼 가족 간의 소통이 전무했고, 글을 쓰고 싶었으나 어머니는 수학 교사가 되라며 그녀의 꿈마저 막은 상태여서 그녀로서는 모든 게 막막한 상태였다
둘의 우연한 만남은 1년 반 동안 이어졌지만 인종과 나이 차이 등으로 둘은 미래가 없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 철저히 현재만 공유한다. 이 과정에서 소녀는 동정을 남자에게 바치고, 서서히 육체적인 관능과 쾌락에 눈뜨게 된다.
살다보면 우리는 사랑하지만 이런저런 현실적인 이유들로 미래가 없는 만남과 사랑을 하게 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런 사랑 앞에서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오래전 주위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사랑을 포기했던 한 여자가 생각난다. 그녀는 당시 자신의 결정에 대해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갑자가 몹시 궁금해진다.
2차 세계 대전 후 중국인 남자가 아내와 파리에 와서 그녀에게 전화해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있고, 영원히 그녀만을 사랑할 거’라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온다. 난 그의 얘기가 진심임을 믿는다.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를 평생 잊지 못하지만 여자들은 그렇지를 않다.
<책속 구절>
18살에 나는 늙어 있었다.
늙어 간다는 것은 가혹했다.
윤곽은 나아 있으나, 그 윤곽을 이루는 물질들은 모두 망가져 버렸다. 지금 내 얼굴은 망가져 있다.
알코올에는 신이 갖고 있지 않은 기능이 있었다. 자살을 하게 하는, 혹은 살인을 하게 하는 기능이 있었다.
열다섯 살 때의 내 얼굴은 관능적이었다. 눈에 띄는 얼굴, 초조한 표정, 눈자위에 거무스레한 무리가 진 눈 때문에 경험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곧잘 내 몸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머리카락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찬사가 결국 내 얼굴이 예쁘지 않다는 뜻임을 이해했다.
욕망을 외부에서 끌어 오려고 해서는 안 된다. 욕망은 그것을 충동질한 여자의 몸 안에 있다. 그게 아니라면 욕망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어머니 주위는 온통 사마고가 같았다. 아들들이 바로 그 사막이었다.
그 행위에서는 모든 것이 다 좋아. 아무런 찌꺼기도 없어. 찌꺼기들은 뒤덮이고, 모든 것이 거센 물결, 욕망의 힘 속으로 흘러가는 거야.
온몸에 퍼붓는 입맞춤이 나를 울 만든다. 그 입맞춤이 위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두려움을 넘어 사랑할 힘이 없기 때문에 그는 곧잘 운다. 그의 영웅심, 그것은 바로 나이고, 그의 노예근성, 그것은 그의 아버지의 재산이다.
욕망에 시달려 사그라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