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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 마종기
  • 10,350원 (10%570)
  • 2010-05-11
  • : 1,535

예전에 책을 읽고 나면 인상에 남은 구절을 노트북에 타이핑해 두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새 책을 또 읽는 재미에 빠져 그것마저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해 그만두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예전에는 시간 낭비라고 무시했던 소설, 희곡, 시 등 문학의 가치를 알게 되면서 많이 읽으려고 노력 하고 있고, 모자라는 기억을 조금이나마 오래 가져가고자 책 앞장에 많은 메모를 해두고 있습니다. 그것도 부족해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그 작품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서평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서평이란 건 참 쓸데없는 짓입니다. 왜냐하면 본래 책이란 건 본인이 직접 읽어서, 이해하고 느끼고 깨달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니까요. 특히 시라는 장르는 더 그러해서 꼭 본인이 직접 느껴야 하고, 시집에 대한 서평을 쓰는 일은 어찌 보면 참 무모한 일이자 도전입니다.

 

마종기 시인은 시인이자 미국에서 의사로 오랫동안 활동해 온 분입니다. 한 가지 일도 하기 쉽지 않은데, 투 잡을 참 멋있게 소화해 온 셈이죠.

 

그의 부친은 일본 유학파로 아동 문학가이자 수필가로 널리 알려진 마해송 선생이고, 어머니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무용가인 박외선 선생입니다. 부모의 예술적인 유전자가 그대로 아들에게 물려진 것입니다.

 

등단 50주년 기념 시선집으로 이 책에는 시인이 직접 가려 뽑은 총 50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직접 자기 시에 대한 해설이 실려 있어 시뿐만 아니라 시인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특히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시인이 자발적으로 미국에 가서 산 줄 알았는데, 군사 정권이던 1960년대 군의관 시절에 정치적인 활동으로 쫓겨난 것이었습니다. 열흘간 정치범으로 구금되어 있었는데, 충격으로 아버지는 매일 폭음을 하셨고, 과음으로 인한 뇌줄중으로 갑자기 사망하게 됩니다.

 

2살 아래 남동생도 10년간 기자 생활하다 정치적인 이유로 형이 있는 미국으로 올 수밖에 없었고, 잡화점 하면서 잘 지냈는데, 10년 후 강도에게 총격을 당해 죽게 됩니다.

 

시집 제목인 「당신을 부르며 살았다」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표현입니다. 요즘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보고 있는 책 중의 하나가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쓴「콜레라 시대의 사랑」인데, 여주인공 페르미노 다사에 대한 플로렌티노 아리사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딱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시인에게는 어쩔 수 없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고국과 먼저 간 아버지와 남동생이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의사 일을 하면서 틈틈이 쓴 시도 그에게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자 원동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겉모습만 볼 때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의사라는 직업에 시인이라는 명예까지 갖고 있으니, 세상에 부러울 것 하나 없어 보이는데 실은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온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시를 읽는 독자와 시인은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의 시는 현란한 기교나 미사여구를 늘어놓지 않고 살아가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담담히 풀어 놓습니다. 좋은 시가 많지만 널리 알려진 시 하나를 남기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바람의 말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놓으리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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