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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남자
  •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 11,520원 (10%640)
  • 2010-10-20
  • : 504

 

얼마 전에 EBS에서 총 5회에 걸쳐“세계문학기행-문학의 길을 걷다”라는 아주 좋은 프로를 방송했는데, 그때 등장한 작가들이 베르나르 베르베르, 도스토예프스키, 헤밍웨이, 세익스피어 그리고 제인 오스틴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대중성은 아주 높지만-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작품성은 별로라고 생각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은 작가가 들어간 것은 이해가 안 되지만, 나름대로 방송사에서 기준을 갖고 선정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하나, 다른 위대한 작가에 비해 중량감이 좀 떨어져 보이는 제인 오스틴이 들어있는 것을 주목해 봐야할 것 같습니다. 200년도 지난 그녀의 작품이 여전히 많은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연애와 결혼이라는 인간의 보편적인 주제를 시종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뛰어난 가독성으로 시차를 전혀 느끼지 않는 데 있습니다.

 

소설은“재산이 많은 미혼 남성이라면 반드시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말은 널리 인정되는 진리이다.”란 말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19세기 초의 시대 상황을 감안해보면 재산이 많은 미혼 남성에게는 아내가 그냥 보조적인 충분조건이지만, 사회 활동이 없는 여자에게는 남편은 꼭 필요하다는 역설적인 표현입니다.

 

19세기 초 런던 교외 시골 마을에 상류층인 부자 빙리씨가 이사를 오자 그는 본의 아니게 화제의 중심이 되고, 아들을 원했지만 딸만 다섯을 둔 중산층 베넷 부인도 내심 자기 딸의 사윗감으로 그를 욕심내게 됩니다.

 

소설 속엔,

 

가장 예쁘고 착한 첫째 딸 제인과 빙리

예쁘고 활달하며 자기 소신이 뚜렷한 둘째 엘리자베스와 다시

 

철부지 막내딸 리디아와 속물 위컴

엘리자베스 친구인 루카스와 콜린스 목사

 

이렇게 네 커플의 사랑과 결혼이 나오는데 시대는 변했지만 요즘과 비교해도 사랑과 결혼의 조건이 그리 다르지 않은 걸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본주의가 막 시작된 19세기 영국에서 결혼에 있어 소수인 상류층에게는 가문과 교양 등이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중산층 이하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력입니다. 외모, 신분, 교양, 집안, 직업 등은 단지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자본주의가 무르익다 못해 터질 지경인 21세기 우리의 결혼은 어떤 모습일까요?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결정이 결혼인데, 달라진 것이 있을까요?

 

전혀 없습니다. 훨씬 더 심해졌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더 동시성을 갖는 것이겠지만 씁쓸함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제목인 오만(pride)은 남자 주인공인 다시를 상징하는데, 자부심이 지나치면 오만이 됩니다. 편견(prejudice)은 여자 주인공인 엘리자베스를 상징하는 단어인데, 적을 땐 별문제 없지만 지나치면 허상을 보게 됩니다. 다시와 엘리자베스는 각자의 색안경을 벗어던지자 상대가 온전히 보이게 되고, 진심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엘리자베스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한 부부였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젊었을 때 예쁘고 성격 좋아 보이는 데 그만 혹해서 분별력 없고 속 좁은 여성과 결혼해, 가정의 행복에 대한 모든 기대가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시골에서 책에만 몰두하며 살아왔습니다.

 

젊을 때는 누구나 이런 오판을 하기 쉽고, 한번 잘못된 선택은 물리기도 어려워 평생 후회하고 마는 경우가 되기 싶습니다.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역시 잘생기고 언변 좋은 군인 위컴에게 속아, 땅을 치고 후회할 뻔 한 전력이 있습니다. 그의 겉모습에 취해 다시의 본모습을 전혀 볼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제인 오스틴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잠시 학교에 다녔지만 거의 독학으로 공부를 했습니다. 20대 초반에 가문은 훌륭하지만 재산은 없던 한 남자를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남자 집안의 반대로 둘은 헤어져야만 했습니다. 제인 오스틴은 그 후 평생 독신으로 살다 죽었습니다.

 

이런 아픈 기억이 그녀로 하여금 연애와 결혼을 주제로 줄곧 소설을 쓰게 한 게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소설에는 똑똑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여성이 항상 등장하는데 아마도 작가 자신이 투영된 인물일 것입니다. 또한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소설이란 매체를 통해 이룬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남자 주인공 다시가 엘리자베스를 사랑해 집안의 수치가 되는 철부지 막내를 위해, 함께 도망간 위컴의 막대한 빚을 몰래 갚아 주고, 직장까지 알아봐주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현실적으로는 좀 무리가 설정입니다.

 

아무리 백마 탄 기사라도 많은 시간과 노력, 돈을 들여서 여자 쪽 집안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준다는 건 좀 과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오만과 편견은」풍자와 해학이 곳곳에 가득한데다 쉽게 읽히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니, 영화나 드라마로 변신을 거듭하며 지금까지 줄곧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인기는 줄곧 계속 되리라 생각합니다.

 

별 도움도 안 되는 연애나 데이트 관련 잡지나 가벼운 에세이 읽을 시간에 이런 좋은 책 한 권 익는 것이 연애와 결혼에 대해 훨씬 더 큰 안목과 생각을 가져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책속 구절>

 

우리 나이가 되면 정말이지 매일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게 그리 즐거운 일이 아니란다. 하지만 너희를 위해서라면 못할 일도 없지.

 

춤을 좋아한다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길로 확실히 한 발자국 다가가는 것이다.

 

메리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못생긴 까닭에 지식과 교양을 쌓고자 무척 노력했으며 늘 자신을 과시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숙녀들의 상상력은 너무 속도가 빨라요. 칭찬이 곧 사랑으로, 사랑은 곧 결혼으로 건너뛰고.

 

정말 교양을 갖추었다는 말을 들으려면 그 여성은 음악, 노래, 그림, 춤 그리고 외국어에 완벽한 지식을 갖추어야 해요. 여기에 폭넓은 독서를 통해 정신을 계발해서 실질적인 내면도 갖추어야지요.

 

여성들이 남성의 관심을 끌기 위해 종종 사용하는 술책은 모두 야비한 데가 있지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일을 신속하게 수행하는 능력을 자랑스러워하지. 그 행동에 결함이 있어도 별로 상관하지 않고 말이야.

 

독서의 기쁨만 한 것이 어디 있겠어요! 책 말고 다른 건 금방 싫증이 나버리죠! 내 집을 갖게 됐을 때 훌륭한 서재가 없다면 비참할 거예요.

 

허영은 정말 약점이지요. 하지만 자부심은 진정 우월한 정신을 지닌 사람이라면 잘 통제할 겁니다.

 

결국 자부심에서 모든 행동이 비롯된다는 것, 그리고 그 자부심이 종종 그의 가장 좋은 친구라는 건 훌륭한 일이예요.

 

엘리자베스가 보기에 가족들은 그날 밤 가능하면 자기네 망신스러운 면을 최대한 드러내고자 약속이라도 한 것 같았다.

 

계속 이런 식으로 모든 청혼을 거절할 작정이라면, 결혼은 절대로 못하게 될 거다. 그러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누가 너를 먹여 살린단 말이냐?

 

나는 사랑이 아니라 허영이라는 어리석음에 빠졌어. 처음 그 사람들을 알게 된 순간부터, 나는 한 사람이 보이는 호감에 우쭐해지고 다른 사람이 보이는 무시에는 화가 난 나머지 편견과 무지를 추종하고 이성을 쫓아버렸던 거야.

 

제가 늘 관찰해 온 바가 있는데 그건 어릴 때 착한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착하다는 겁니다.

 

남편을 진심으로 존경하지 않으면, 그리고 남편을 우월한 존재로 우러러 보지 않으면, 너는 행복할 수도 없고 남에게 떳떳할 수도 없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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